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몸을 기억하는구나.
어젯밤은 그야말로 질풍노도의 밤이었으며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전쟁터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느낌이지만, 이게 정신적 피폐함과 피로감으로 인해 ‘신체적’ 느낌으로 살아있는 것인지, 정말 내가 ‘소생’하여 살아있는 것인지 약간은 혼재된 이 느낌들이 이 순간까지 ‘잔존’하고 있다. 마치 영화‘ 아카토네’의 아카토네처럼 나도 똑같이 그렇게 신음하며 괴로워했을 것이다. 자고 있는 내 모습을 보진 못했지만.
그렇다고, 어제 낮에 별다른 사건(?) 따위는 없었고, 나의 낮 시간은 그저 어느 날처럼 똑같이 느릿느릿하지만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을 뿐이었다. 어느 날처럼, 수면제, 신경안정제 등을 먹으며 몽롱해지길 기다리며 책을 읽다가 잠이 들었다. 어제는 생각보다 빨리 몽롱해져서 약을 먹은 지 채 30분도 안돼서 잠이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제부터 나의 전투는 시작되었다. 역시나 첫 번째 전투는 ‘직장’ 내에서 벌어졌다.
온갖 통제 불능의 상황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하여, 나는 그걸 하나하나 수습하느냐 진땀을 흘렸고, 모든 일들이 그렇듯이 내 마음대로 흘러가진 않았다. 역시나 내가 일하면서 상상했던 최악의 시나리오들이 고스란히 펼쳐지고 눈앞에 재현되고 있었다. 두더지 게임처럼 하나 해결하고 나면 또 하나의 문제들이 불거지고, 결국 나는 패닉에 빠지면서도 이걸 꿈이라 느꼈는지 이러다가 ‘늦잠 자서 출근길에 지각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였다. 도대체 일을 쉬고 있는지 1년이 다 되어가고 있는데도 이렇게 불쑥불쑥 ‘지각하는 거 아닌가?’라고 느끼는 걸 보면 사람의 관성이란 무시무시한 듯하다. 아무리 18년을 일했다 할지언정. 그렇게 직장 전투에서 치열하게 피폐해지고 간신히 잠에서 깨어났다. 나의 심장은 타들어가는 듯이 옥죄는 느낌과 개구리처럼 벌떡거리는 느낌, 강렬한 태양볕 아래 목이 타들어가는 듯한 갈증을 동시에 느끼며 겨우겨우 잠에서 깼다. 냉장고에 물 한 통을 커내 벌컥벌컥 들이켰다. 시간을 봤다. 오전 5시. 해가 겨우겨우 뜰까 말까 한 시간에 조금씩 햇살이 내릴락 말락 거리고 있었다. 마음을 진정시키고자 ‘지미 팰런 투나잇 쇼’ 비디오 클립을 몇 개 봤다. 내용은 전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93.1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다시 잠을 청했다. 이렇게 나의 밤을 전투로 마무리 짓고 싶진 않았다. 그러나 그때는 몰랐다. 더 무시무시한 전투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두 번째 꿈은 엄마에 대한 이야기였다. 엄마는 평상시에 ‘내가 몸을 거동할 능력도 없으면 요양원에 아무도 모르게 들어갈 테니 그런 줄 알아라. 요양원도 이미 다 알아놨다. 거기서도 받아준다고 했다. 난 누구 손에 의해 사는 건 정말 못할 짓인 것 같다.’라는 류의 말씀을 자주 하셨다. 정확한 워딩은 이게 아니지만.
