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는 자와 도망가는 자
궁내동엔 어둠이 깔렸다. 전방과 서울에 북한의 공격이 집중된 탓인지 전력과 수도 공급에는 큰 차질이 없었다. 그래도 괜히 불을 밝힐 필요는 없었다. 수도방위사령부 소속 대대급 병력이 산본 중앙공원에 집결했다. 북 특수부대는 야음을 틈타 과천으로 이동할 것이 분명했다. 이미 수리산 일대에서는 적군과 우리 특전사와의 산발적인 교전이 이어지고 있었다. 수방사에서는 주민과 아군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 궁내동 일대 주민들에게 소개령을 내렸다.
특전사 부대원들이 하나둘 산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날이 밝으면 본격적인 포위 섬멸 작전을 전개할 기동타격대도 속속 도착했다.
지혜는 곧 날아들 포탄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주민 소개령은 아군의 포사격을 예고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K9 자주포, K55 자주포, M777 견인포까지 가깝게는 10km, 멀게는 40km 밖에서 포탄이 날아들 것이었다. 수리산에 일제 사격을 가하면 제아무리 북한 특수부대라 할지라도 괴멸될 수밖에 없었다.
지혜는 아이들을 데리고 수리산역 앞에 조성한 임시 피난처로 걸어갔다. 가동을 멈춘 인공폭포를 지나자 김연아 동상이 그들 일행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지난 4월에 차량을 통제하고 철쭉축제를 하던 바로 그곳이었다. 저녁 식사가 끝나갈 무렵, 수리산 태을봉 일대에서 폭발음이 들려왔다. 불꽃은 사방으로 흩어졌고, 태을봉 바위 덩이들이 무너져 내리는 게 보일 정도였다. 북한의 포격 영향권 밖이었던 수리산은 아군의 포탄에 의해 불이 붙었다. 포병의 긴급 지원사격은 약 5분간 이어졌다. 지혜는 수리산 바로 아래에 있는 집이 걱정되었다.
포격이 멈추자 육군과 특수부대가 방어선을 구축하기 위해 궁내동 일대로 나아갔다. 북한 특수부대의 운명은 이미 결정 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지혜도 알고 있었다. 북한은 우리를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특수부대의 남침은 소모적인 난동일 뿐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왜 이런 무모한 짓을 했는지 의문이었다.
대피소 전광판에 속보가 떴다. 국외로 가던 우리 항공기가 격추됐다는 소식이었다. 탑승객 전원은 사망했다고 전했는데, 놀라운 것은 탑승객 대부분이 여야 정치인과 권력자였다는 점이다. 시민들은 분노했다. 그렇게 서로 싸우더니 도망갈 때는 같은 편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용산도 조용했다. 모든 것을 국방부에 맡긴 듯 그 어떤 메시지도 없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컨트롤 타워의 안전을 보장한다며 일본행을 결심했다고 한다. 결국 철밥통이라 질책받던 공무원들과 군인들, 그리고 힘없는 제3당 인사들이 정부 시스템을 지탱하고, 매뉴얼에 따라 체계적으로 반격을 도모했다. 시민들도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총이라도 쥐어주면 배불뚝이 동네 아저씨들도 나설 기세였다.
속보는 이어졌다. 북의 남침 직전까지 특이사항은 없었다고 한다. 철저히 위장했던 방사포 부대가 순차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며 일제히 사격을 시작해 조기 경보 시스템을 무력화했고, 상식을 깨고 포격과 함께 대낮에 특수부대를 보냈다는 점. 특히 미 2사단과 8군 병력을 향해 집중 공격을 가한 점이 놀라웠다. 게다가 우리 공군기지를 정확히 타격해 불리했던 제공권을 잠시나마 무력화하는 데 성공했다.
미 항모 전단이 한반도로 접근하고 있었고, B-1B, B-2, B-52가 북한의 주요 군사 거점을 직접 타격하고 있었다. 핵추진 잠수함들도 북한 해역에서 이미 북한의 해군 전력을 제압하고 해상 교통로를 차단한 상태였다. 미군 특수부대와 한국 특수부대도 야음을 틈타 북한 후방 지역에 침투할 것이었다. 일주일이면 끝날 전쟁이지만, 복구에는 7년, 아니 그 이상이 걸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정우가 입은 군복에는 이병 계급이 선명했다.
“저기요, 선생님. 제가 707 예비역 대위인데요, 꿈에서도 이병 계급은 붙인 적이 없거든요.”
누구 하나 그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선바위역에서의 적 소탕작전은 그렇게 끝이 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