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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디킴 Jun 10. 2019

만나고 싶지 않은,
만나고 싶은 AE

크리는 숨 쉬고 싶다 


그는 '통제적 완벽주의자'였다. 

마이크로 매니징은 숨 막혔다. 갈수록 무기력해지는 제작팀. 무너진 마음에서 아이디어가 자라기 쉽지 않았지만, 우린 꾸역꾸역 해내야 했다.     


그는 업무 체계, 보고 형식을 만드는 일에 능숙했고 아이디어에서 리스크를 찾아내는 데 탁월했다. 반면, 그 능력은 될 만한 아이디어를 싹부터 잘라내 제작팀의 창작욕을 꺾기도 했다.     

그런 성향은 업무 수행이나 행동에 대해 비현실적으로 높은 기대나 기준을 가지고 규칙, 목록, 조직, 질서 정연함에 집착해 임무의 본질을 놓치게 한다.     


좋은 크리가 되기 위해서는 역량을 쌓는 훈련과 아이디어 숙성이 필요한데 규정과 규칙을 우선하다 보면 이 능력과 의지가 퇴화해서 본업에 소홀해진다. 아이디어 발상은 자율적 고민과 노력을 통한 ‘역량의 축적’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말이다.     


흑백논리, 이분법적 사고방식, 지나치게 양심적이거나 도덕적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은 늘 소모적이다.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는 욕구가 강한 그는 자신이 맞고 타인이 틀렸음을 증명하려 하기 때문.       


그런 그에게 맞추려면 일의 목표와 우선순위 결정, 창의성을 위한 머리 회전이 줄어든다.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일은 긍정적 동기부여로 작용해야 하는데 ‘만에 하나 잘못되었을 때의 부정적 결과’에 예민해지다 보면 새로운 시도 앞에서 머뭇거리다 기회를 놓친다.     


물론 성공보다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그때마다 통제적 완벽주의자는 좋은 경험으로 받아들이기보다‘ 내가 안 된다고 그랬잖아’며 책임을 묻는다. 그렇게 실패는 실패로 끝이 난다.      

제작팀은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일하기보다 그저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려는 소극적 행위자가 되고 광고 회사엔 그런 사람들만 남게 된다. 종말이다.     


우리는 부족한 사람들이다 서로의 능력과 관심이 다르기에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 배려해야 한다. 지나친 통제는 생각을 가두는 콘크리트다. 건전한 조직에서 방종은 자연스레 걸러진다. 완벽함은 공장에서나 찾을 일. 그래서 난 위에 언급한 AE를 최악으로 여긴다.  반면, 만나고 싶은 AE는 어떤 사람일까.      


1. 광고주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왜곡 없이 전하는... 

광고주와 자주 만나는 AE는‘광고주화’하기 쉽다. 자기 생각에 ‘주님 생각’을 붙여 크리의 시야를 좁힌다. 커뮤니케이션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한다는 것은 크리의 또 다른 판단을 기대한다는 뜻이며 그들을 신뢰한다고 공표하는 일이다. 그런 방식은 문제가 생겨도 합심하여 일을 처리할 수 있게 돕는다.     


2. 트렌드에 민감하고 학습능력이 뛰어난...

최신 트렌드에 밝고 공부하는 AE와 함께 함은 행운이다. 맥락을 읽지 못해 아이디어단에서부터 하나하나 설명을 해줘야 하는 상황은 시간 낭비이기 때문. 평가나 관리만 하려는 AE와 일해 본 크리는 이해하리라.     

3. 크리의 권한을 존중하고 침해하지 않는....

동기를 부여하는 날 선 콘셉트는 기본. 방향성을 잡아주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지키고 크리의 몰입도를 높여주는 AE는 복 받는다. 높은 몰입도는 제작물의 퀄리티와 더불어 업무 만족도도 높여주기 때문. 자잘한 사항까지 관여하는 것은 섬세한 게 아니라 숨 막히는 쪼잔함이다. 크리가 자율권을 행사하여 프로젝트에 푹 빠져들 때 히뜩(?)한 아이디어가 넘치고 더불어 광고주를 위한 퍼포먼스의 퀄리티도 높아진다.      


4. 보정은 해도 방향은 잃지 않는 일관성...

하루 사이에 달라질 수 있는 게 주님 말씀이긴 하다. 인정한다. 그러나 AE마저 손바닥 뒤집듯 얘기를 달리하면 곤란하다. 광고주의 요청과 크리와 공유한 방향성을 지속적으로 점검하여 상충될 때마다 명확한 합의를 거쳐 보정해야 프로젝트가 일관성을 갖게 된다. 일관성 없는 기획은 불확실성과 구성원의 불안감을 높여 창의력을 좀먹는다.     


5. 사람과 시대에 대한 공감능력...

사람마다 감정 포인트는 다르다. 내가 눈물 쏟은 이야기에 남은 무덤덤할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그럴 수 있겠구나’ 정도는 돼야 한다. 공감능력 떨어지는 AE는 시대의 맥락을 종합적으로 읽는 사고가 어렵다. 이런 이들은 크리와의 정서적 유대도 쉽지 않다. 편하고 만만한 AE가 되란 얘기가 아니다.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되란 뜻이다. 우리 일은 머리로 짜고 관계로 완성하는 거니까.      


6. 스타플레이어보다 게임메이커...

기획서에 아이디어에 편집까지 두루 할 수 있는 반기반크 AE도 분명 있다. 본인 명성으로 제작물에 자기 이름을 가장 크게 붙이는 이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런 이는 조직에 큰 위해다. 내부 경쟁에서 본인이 승리했음을 자축하는 꼴이라 그렇다. 게임메이커를 자처하고 조력자 마인드로 함께 하는 AE는 가만히 있어도 ‘낭중지추’다. 광고 회사는 예민한 사람들의 집합체다. 촉에 죽고 촉에 살기에 딱 보면 안다. 우린 그를 알아보고 누구보다 소중히 다루고 쓰다듬으며 광을 내줄 것이다. 그렇게 해야 함께 모두가 빛날 수 있으니까.     


다음엔 AE가 쓴 반론도 보고 싶은데, 가능할까?

비딩이 코앞이다. 이번엔 어떤 이와 함께 하려나.


분명 봄이었는데. 여름이 드나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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