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Ma Rainey's Black Bottom)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Ma Rainey's Black Bottom, 조지 C. 울프, 2020)
https://www.imdb.com/title/tt10514222/?ref_=nv_sr_srsg_0
꿈 많은 흑인 청년 레비(채드윅 보스만 분)는 비록 자신이 지금은 ‘마 레이니(비올라 데이비스 분)’의 밴드 반주를 하고 있을 뿐이지만, 언젠가 세상은 자신의 능력을 알아봐 주고, 자신은 멋진 뮤지션이 되어 세상을 지배할 거라는 자신감에 차 있다. 그래서 밴드 연주보다는 자신의 곡을 쓰기에 바쁘고 밴드의 합주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 그는 알고 있다. 머리로는.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으며, 흑인에게는 기회가 좀처럼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피부색으로 핍박하는 이 미국 사회를 거칠게 비난하며 온갖 냉소를 쏟아낸다. 그러나 그 대상에 자기 자신이 될 줄은 몰랐다. 그저 정신만 똑바로 차라고 살면, 다른 흑인들처럼 백인들에게 당하는 일은 없을 거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을 거다. 그러나 현실은 그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든 말든, 그저 흑인일 뿐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고, 흑인은 그 어떤 재능도 가차 없이 무시될 수 있다는 걸 뼈저리게 깨닫게 해 줄 따름이다.
이 영화는 마 레이니가 ‘블랙 바텀(back bottom)’이라는 곡을 녹음하기까지 과정을 그린 일종의 소동극이다. 어거스트 윌슨의 연극 작품을 영화로 옮긴 작품이며, 이미 어거스트 윌슨의 작품을 영화화한 적이 있는 댄젤 워싱턴이 제작을 맡았다. 연극이 원작일 경우, 보통은 두 가지의 형태로 영화화가 되는데, 첫 번째는 연극의 내용을 충실하게 살려 영화 속 세팅을 연극의 무대처럼 설정하는 경우이고, 반대로 영화적 특성을 한층 되살려 음악, 소품, 카메라 웍, 미술 등을 더 과감하게 포인트를 주는 방법이다. 이 영화는 전자의 경우에 해당한다. 그래서 배우들의 연기는 쉴 새 없이 모토처럼 돌아가고, 카메라는 이들을 진지하고 성실하게 잘 담아낸다. 그래서 마치 영화를 보면서도 연극무대를 녹화한 화면을 보는 듯 한 기분을 느끼고, 관객과 배우들 사이에는 카메라라는 그저 얇은 막이 존재할 따름이다.
이런 방식의 연출은 배우들의 긴 호흡의 연기를 돋보이게 하며. 그중 레비의 쏟아내는, 그야말로 피를 토하는 듯 열변을 토하는 마지막 긴 롱테이크의 독백에 집중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블랙 바텀은 원래 20 세기 초 남부 시골의 아프리카 계 미국인들이 남부 시골에서 추던 춤이었는데 1920년대 대중문화에 흡수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이 영화는 그 무렵 블루스의 여왕이라 불리던 마 레이니가 시카고에서 블랙 바텀의 곡을 녹음하기 위한 우여곡절을 보여준다. 그 짧은 우여곡절 과정에서 많은 사건들이 일어나는데, 그 사건들은 모두 평범해 보이지만 흑인 사회의 모습과 현실을 여과 없이 드러나게 해 준다. 열리지 않은 문을 자꾸 열려고 하는 레비의 모습은 폐쇄적인 이 사회에 돌파구를 찾고자 하는 간절한 열망의 투영이다. 뭐 이렇게 문을 열라고 하니 밴드 멤버의 말은, 사회에 순응하고 살라는 말과 동의어일 수 있다. 결국, 레비는 힘들게 문을 연다. 모든 힘을 다 쏟아부어 문을 열고 만 것이다. 그러나 문이 열리자 그를 기다리는 것은 세 면이 다 둘러 쌓인 벽면들 뿐이었다. 더욱더 나갈 수 없는 공간만 직시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힘들게 ‘닫힌 문’이라는 걸 열린 순간, 레비를 기다린 건, 희망의 빛줄기가 아닌, 여전히 밖으로 나갈 수 없는 답답한 또 다른 공간만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현실’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아이러니.
따라서 마 레이니가 그토록 콜라를 마시고 싶어 했던 건 답답한 현실에 대한 갈증의 표출이자, 노래를 녹음하기 전 흑인으로서 자신의 권리를 부르짖을 수 있었던 유일한 돌파구였던 셈이다.
‘블랙 바텀’의 곡을 녹음하기까지 둘러싼 이들의 작은 여정은 단순히 노래를 리코딩하기 위한 해프닝이라기보다는 흑인으로서 살아가는 처절한 몸부림의 투쟁 아닌 투쟁인 셈이다. 결국, 노래의 녹음이 끝나자, 이에 가장 기쁨을 느낀 레코드 회사 주인인 백인들 뿐이었으며, 마 레이는 조카의 일당을 제대로 받아낼 수 있을지 걱정하고, 밴드 멤버들은 지난번처럼 수표로 받아 돈을 사용하지 못하는 거 아닌가 불안해한다.
자신의 노동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할까 전전긍긍해하는 모습이 낯설지는 않다. 약자들이 이 사회에서 정당한 대접을 받는다는 건 어떤 의미로 매우 복잡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 영화는 노동, 유색인종, 범죄, 대중문화, 종교, 음악 산업, 예술의 본질까지 모든 것을 함께 아우르고 있다. 가벼운 듯한 대화 속에 묵직한 주제 의식이 흐르고, 계속되는 비유적 표현들은 주제를 이끄는 핵심 장면들이 된다.
영화를 보고 나면, 블루스의 리듬들이 더욱더 애잔하게 느껴진다. 괜히 그런 멋진 장르가 탄생한 게 아니다!
특히나, 비올라 데이비스는 진짜 마 레이니처럼 믿게 만들 정도로 그 시대 블루스 퀸이었을 거 같은 연기력을 선보인다. 영화 전체적으로 봤을 때, 많은 분량은 아니지만, 그 존재감 자체로 '마 레이니'를 찰떡같이 소화한다. 거칠고, 오만하고, 변덕스럽고, 예술가스럽고 독선적인 기질을 그렇게 많지 않은 분량으로 표현한다는 건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올라 데이비스는 2021년 미국 아카데미에서 여우 주연상을 수상하지 못했다. 아카데미가 사랑하는 프랜시스 맥도맨드한테 밀렸다 하기엔, 너무나 아쉬움이 많이 남은 결과였다.
그래도 영화제 수상이 영화의 전부는 아니니까.
https://www.youtube.com/watch?v=cph7qZoE5d8
(마 레이니의 블랙 바텀 오리지널 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