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선택하지 않은 채 태어난 가족
동생이 카르멘 오페라 공연을 예매해주었다. 내가 그렇게 카르멘을 좋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렵게 동생이 구해준 표에 감격한 마음으로 오페라 공연을 감상하였다. 그리고 인터미션이 되자, 나는 잠시 공연장을 나왔다. 그러자 동생의 가족, 엄마가 함께 무언가를 축복하고 있었다. 나는 다가가고 싶지만, 다가가서 그들의 흥을 깨고 싶지 않아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다.
그리고 다시 카르멘 공연을 보러 들어왔다. 공연을 보고 감동을 받았던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다시 동생의 가족과 엄마가 있는 곳으로 갔어야 했나 후회를 한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이렇게 꿈의 기억은 굴곡되어졌고 잠에서 깨어났다.
동생이 오페라 공연 표를 구해준 건, 얼마 전 조승우의 ‘맨 오브 라만차’ 표를 구해준 것에 대한 은유인 것 같다. 구하기 힘들다던 그 표를 구해줘서 참으로 고마웠다. 그러고 보니 동생과 엄마를 만난 지 느낌상 오래된 것 같기도 하다. 다리를 다쳐 집에만 갇혀 있는 신세가 되다 보니, 일상적인 일들에 대한 기억들이 점차 구부려져 가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고 딱히 신세 한탄을 할 생각은 없다. 팔을 다치지 않은 것만으로도 정말 다행이라 여기며 하루에 여러 번 다리에 둘둘 만 딱딱한 깁스를 두들겨준다. 일부러 딱딱한 곳에 부딪혀 보고 충격이 오나 안 오나 하는 희한한 놀이도 개발하였다.
뭐 어찌 되었든지 간에 동생은 나에게 언제나 고마운 존재이다. 나보다 5살 어린 그녀이지만. 나는 그녀가 태어나기 전과 태어난 후 내 삶의 변화들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날은 10월의 어느 목요일 밤이었다. 난 매주 목요일 밤 8시에 보던 “전우”라는 드라마를 혹시나 못 보게 되는 게 아닐까 마음을 졸였었다. 딱히 동생이 있었으면 하는 강렬한 열망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동생과 노는 친구들을 보면 가끔씩 부럽기도 했다. 아무튼 그 날은 나랑 엄마랑 단둘이 산부인과에 갔다. 지방에 출장을 가신 아버지는 함께하지 못하셨다. 나는 다행히도 병원 대기실 TV에서 “전우”를 드문드문 볼 수 있어서 좋았다. 한참 전에 들어가신 엄마의 비명소리와 아이아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던 건 그 무렵이었다. 나는 그 후 몇 시간을 더 그렇게 대기실에서 멀건히 앉아서 기다렸다.
아이와 엄마를 만난 건 더 한참 뒤였던 것 같다. 그리고 동생과 함께 집에 왔다. 그리고 동생은 신생아답게 아침마다 우렁차게 울어댔다. 덕분에 유치원에 가기 위해 일어나는 알람이 되었다. 나는 더 자고 싶었지만, 동생은 정확히 아침 7시가 되면 우렁차게 울어댔다. 난 시계를 보며 우는 동생을 원망하였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언니가 되었다.
그렇지만 5살의 나이 차이는 어릴 때는 커 보였다. 내가 고등학생일 때 그녀는 초등학생이었으니까.
하지만 우리는 다른 자매들처럼 옷이나 화장품을 가지고 싸운 적은 없다. 그저 함께 미드를 보고, 범죄 영화나 소설을 보며 키득거렸을 뿐이다. 물론, 내가 밖에서 지낸 시간이 많아서 그랬을 수도 있다.
그렇게 우리는 하루키를 공유하고, 왕가위도 공유하고, 타란티노는 애장 했다. 그녀는 나의 문화적 친구이며 동지였고, 가족이었다.
그러나 늘 그렇듯 각자의 결혼 생활을 꾸리게 되면 새로운 가족에 충실해지기 마련이다. 매일 카풀하며 출근길에 수다 떨던 우리의 일상은 몇 년이 지난 후, 각자의 차로 운전하며 각자가 꾸린 생활 근거지에서 각자 출근하는 걸로 바뀌었다.
그렇지만, 내 마음속 그녀는 언제나 그곳에 있다. 최근에 친한 친구가 언니와의 갈등으로 심하게 마음고생을 하고 있다. 험한 말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자매를 옆에서 보고 있자니 가슴이 아프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정신적 지지자 같은 동생이 항상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어서 나는 참 행운이다 싶기도 하다.
그 친구는 그랬다. 태어난 가족은 내가 선택하는 게 아니라, 선택된 것이기 때문에 나랑 안 맞으면 꽤 힘든 길이 된다고. 그에 비해 나는 내 동생을 유전자 조작이라도 하듯 만든 건 아니지만, 이상하게 나랑 잘 맞는 부분도 있고, 내가 배워야 할 지점도 많다. 물론, 같은 시간을 함께 한다고 무조건 기호나 성향이 같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 부분에 있어선 난 행운이라 여긴다.
형제나 자매끼리 “내가 너 끝장내서 사회생활 못하게 할 거야.” ,“법적 소송이라도 해서 네 인생 갈기갈기 찢어놓을 거야.” 등의 말을 들으면 얼마나 슬프고 속상할까.
변호사들도 그런다. 가족끼리의 소송이 가장 치열하고 비참해진다고. 어린 시절 일화부터 끄집어내며 케케묵은 갈등을 다 쏟아내면 걷잡을 수 없는 분노의 현장이 된다고 말이다.
물론, 가족은 언제나 애증의 관계이다. 하지만 인생이 늘 그렇듯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어떤 일들이 눈앞에 펼쳐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순간에 충실할 뿐.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나 역시도 순간적인 격동의 감정에 휩싸이고 괴로워한다. 역시 쉽지 않은 길이긴 하다.
나는 동생네 가족에 합류하지 않고 마저 공연을 보았다. 그건 내가 역시 멈추지 말고 내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함을 암시하는 게 아닐까? 동생이 지지해주는 그 일을. 무엇이든지 간에. 그렇지만 마음속에 그녀는 언제나 나와 함께 있다. 그녀의 아름다운 가족들도.
마지막은 최애 오페라 곡은 아니지만 그래도 들으면 신나는 카르멘 서곡과 더불어 천상의 목소리라 불렸던 마리아 칼라스의 음성으로 카르멘을 감상해보고자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EseMHr6VEM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