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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2

이 구역의 미친X은 나야 ver.1

by 성포동알감자

아침부터 재수가 없었다. 베르사유 궁전을 가기 위해 멍청한 직원에게 티켓을 구매한 것이 화근이었지. 전철을 타고 가는 중 티켓 검사를 하길래 가지고 있던 것을 당당하게 내밀었더니 벌금 50유로를 내란다. 뭐라는 거야?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안 되는 영어로 여차여차 따지니 구매한 티켓은 파리에서만 사용되고 베르사유 궁전은 파리 외곽이라 다른 티켓을 사야 한단다.

그래서 그냥 내리겠다고 했다. 안된단다.

창구 직원이 잘못줬다며 발영어로 차근히 말했더만 잘못산 잘못이다. 그러니 50유로를 내란다. 그래도 직원 실수를 인정해서 35유로를 내란다... 안 내고 버팅기다 직원이 한 명 더 내려왔고 끝내 벌금을 냈다 ㅜ.ㅜ

아침에 맑던 하늘은 사라졌다. 베르사유 궁전에 내리니 비가 쏟아진다. 같이 간 일행은 카메라가 떨어져 망가졌다. 마리 앙투와네트 저주다! 나는 그곳을 부리나케 떠났다.

저주를 피해 오르쉐 박물관으로 이동했다. 기차역을 개조한 이곳은 미로 같은 방을 왔다 갔다 지나며 작품을 감상한다. 모네, 드가, 르누아르 인상파 그림이 있는 5층부터 들렀다. 그중 드가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특히 압생트가 강렬하게 다가왔다. 마리 앙투와네트 저주를 받은 내 기분을 여실히 보여준다.

허무함, 공허함, 시니컬함.

명작이 사랑받는 이유는 세월이 지나도 현실에 감정이 반영되기 때문인가 보다.

그리고 카미유 피사로가 좋았다. 대게 인상주의 작품은 강렬한 영감과 멀미로(???) 감동을 주지만 그의 그림은 덜 일렁거리고 안정감이 느껴진다.

미술관에서 곡성에 나오는 악마를 만났다. 진격의 거인도 보았다. 조형물에서 나와 비슷한 몸매도 발견했다. 심미안과 현실적인 감각을 동원해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

sticker sticker

노을을 보려고 몽마르트르 언덕을 찾았다. 구글 지도가 오류인지 엉뚱한 무덤 밑으로 나를 인도했다. 아침부터 화가 차있었고 길도 잃어서인지 구글에게 엄한 욕을 하며 다시 언덕을 찾았다. 오래간만에 찰진 욕을 육성으로 내뱉었다. 아마 저 구역의 미친X은 나였다.

간신히 찾은 곳에 오르니 넓게 펼쳐진 청회색 레고 도시에 차가움이 밀려온다. 파란 하늘과 레고는 해가 지면서 핑크로 변했다.

오전부터 운이 없던 하루였다. 핑크빛 동네를 바라보니 또 하찮아지고 작은 일 같다가도 또 화가 나기도 하고 누그러지기도 하고 이랬다 저랬다 세상만사 귀찮아진다. 오늘 하루 상큼한 와인으로 분노를 풀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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