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가 '현실'이 되는 순간
영화감독이 되었다. 어느 동남아 바닷가 마을을 배경으로 찍은 영화인데, 장비도 후졌고, 성격상 마음에 안 드는 연기가 나와도 재촬영 하자는 말이 목구멍에서 멈추고 말았다. 결국, 대부분의 모든 장면들을 ‘컷’으로 마무리하고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에 뿌듯해하며 지냈다. 그리고 다음에는 ‘더 좋은 장비로 촬영하고 싶다’라는 소박한 소망만 간직한 채 그 영화에 대해 잊고 있었다. 그런데, 의외로 그 영화가 화제가 되었다. 그래서 난 원치 않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었고, 원치 않은 스포트라이트는 나를 과부하되게 만들었다. 여기저기서 투자자들이 물밑들이 들어왔다. 대부분의 투자사들이 그렇듯이,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하며 다음 영화는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를 끊임없이 늘어놓았다. ‘중국시장을 겨냥해야 한다’, ‘인도시장을 겨냥해야 한다’ 등 되지도 않는 소리들로 나를 계속해서 압박하니, 나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난 그 자리에서 뛰쳐나와 어느 골목길을 무작정 걷고 있었다. 그런데 한 남자아이가 머리가 헝클어지고 공허한 눈빛과 격앙된 눈빛을 동시에 뿜어내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 아이를 외면하고 가던 길을 가려고 하였지만, 주변의 아이들이 “저 아이가 할 말이 있대요.”라고 외쳤다. 나는 고개를 돌아보고, “나? 나한테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 하고 그 아이에게 되물었다. 아이는 씩씩거리기도 하면서 분노와 체념이 뒤섞인 알 수 없는 얼굴 표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 아이가 저를 끊임없이 괴롭혀요. 그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나는 그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왜 그걸 나에게 이야기하지? 부모님이나 선생님께 말씀드려봐”라고 답했다. 그러자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표정이 굳어진 채로 주먹만 굳게 쥐었다. 나는 ‘어른’으로서 부적절한 대답이었다는 걸 이내 깨닫고,
“네가 그 아이와 싸워서 본때를 보여주고, 그 아이가 다시는 너를 무시하지 않을 정도의 힘이 있다면 그 아이를 건드려도 좋아. 하지만 그 전엔 계속해서 넌 말로 타협하거나 그 아이를 타일러야 해. ‘힘’은 중요한 순간에 결정적인 순간에 단 한방으로 써야 하는 거니까. 그때까지는 어찌 되었든지 간에 ‘이야기’로 풀어볼 생각을 해.”라고 답해주었다. 아이는 나의 대답이 마음이 들었는지 어쨌는지, 똑같은 표정으로 그 자리에 서 있었고, 난 그 아이의 어깨를 잡으며 다시 한번 강조했다.
“힘을 쓴다면 그만큼 너도 위험을 감수해야 해. 하지만 그 힘으로 그 아이가 너를 다시 얕잡아 보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 때 쓰는 거야. 절대로 널 다시 무시하지 않을 수 있게 사용하는 거지.”
그리고 꿈에서 깨어났다. 난 투자자들의 압박 때문인지, 지금도 또렷이 떠오르는 거리의 아이 표정 때문인지 깨어나서도 ‘답답함’과 ‘가슴의 통증’이 계속 이어졌다.