하지만 그때마다 나는 ‘아니에요. 무슨 소리예요. 엄마가 아프시면 제가 돌봐드려야죠’라는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마당에 누가 누굴 돌볼 수 있다는 건가? 나는 그저 엄마의 말에 못 들은 척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그러나, 나의 심연에는 그러한 말들과 나의 대응들이 꽤나 죄책감처럼 느껴졌었나 보다. 한 번도 ‘자각’해본 적이 없는데.. 바로 어제 꿈은 엄마가 진짜 요양원에 들어가게 되는 날이었다. 엄마는 말씀은 잘하시지만 몸을 진짜 거동하기 힘들어 날짜를 정해놨다고 하셨다. 난 그제야 뒤늦게 ‘어디가 아프신가요?’라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이상하게 내 입은 벌어지지 않았다. 대신 내 동생이 ‘엄마가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어쩜 그렇게 무심하냐?’라고 차갑게 쏘아붙였다. 하지만 실제로 내 동생은 그럴 성격이 전혀 아니다. 그것도 역시 근처에 사는 동생이 자주 엄마를 찾아뵙고 도와드리고 했던 게 나로서는 내심 고맙고 미안하고 그랬었나 보다. 아무튼 벌어지지 않은 입을 가지고 있는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엄마의 상태를 물어볼 수도 없었고, 기분은 어떠시냐고 조차 물어볼 수 없었다. 그야말로 나는 말하려고 하지만 입이 안 움직여지는 ‘꿀 먹은 벙어리’ 보다도 못한 신세가 된 것이다. 그렇게 꿈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면서 마음만 아프고 안타까움만 한가득인 채로 어찌어찌하여 또 깨어났다. 역시 심장이 바스러지는 느낌, 명치가 꾹 눌리는 느낌, 목구멍이 타들어가는 느낌에 더하여 심한 두통까지 생겼다.
그리고 마지막 꿈은 아주 짧은 꿈이었다.
아이가 사라졌다. 아무리 찾아도 아이는 없었다. 실제로도 아이가 7살 때 홍콩 IFC 몰에서 아이를 잃어버린 경험이 있다. 그때는 평화로운 홍콩 시절이어서 친절한 건물 경비원들이 어린아이가 보호자 없이 서성거리는 모습을 보며 손짓, 발짓, 짧은 영어를 동원하여 의사소통을 해 아이를 데리고 건물안을 빙빙 돌고 있었다. 마침 우리는 처음 아이를 잃어버렸던 화장실 앞에서 혹시나 하고 대기하고 있던 찰나였다. 알고 보니 그 화장실은 입구도 2개, 출구도 2개인 곳이었다. 아이는 들어왔던 입구로 다시 나오지 않고 반대쪽 입구로 나갔던 것이고, 우리는 하염없이 아이가 들어갔던 입구에서 언제 나오나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뭐 아무튼 아이는 그 날 일을 기억하는지 못하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한 시간의 기다림이 무척 길게만 느껴지고 가장 초조했던 순간이었다. 어제 꿈은 7년 전의 일을 소환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요새 들어 제 멋대로 구려는 아이를 어떤 식으로 키우는지 고민이 많아져 잠재된 무의식 속에서 표출된 상징화된 꿈인 듯싶다. 아이는 어느 인파 속에 없어졌고, 나는 아이를 찾아 헤맸다. 하지만, 다행히도 무사히 아이는 집에 태연하게 돌아와 있었다. 내가 지금 어떻게 아이를 키우는 게 올바른 것인지 고민하긴 하지만, 아이는 꿈에서처럼 태연하게 잘 크고 알아서 집으로 돌아올 것 같다. 내가 붙잡아 앉혀 들려고만 하지 않으면..
이렇게 온갖 꿈을 동시에 꾸고 나니 아침에 겨우 눈떴을 때는 진짜 온몸에 힘이 다 빠지면서 아까의 통증들이 고스란히 이어졌다. 겨우 정신을 붙들어 매고 앉아있으니 신랑이 오늘은 내가 처음 공황 발작을 일으킨 1주년이라고 이야기해줬다. 참, 나의 몸은 별 걸 다 기억하고 기념해주는구나. 그건 안 해줘도 되는데. 삼단 콤보의 전투를 펼치니 벌써 하루 해가 다 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언제까지 이렇게 밤마다 치열하게 싸워야 할지 모르겠지만, 나의 밤손님에게 글 쓸 거리를 많이 제공해주니 감사했다고 해야 할지, 그만 오시라고 해야 할지 헷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