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나이트 인 마이애미(One Night in Miami, 2020)
원 나이트 인 마이애미(One Night in Miami, 레지나 킹, 2020)
https://www.imdb.com/title/tt10612922/?ref_=nv_sr_srsg_0
배리 제킨스의 영화 ‘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If Beale Street Could Talk)’에서 강인한 흑인 여성의 모습을 눈부시게 보여줬던, 대표적인 흑인 여배우 레지나 킹의 감독 데뷔작이다.
말콤 엑스, 무하마드 알리, 샘 쿡, 짐 브라운의 만나서 흑인 운동의 방향성, 예술, 백인 중심의 사회에 대처하는 자세 등을 논의하는 이야기이다. 실제로 그들이 그런 이야기를 나눴는지 아닌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 네 명의 삶의 궤적을 보면, 진짜로 그들은 그날 그렇게 진지하게 흑인 시민운동의 방향성에 대해 논의했을 수도 있다.
그날은 바로 무하마드 알리가 챔피언이 된 그날이다. 1964년 2월 25일, 마이애미에서 소니 리스톤을 물리친 날, 그들은 알리의 승리를 축하해주기 위해 그날 모여서 조촐한 파티를 열면서 불꽃 튀는 토론을 벌이지 않았을까 하는 훈훈한 상상에서 출발한다.
그날 이후로, 말콤 엑스는 아프리카로 떠나고, 알리는 이슬람 신자임을 공표하고, 이름을 개명한다. (원래 캐시어스 클레이였으나, 이날 이후로 캐시어스 엑스로 바꾸고, 나중에 무하마드 알리로 바꾼다.) 샘 쿡은 그전에 가스펠 송이나 달달한 노랫말로 성공을 하였지만, 후에는 사회 비판적인 노래도 부른다(영화에서는 그렇게 묘사되고 있다). 그 핵심을 보여주는 게 마지막 엔딩 장면에 울려 퍼진 영화 주제곡으로 쓰인 ‘Speak Now’이다. (이 노래는 2021 미국 아카데미 주제가상에 노미네이트 되기도 하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NeUByFsDmKo
짐 브라운은 NFL 말고도 할리우드에서도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영화는 그날의 토론을 격정적으로 보여주진 않는다. 또한 무턱대로 우리를 그날로 끌고 가진 않는다. 각자의 이야기를 먼저 들려준 다음, 그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다가, 몇 차례 가벼운 소동극을 벌이기도 한다. 그들은 그렇게 밤을 보낸다.
각자의 다른 이야기인 듯 하지만, 결국엔 한 가지의 이야기로 수렴되는 셈이다. 그렇게 그들은 흑인으로서 겪은 차별을 가슴에 묻은 채,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이지만 피부색이라는 큰 장벽을 넘지 못하고 있었다.
짐 브라운은 NFL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끌어가지만, 고향에서 만난 백인들에게 그는 그저 풋볼을 잘하는 ‘흑인’ 일뿐이다. 훌륭한 그의 기량을 칭찬하는 동네 백인 어르신은 그가 자랑스럽다고 하지만, 그가 가구 옮기는 걸 도와주겠다고 하자, ‘흑인’은 집에 들이지 않는다면서 거절한다. 아무리 짐 브라운이 풋볼을 잘해도 그저 ‘흑인’ 일뿐이다.
노래를 잘하는 샘 쿡도, 백인 전용 클럽에서 공연할 때는 그저 듣기 싫은 ‘흑인 가수’의 노래일 뿐이다. 복싱을 잘하는 캐시어스 클레이도 마찬가지이다. 말콤 엑스는 연설자로서 이름을 떨치고 있지만, ‘네이션 오브 이슬람’의 이중적 생활 태도에 환멸을 느끼고 있다. 그는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서서히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그들의 각자의 생활을 보여준 후, 알리의 챔피언을 축하해준다는 명목 하에 그들은 마이애미의 '햄튼 하우스'라는 허름한 여관방에 모여서 어떻게 이 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할지를 이야기한다.
말콤 엑스는 샘 쿡에게 왜 사회 현안에 대해 노래하지 않느냐고 질타한다. 샘 쿡은 예술은 아름다움 자체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줘야 한다고 반박한다. 그러자, 말콤은 밥 딜런의 음반을 꺼내면서 사회 현안을 이렇게 아름답게 녹여내는 음악도 있다고 한다. 샘 쿡은 말콤 엑스가 자리를 비운 사이, 자기도 밥 딜런의 노래를 들으며 감동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샘은 친구들에게 자신은 백인에게 돈을 받지 않으면서 돈을 받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그랬다. 샘 쿡은 스스로 레이블을 만들고, 판권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즉 그들의 대화 속에서 나오는 ‘자본의 독립’을 스스로 일군 셈이다.
그들이 일상적으로 느끼는 고민은 사회적인 고민이며 정치적인 고민이 된다. 그들의 일상은 이미 정치, 사회적인 맥락에 놓여 있는 셈이다. 그렇게 그들의 의미 있는 밤은 일단락되고, 영화는 그 이후 그들의 이야기를 간략하고 핵심적으로 보여준다. 그 네 명의 삶을 심도 있게 알지 못해도, 마치 그들이 옆에 있었던 것처럼 그들의 대화를 들은 것처럼 생동감이 넘친다.
그들의 거대한 삶 속에서 핵심 적이었던 사건들을 샘 쿡으로 분한 레슬리 오덤 주니어(2021 미국 아카데미에 남우조연상으로 노미네이트 되었다.)의 노랫소리에 맞추어 보여준다.
영화를 보고 난 후, 그 네 명의 아름다운 우정에 감화가 되고, 그들의 삶에 대해 깊숙이 알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건, 레지나 킹의 밀도 있는 연출과 정말 높은 싱크로율로 캐스팅된 네 명의 이끌어낸 연기의 하모니.
지루하지 않게 흐르는 카메라 워크, 간결한 이야기 구성, 매력적인 세트 디자인, 따뜻한 색감의 보정 등 때문일 것이다.
잊고 있었던 말콤 엑스의 삶을 다시 되돌아보고, 대충 알았던 무하마드 알리의 세계관을 찾아보게 되었고, 낯설었던 샘 쿡의 음악적 여정을 살펴보았다. 샘 쿡은 마빈 게이가 존경했던 음악가이기도 했다. 그가 말한 ‘자본으로부터의 독립’ 역시 계속 머릿속에 맴도는 문구이자 의미심장한 지점이기도 하다.
흑인 시민운동의 역사를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그리고 있는 이 영화는 각 영역에서 최고였던 흑인 네 명의 친구들이 어떻게 자신의 영역을 일구어가고, 어떻게 역사를 바꾸는지를 따뜻하고 간결하게 보여준다.
그들의 ‘하룻밤’은 일상적인 ‘하룻밤’이었을 수 있지만, 그 ‘하룻밤’은 역사를 바꾼 의미 있는 이야기가 오고 갔던 ‘하룻밤’이었던 게다. 바로 무하마드 알 리가 챔피언이 되었던 마이애미 그곳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