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분석과 협치
지금부터 실제 사례를 통해 민관협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펴보자. 다만, 단순히 사례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분석의 관점을 먼저 정하고 시작하려 한다.
미국 브랜다이스 대학교에서 사회학과 공공정책 전공한 카르멘 시리아니 교수는 시민참여와 협력적 거버넌스 연구를 많이 진행했다. 1995년에 Reinventing Citizenship이라는 보고서를 작성하여 실제 정책에 협력적 거버넌스를 적용하기도 했다. 협력적 거버넌스 연구를 많이 하다 보니 협력적 거버넌스가 잘 운영되는데 필요한 핵심 요소, 원칙들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것이 바로 ‘협력적 거버넌스를 위한 8원칙’이다.
이제부터 협력적 거버넌스 8가지 원칙을 기준으로 민관협치 사례를 바라보겠다. 일단 8가지 원칙, 어떤 것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한번 살펴보자. 그림에 정책 공동 생산부터 상호책임보장까지 8가지 원칙이 표현되어 있다.
첫 번째는 정책 공동 생산이다.
1원칙이다. 정책을 시민과 공무원이 함께 생산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책을 초기에 기획할 때 함께 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문제의 원인이 이런 것이다, 이런 부분이 해결되어야 한다, 등 정책을 기획할 때부터 현장의 민간파트너와 함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이다.
두 번째 지역 자산 활용이다.
이 얘기는 현장에서도 종종 나오기에 우리에게도 익숙한 표현이다. 협력적 거버넌스를 진행할 때 해당 지역이 있다면 그 지역의 자산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이때 지역 자산은 인적 자산, 경험적 자산, 물리적 자산 등 다양한 자산이 포함된다.
세 번째는 전문 지식의 공유이다.
현장에서 협력적 거버넌스를 꾸리면 대부분 해당 주제와 관련 있는 전문가가 함께 참여를 한다. 참여해서 여러 가지 뭐 조언이나 관련 현황이나 솔루션에 대한 아이디어 같은 내용을 공유한다. 이런 과정에서 전문가 그룹의 전문 지식들이 참여하는 다른 주체에게 공유되고 전수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이다. 또 반대로 전문가의 지식뿐만 아니라 해당 지역의 로컬 지식이 전문가에게 전달되는 것도 중요하다. 로컬지식은 지역 주민에게 축적되어 있는 지역적인 추론이나 지역적 상황에 대한 추측들 혹은 어떤 사안에 대한 주민들의 공감대 등을 의미한다. 이러한 전문가 지식과 로컬 지식이 상호 교류되면서 공유되는 것이 협력적 거버넌스를 시행함에 있어 매우 중요한 과정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네 번째는 숙의과정의 형성이다.
민관협치와 시민참여는 참여자들의 숙의와 공론, 상호 간의 대화가 매우 중요한 과정으로 설정되어 있다. 어떤 사회문제에 대해 문제를 정의하고, 서로 간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가장 효과적인 해결방안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는 충분한 숙의 과정, 충분한 대화의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다.
다섯 번째는 지속가능 파트너십이다.
시민과 공무원이 어떤 문제를 함께 해결하려고 할 때 파트너십을 맺는다. 그런데 이런 것이 단발성 파트너십이 아니고 중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구조로서의 파트너십을 맺고 가는 것이 중요하다. 아쉽게도 우리나라 정책과정의 협력적 거버넌스는 단발성 파트너십의 사례가 더 많은 듯하다.
여섯 번째는 전략적 거버넌스 구축이다.
지속가능 파트너십하고 조금 비슷하지만 앞에 전략적이라는 단어가 붙었다. 이것은 사안에 대해 이해 당사자들이 첨예하게 있는 경우를 가리키고 있다. 시리아니 교수는 이해관계자가 첨예한 사회문제의 경우 광범위한 이해당사자들과 하나의 테이블에 앉아서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언급한다. 때로는 그 자체가 하나의 성과라고 덧붙이고 있다.
일곱 번째는 제도문화 전환이다.
제도와 문화의 변화는 민관협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많이 나오는 이야기이다. 민관협치를 진행하다 보면 그 과정과 결과로 인해 행정조직이나 다양한 공공의 프로세스에 제도적, 문화적 변화를 가져오는 경우가 있다. 시리아니 교수는 이러한 제도적, 문화적 변화들이 장기적 행정조직의 문화를 전환하는 계기와 촉매가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여덟 번째는 상호 책임보장이다.
이것 또한 민관협치하면 항상 따라 나오는 이야기 중에 하나이다. 과연 책임을 민간파트너가 감당할 수 있느냐, 책임을 어떻게 나눌 수 있느냐, 민관협치 과정에서 이런 이야기들이 항상 나온다. 사실 쉽지 않은 문제이다. 시리아니 교수는 책임보장과 관련해서는 명확한 역할을 구분하고 그것을 보장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에 따라 조금 추상적일 수 있지만 ‘360도 책임’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360도 책임은 참여하는 모든 주체가 다 함께 책임을 공유하는 일정한 약속이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각 주체별로 어떤 부분에서 책임을 질 것이 가에 대해 초기에 정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렇게 첫 번째부터 여덟 번째까지 주요한 원칙들, 쉽게 협력적 거버넌스를 하는 데 있어 핵심 요소들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그렇다면 8가지 원칙이 모두 충족되어야 하는 것인가? 모든 충족되어야 좋은 협력적 거버넌스인가라는 질문이 생긴다. 정답은 ‘그럴 필요 없다’이다. 사실 현실에서 8가지 원칙을 모두 충족하기는 어렵다. 시리아니 교수 또한 모든 원칙을 충족할 필요는 없다고 이야기한다. 협력적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실행하는 지역의 상황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그 상황에 맞게 최적의 필요 요소들을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하고 있다.
시리아니 교수는 자칫 이것을 단순하게 하나의 프레임으로 적용해서 모든 내용을 8가지 원칙에 맞추어 일률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오히려 더 위험하다고 우려를 표한다. 현장마다 협력적 거버넌스를 꾸린 이유, 그리고 각각의 협력적 거버넌스가 지향하는 목표를 살펴보고 그것에 가장 부합하는 핵심적인 요소를 선별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시리아니 교수의 협력적 거버넌스 8원칙은 사례분석의 틀로써도 훌륭하고, 민관협치사업의 과정과 결과를 모니터링·평가하는 프레임으로도 훌륭하다. 그렇기에 8가지 원칙, 핵심요소를 잘 기억해 두면 이래저래 유용하니 잘 기억해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