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병나발을 불다
다시 나는 어느 팀의 리더가 되었다. 하지만, 난 그 자리가 부담스러웠다. 전 ‘공황장애’를 앓고 있어요.라는 말이 튀어나와야 함에도 불구하고, 난 이상하게 말할 수 없었다. 대신 혼자 전전긍긍하며 내가 언제까지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는데, 이런 중차대한 일의 책임자로 결정되니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다며 혼자 속으로 되뇌었을 뿐이었다. 당장 그만두어야 하나 고민하다가 퇴근 후, 소주잔을 들이켜게 되었다. ‘진로’라는 두 글자가 선명한 투명한 병의 하늘색 뚜껑이 있는 그 소주병을 병째로 들이켰다.
전전긍긍하며 괴로워했을 뿐이지만, 그 괴로운 마음은 고스란히 나의 몸과 마음에 전해져 깨고 난 후, 온 몸에 통증이 생겼다. 두통, 복통, 위통, 근육통 등등. 다시 일을 시작할 것도 아니지만, 일에 복귀했을 때 느낄 압박감은 언제나 내 심연의 아주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나 보다. 어제 병원에서 정신과 선생님은 몸과 마음이 아주 예민해지고 힘들 때, 가장 기억하고 싶지 않은 ‘트라우마’ 등이 서서히 혹은 맹렬하게 나의 꿈을 파고든다고 하였다. 정확한 문장은 기억나진 않지만 난 그렇게 이해하였다. 요새 내가 몸과 마음이 예민해져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간에 잠에 도움이 되고 공황에도 도움이 된다는 약 반알을 추가로 더 처방받았다. 그리고 실제로 내가 요새 몸과 마음이 피로해졌는지도 살짝 의문이 들긴 하지만.
왜 대학 졸업 이후로 한 번도 마신 적 없는 ‘진로’ 소주를 마셨을까? ‘진로’ 소주는 못 모를 대학교 1, 2학년 때 엄청 즐겨마신 이후, 나의 주량의 한계를 느끼고 더 이상 마시진 않게 되었다. 생각해보니 이건 얼마 전 있었던 일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한참여 전, 그러니까 내가 20대 후반이었을 때였다. 같이 근무했던 1살 어린 친구가 있었다. 새로운 관리자는 생긴 건 우락부락하고 덩치도 산 만하였지만, 온화한 사람인 듯했다. 내가 무언가 업무에 대해 상의하면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잘 조언해주었다. 그렇게 평화롭지만 위태위태하게 지내던 어느 날, 전체 회식에 내가 불참하게 되었다. 난 그 회식이 그렇게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도 몰랐고, 회식 불참이 그렇게 큰 중죄를 저지른 건지도 몰랐다. 어쨌든, 난 부장님을 통해 전체 회식의 불참 의사를 전달했더니 바로 그분이 직접 나를 호출했다. 그러더니 소리를 엄청 지르며 나에게 정말 말 그대로 불같이 화를 냈다. 쌍스러운 말도 함께 섞었던 것 같은데 난 너무 놀라서 퇴근 후, 그 친구를 불러서 맥주만 마시며 훌쩍였는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무척 상심한 상태로 맥주를 들이켰다. 물론 전에도 물건을 집어던지는 관리자를 보긴 했지만 전체 회식에 빠졌다고 그렇게 모멸감을 맞본 건 처음이었다. 알고 보니 그분은, 젊은 20대 여직원들을 양쪽에 좌우로 쭉 놓고 술 마시기를 좋아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애교나 교태를 부리는 여직원들을 특히 대놓고 편애하기도 했다. 교태라는 표현이 우습긴 하지만. 그러니 나처럼 아예 다짜고짜 못 가겠다고 하는 여직원은 본인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며, 큰 ‘불충’을 저질렀던 일이었던 것이다. 이것도 다 십 년도 넘는 일이니 가능했을 것이다. 지금 사회 정서상으로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녀는 나를 많이 위로해 주었다. 그리고 알고 보니 그녀의 친구가 내가 아는 지인이기도 했다. 이렇게 알게 모르게 인연이 있다 보니 나는 나보다 1년 어리지만 그 친구에게 이런저런 하소연도 많이 하고 의지하기도 했었다. 그러던 그녀는 이탈리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표를 썼다. 그리고 신학 공부를 위해 이탈리아로 떠났다. 그렇게 그녀는 모든 걸 버리고 가버렸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났다. 나는 그녀를 보기 위해 피렌체로 갔다. 물론 다른 여행 계획 속에 그녀를 염두해 계획을 짰었다. 몇 년 만에 만난 그녀는 여전히 친절했으며 나에게 많은 위안을 주었다. 그녀는 그 사이 이탈리아어에 능통해졌고, 우피치 미술관에서 어느 가이드 못지않게 풍부한 해설을 해줬다. 그녀와 짧은 2박 3일의 여정을 마치고 나는 다른 여행길에 올랐다. 그렇게 헤어진 게 벌써 7년 전 일이다. 가끔씩 메신저로 서로의 안부를 묻곤 한다. 그녀는 현재 대만에 있다. 그녀의 삶의 방식은 일반인과 다르다. 공동체 생활을 통해 종교적 교리와 실천을 실험해보는 대안적인 삶을 선택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연락은 드문드문 이루어졌고, 몇 달 전, 나는 그녀에게 필요한 물품이 없는지 물어보았다. 그녀는 한국 소주가 마시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뻐 마트에 가서 팩 소주, 플라스틱 소주 등과 그녀가 먹고 싶다던 과자도 함께 구입했다.
그러나 우체국 직원은 이런 물품들이 대만으로 반입되는지 확실하지 않다며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여기저기 전화기를 돌렸다. 나는 인터넷에서 가능하다고 확인했다고 대꾸했지만, 직원은 요새 절차가 복잡해져서 반송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보내고 싶다고 했다. 그녀가 알려준 주소를 정성스럽게 써서 보냈고, 나의 물건들이 그녀에게 잘 전달되길 바랬다. 하지만 나의 바람과 달리 일주일 뒤 우체국에서 온 연락은 물품이 반송되었으니 찾아가라는 냉랭한 내용이었다. 하는 수 없이, 우체국에서 다시 물건을 받아 온 후, 소주를 좋아하는 친한 언니에게 박스채로 선물해주었다. 언니는 나에게 거한 저녁을 사주었다.
어쨌든, 내가 산 물건들이 올바른 주인에게 전달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약간의 도움이 된 것 같아서 영 기분이 씁쓸하진 않았다.
그러나, 무의식 한켠으로는 그녀에게 소주를 전달하지 못한 게 내내 마음이 쓰였나 보다. 마시지 않은 소주를 꿈속에서 마신걸 보니 말이다. 그녀와의 2박 3일은 짧지만 나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었고, 그녀의 용기에 언제나 난 응원하고 부러워하고 있다.
삶의 목적과 방향을 뚜렷하게 정하고 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목적과 방향은 언제나 유동적이고 내일의 삶도 알 수 없는 게 우리의 인생일지도 모른다. 그저 흐르는 대로 사는 게 세상 편하다고는 하지만, 난 언제나 그녀의 그 또렷한 눈동자, 삶에 대한 강건한 태도를 존경하며 가끔씩 그녀를 떠올려 본다. 오늘은 그녀를 생각하며 소주 대신 실제로 맥주를 한 잔 했다. 뜻하지 않은 나의 소포 상자를 받은 언니는 어제 소주를 꺼내 잘 마셨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