도대체, 이 맥락 없는 꿈들이란 무엇인가 말인가? 영화감독은 오랜 시절 나의 꿈이었다. 처음 4살 때 극장이라는 곳에 가보고 느꼈던 그 감동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저렇게 큰 스크린이라니! 저기서 ‘이야기’ 세상들이 펼쳐진다 말이지. 그 이후로, 티브이에서 하는 ‘주말의 명화’ 등을 빼놓지 않고 시청했다. 6살짜리 애가 뭘 알겠냐만, 지금도 그때 본 제목도 모르는 몇 편의 영화들이 기억난다. 17살 때 사고로 식물인간 상태였던 여고생은 37살에 깨어나고 자신도 모른 채 흘러갔던 20년의 세월을 탄식하며 못다 이룬 꿈을 이루기 위해 다시 여고생 시절로 가는 영화, 죽어가는 아이와 엄마에 대한 이야기. 죽음을 앞둔 아이는 정말 의연하게 엄마를 위로해주고 대처한다. 아무튼 가장 즐거운 시간은 영화 보는 시간이었고, 12살, 티브이에서 가위질이 많이 된 영화인 ‘대부’를 보고 알 수 없는 감동과 희열, 스릴을 맛보았다. 그랬다. 난 당연히 크면 영화감독이 될 것이라 생각했고, 마티유 카소비츠가 24살 때 깐느에서 신인상을 받은 걸 기점으로 나도 24살 때는 ‘저 상을 받아야겠다’ 생각했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인생은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고, 나는 내가 시나리오를 한 편도 쓸 수 없음에 좌절감을 맛보았다. 타란티노처럼 멋진 영화를 만들려면 직접 시나리오를 써야 진정한 ‘작가’의 반열에 올라갈 수 있을 텐데, 난 단 한 줄도 쓸 수가 없었고, 하물며 뭘 써야 할지도 몰랐다. 그렇게 영화감독의 꿈은 저 멀리 아주아주 멀리 안드레메다보다도 더 멀리 사라졌다.
그러다 문득, 어제 설거지를 하면서 ‘기생충’ 배우들은 앞으로 자신들의 ‘커리어’를 설정하는 데 있어서 ‘기생충’이 도움이 될까? 아니면 걸림돌이 될까?라는 생각을 잠깐 스치듯 했다. 물론, 젊은 배우들은 그들의 경력에 화려함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수 있겠지만, 그게 내적인 갈등으로 이어질지 아닐지는 또 모를 일 아닌가?
또한, ‘봉준호’처럼 명망 있는 감독들은 많은 투자자들이 들어와도 자기 주관과 소신대로 밀고 나갈 재주가 있겠지만, 꿈속의 나처럼 흐리멍텅한 사람(애초에 흐리멍텅한 사람이 잘 될 리는 없겠지만서도)은 여기저기 ‘압박’이 들어오면 견뎌낼 재주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꿈에서 그렇게 답답함을 호소하였고, 그 답답함의 ‘잔존’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결론은 나는 영화감독의 소질도 없으며 될 만한 성격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게 답답함으로 이어졌는지도 모른다. 나의 오랜 시간 묵혀두었던 ‘판타지’가 ‘실제 상황’이 되는 순간, ‘판타지’는 더 이상 아름다운 ‘판타지’가 아니고, 견디기 힘든 ‘현실’로 전이되는 것일 수도 있다. 언제나 그렇듯 ‘꿈’으로 간직하고 있을 때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정형이 아니던가. 어제의 꿈은 나의 ‘판타지’를 깨 보라는 메시지 같았다. 알겠다. 그렇다면 나도 잘 응답하겠다.
그리고, 얼마 전에 오랫동안 독립영화를 찍어온 친구가 외국 영화제에서 수상한 일이 생겼다. 그녀는 몇 년 만 더 영화일에 집중하고 되든 안되든 끝까지 가보겠다 했는데, 벌써 좋은 성과를 얻은 걸 보니, 앞으로의 행보도 기대가 되는 감독이 되었다. (원래도 감독이었지만.)
아이. 아이는 도무지 왜 등장했는지 알 수는 없다. 필요하고 결정적일 때 한 방을 날리라고 내가 조언해준 건 나 스스로에게 하는 말인 것 같다. ‘결정적인 한 방’. 언제나 내가 가장 취약했던 부분이다. 무엇이 ‘결정적이고’, 어디까지가 ‘한 방’ 인지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언젠가 다시 전투라는 사회생활에 복귀하게 된다면 ‘결정적 한 방’이라는 것을 가슴에 새기며 다니며 나의 정신적 안정망을 구축하라는 뜻인 듯하다. 황량하고 쓸쓸해 보이던 그 아이는 결국 나 자신이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