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도시
파리에 오니 마음 한가득 슬픔이다. 로마로 시작된 유럽여행의 종착지가 프랑스 파리이기 때문이다.
출발 전 스트라스부르에 비가 쏟아졌다. 한기를 가득 느끼며 TGV를 타고 도착한 파리도 여전히 춥다. 그간 날이 따뜻하다 못해 더웠는데 이젠 춥다니 종잡을 수 없는 날씨다. 캐리어를 이끌고 악명 높은 지하철에 탑승했다. 처음 마주친 지하철에선 노숙자가 오줌을.......... 춥고 더러움으로 나를 맞이한 파리이다.
파리에선 베니스에서 헤어진 일행을 다시 만났다. 하지만 반가우면서 반갑지 않았다. 마지막 도시라 슬픈 감정이 더 컸기때문이다.
숙소에선 에펠탑이 바로 보인다. 우린 저녁을 먹고 지도 없이 에펠탑만 보고 향했다. 밤이 되니 더욱 쌀쌀했지만 처음 만난 에펠탑은 크고 화려하다. 따스한 빛을 내는 에펠탑 주위에 많은 흑인이 모형 열쇠고리와 맥주 장사를 한다. 전북 고창 공장에서 일을 했던 외국인은 유창한 한국말로 맥주 영업을 시도했지만 추운 날씨 탓에 외국어 능력자를 뒤로하고 숙소로 돌아갔다.
다음날 일행은 루브르 박물관에 나는 퐁피두 센터로 향했다. 두시간여 기다린 끝에 입장! 오래 기다려 지쳤는데 새치기를 하는 사람을 보니 화가 났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뭐라 하지 않는다. 그저 나만 짜증이 나나보다.
마음을 추스르고 먼저 보이던 서점에 들렀다. 신기하고 감각적인 예술 서적이 많더라. 특히 내 수준에 딱인 동화책에 마음이 이끌린다. 귀여운 책이 많아 사고 싶은 충동도 들었다.
지하 1층으로 내려가 요세프 쿠델카 사진전을 감상했다. 공허함이 느껴지는 사진전과 2층 전시까지 관람하고 나니 체력이 고갈됐다. 5층에 위치한 현대미술관 속 샤갈 아저씨를 만나야 하는데 벌써 방전이라니! 조금만 더 기운을 내려다 결국은 기억이 사라졌다. 지금 생각해보니 따스한 옷도 사 입고 간식도 먹으며 찬찬히 볼걸.
기억나는 작품이라곤 이상하게 피가 뭉친 것 같은 6층의 현대미술이라 칭하고 내겐 미래 미술인 그림과 3D 프린터로 만든 조형이다. 미래 미술은 도통 이해할 순 없지만 묘하게 계속 보게 되는 매력이 아마도! 있다.
시테섬에서 헤어진 일행을 다시 만나 노트르담 성당,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를 보며 청회색 파리 거리를 돌았다. 남부인 니스와 다른 차가운 파리의 색. 느긋히 걸어 다니던 니스와 달리 바삐 걷는 파리 사람.
차가움이 도시에 가장 걸맞은 온도라며 줄곧 생각했었는데 그 차가운 도시가 파리같다. 그래서 한기가 느껴질때면 파리가 스르륵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