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에서 한 달 살기?
어제는 오래된 대학 친구와 바닷가 근처 마을에서 집을 한 달 빌려 사는 꿈을 꾸었다. 웃긴 건, 내가 빌려 사는 집에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고, 나는 호기심에 이층 계단으로 올라갔더니 낯선 젊은 여성이 지내고 있었다. 그녀는 이 집주인은 아니었고, 이 집을 관리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아침엔 출근하고 당분간 퇴근 후, 이 곳으로 온다고 했다. 그리고 당신네들과 나는 이 가운데 있는 이층 계단으로 서로 이동하지 않는 이상 마주칠 일은 없다고 했다. 그곳은 공식적인 펜션이나 호텔이 아닌 ‘Airbnb’ 같은 형태의 공간이었다.
그렇게 꿈속에서 오래된 친구와 바닷가를 보며 그 시간들을 즐겼다.
1. 왜 그곳은 Airbnb 같은 곳이었을까? 그건 아무래도 오전에 들었던 웨비나 클래스에서 Airbnb 가 미국에서는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오히려 영업실적이 향상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인 듯하다(물론, Airbnb는 팬더믹이 발생한 후, 대량 해고 등을 통해 비용 절감을 했으며 올해 IPO를 준비 중이었기에 더 심혈을 기울이거나 출혈을 감수하는 공격적인 정책을 썼을 수도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에 창궐하고 난 후, ‘여행’이라는 단어는 마비가 되었고, 실제로도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행’의 개념과 ‘숙박’의 개념을 다른 소비행태로 바꾸게 되었던 것이다. 그냥 주말에 호텔에서 머물기, 집 이외의 공간에서 색다르게 지내며 여행 체험을 해보기 등처럼 말이다. 또는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조용히 일할 공간을 찾는 사람들은 호텔이나 ‘airbnb’ 같은 곳을 많이들 찾는다고 한다. 그들은 오전에 사무실 대신 혼자만의 조용한 공간인 ‘airbnb’ 방으로 출근하고 일을 한 뒤, 저녁에 퇴근을 한다. 생각지도 못했던 ‘숙박’의 개념이다. 언뜻 보면 이해가 전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밖은 무서운 세상이고, 어딘가 떠나고 싶고 이 두 가지의 대척점에서 ‘새로운 곳에 머물기’는 하나의 타협점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집에서 일에 집중하기 힘든 환경이면 당연히 ‘오피스’ 공간을 찾기 마련일 테다.
새로운 숙박에서 ‘여행’을 체험한다는 개념은 똑같이 ‘비행’에 대한 의미도 바뀌게 되었다. ‘목적지’ 없는 비행. 단순히 ‘체험’을 위한 비행. 비행이 어딘가를 향해 가는 도구의 수단이 아니라 ‘목적’의 수단이 된 것이다. 아래 기사처럼 말이다. 무엇이든지 그 목적과 개념은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구나 하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http://www.m-i.kr/news/articleView.html?idxno=743635
2 그 친구. 그 친구는 대학 졸업 이후에 지역이 다르다는 이유로 만난 적은 거의 없지만, 대학 시절 내내 내가 언제나 의지했던 언니 같은 친구였다. 마지막에 만난 게 7년 전이지만, 늘 힘든 일이 있으면 그 친구가 먼저 떠오를 때가 많다. 그러면 푸념을 하고, 그녀는 나를 잘 위로해준다. 마치 대학시절처럼 말이다. 대학 시절 많은 밤을 그녀의 자취방에서 함께 보냈다. 그녀는 나처럼 술을 좋아하지도 않지만, 나는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집에 가서 술을 많이 마셨다. 언제나 그녀는 나의 헛소리들을 잘 들어주었고, 잘 공감해주었다. 그녀의 생일은 절대 잊을 수 없는 날이다. 4월 16일이니까. 그래서 그녀의 생일이 되면 내 마음은 착잡해진다. 그녀의 생일을 축하함과 동시에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 수백 명의 아이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3. 바다. 저녁에 가족들과 함께 코로나 전에는 ‘강릉 한 달 살기’ 같은 삶의 형태도 유행이었다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바다는 언제나 그렇듯 나를 자유롭게 해 줄 ‘희망’과 ‘환희’로 이루어진 마음속 ‘환상’, ‘오아시스’ 같은 공간이다.
어제는 이렇게 세 가지가 어우러진 꿈을 꾸었다. 관리인 대행 여자는 나의 자유로움을 어느 정도 억제해주고 싶은 또 다른 나의 ‘자아’가 아닐까 싶다. 그렇지만 너무 억제하고 싶지는 않은 조그마한 ‘자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