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의 세계 8

잊혀졌던 그녀

by 김통

어젯밤에도 역시나 예상치 못한 방문객들로 당황과 혼돈의 밤을 보냈다. 어제 방문한 이는 몇 년 전 직장에서 함께 근무하던 20대 후반의 젊은 직원이었다. 몇 년 전이었으니 그녀도 이제 30대에 접어든 워킹맘이 되었을 것이다. (그녀의 카톡 프로필 사진을 보면 그렇다.) 그녀와 나는 자주는 아니지만 몇 번 같이 협업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었다. 그녀는 눈치가 빠르며 소위 사람들이 말하는 ‘센스’가 넘쳤다. 윗사람의 눈빛만 봐도 무엇을 원하는지, 자신이 무슨 대답을 해야 하는지 잘 간파하고 있었다. 그렇게 눈치가 빠르고 ‘센스’가 넘치는 직원이기에 윗사람들의 신임을 돈독히 받았다. 난 그저 그녀가 어떻게 그렇게 모든 분위기를 파악하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척척 해내며 생그러운 미소로 ‘부장님 여기요’ 하고 건네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때론, 그녀의 과잉친절과 미소가 약간의 거북함이 느껴질 때도 있었다. 들리는 말에 따르면, 관리직이 아닌 평직원에게는 그런 모습을 보인적이 없다고 한다. 누군가 업무 요청과 문의를 할 때에도 ‘알아서 잘하시면 돼요. 저는 특별히 알려드릴 것도 없고요’라는 우회적인 표현과 짜증 섞인 목소리와 표정으로 여럿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물론, 이 이야기도 후에 들은 이야기이다. 난 그녀의 그런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후에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 그 상황을 상상하려 해도 상상이 잘 가질 않았다. 그녀는 오래 사귄 연인과 결혼을 하고 어딘가에 신혼집을 꾸린 후, 신혼집 근처의 직장으로 옮겼다.


그녀가 왜 그렇게 눈치가 빠른지, ‘센스’라는 것이 넘쳐나는지 역시 누군가의 이야기를 통해 듣게 되어서 대략적인 추측을 할 수 있었다. 그것은 그녀가 어린 시절 부모님의 부재로 여러 친척집을 전전하며 지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어떤 식으로 행동해야 살아남고 사랑을 받을 수 있을지 어릴 때부터 몸으로 직접 체득했던 것이다. 더불어 어떤 사람에게 잘 보여야 하며,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이익과 관련이 없는지도 함께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아픈 과거를 건너 건너 들은 터라, 그저 난 그녀의 과거가 그랬겠거니 상상만 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상반된 평가를 받았던 그녀는 관리직들에게는 좋은 인상을, 그냥 평직원들에게는 쌀쌀한 직원으로 남긴 채 떠났다. 마지막 날까지도 내 앞에서는 너무나 과하다 싶을 정도로 공손해서 내가 다 고개가 절로 숙여지기 까지 했다. 난 그녀에게 해준 것도 없는데 그녀는 ‘감사하다’,‘00 부장님 덕택이에요’라는 말을 나에게 끊임없이 해댔다. 처음에는 ‘아냐, 내가 뭘. 나 00 이 잘해서 그런 거예요.’ 등등의 말을 해주었으나, 나중에는 그게 그냥 그녀의 입버릇이며 스스로 느끼는 ‘예의’라는 것을 깨달았다. 즉, 그녀의 생존전략 중 일부 같은 거 말이다.


그녀가 그렇게 떠난 후, 그녀가 이사 간 지역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래서 난 자연스럽게 그녀 생각이 났으며 그녀에게 오랜만에 문자를 넣었다. 그냥 형식적이고 의례적이며 잘 지내고 있냐는 통상적인 문자였다. 그러나 그녀는 답이 없었다.


그랬다. 그녀가 떠나고 그녀와 친분이 있었다고 일컬어진 몇 명의 또래 친구들은 그녀와 연결이 다 끊겼다고 한다. 아무리 그녀에게 연락을 취해도 그녀는 답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연락이 끊긴 이들이 있는 반면, 고위직 간부들은 아직도 그녀와 안부 문자를 주고받는다고 한다.

나는 그야말로 그녀에게 있어서 용도 폐기 처분된 것이다. 더 이상 쓸모 없어진 과거의 상사일 뿐인 것이다.


어제 그녀가 내 꿈에 어떤 식으로 등장했는지 기억이 분명하게 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꿈속에 그녀의 등장으로 인해 소스라치게 놀랐던 것 같다. 그만큼 그녀는 내 인생에 있어서 의아 하지만 또 이해는 가는 그런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지금도 그 직장에서는 관리직들에게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서 ‘센스’를 발휘하여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자 노력할 것이며, 평직원들에게는 쌀쌀맞게 대하고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의 오래된 생존 전략은 쉽게 바뀔 것 같지 않다. 어릴 때부터 친척집을 전전하며 ‘사랑’에 갈구했던 시절이 깊이 남아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프로필 사진에 등장한 아기는 그녀에게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우쳐 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사랑’은 누군가에게 받고, 누군가에게는 하지 않는 그런 차별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 같은 우리는 사람이고, 누군가에게는 상냥한 미소를, 누군가에게는 귀찮은듯한 냉랭한 눈빛을 던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물론 세상을 살다 보면 그렇게 해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똑같이 자랐고, 똑같이 직장생활을 하므로, 항상 친절하던가 항상 쌀쌀맞던가 항상 공평해야 할지도 모른다. 언제 계산하고 있나. 내가 누구에게 잘 보여야 잘 살게 될지.. 잘 살게 되는 건 누군가에 의해 결정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찾아가야 할 길인 것이다.


이 점을 더욱 명확하게 해 주기 위해 그녀가 밤에 찾아왔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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