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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어공 Jan 02. 2021

누군가는 들어야 한다

협치의 나날달 번외편

꽤 시간이 지난 일이다.


민관협치라는 업무를 맡고 얼마 되지 않은 때에 어느 지역에서 호출이 왔다.(이 지역은 민관협치 정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곳이었다) 협치회의에서 갈등이 발생하여 설명을 부탁하는 요청이었다.


회의에 배석해서 상황을 보니 어떤 사안에 대해 협치위원 간 이해의 차이가 있었고, 어느 민간위원이 해당 사안에 대해 다시 숙고하여 결정하자는 의견을 주장하고 있었다. 들어보니 그 사안은 내용이 어렵거나 심각한 것은 아니었으나 진행했던 과정을 조금 거슬러 갈 수도 있어 보였다.(사실 시간이 좀 지체될 수는 있었지만 요청하는 내용은 꽤 타당했다) 민간위원 간에도 이 부분에 대해서 시각차가 존재하는 상황이었다. 사실 과정을 조금 되돌리거나 지체하는 상황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강하게 요구하는 상황이었고, 그 부분에서 꽤 큰 마찰이 발생했다. 이견을 제기하는 사람이 한 명이였지만 꽤 중요한 역할과 위치였기 때문에 무시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래저래 회의는 끝났고, 구성원 간의 갈등과 흥분은 꽤 고조되어 이어졌다.


행정과 민간, 민간과 민간의 중간에서 완충 작용을 해보려고 했지만 정신없게 그 자리가 마무리되었다.


이래저래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에 그 민간위원과 우연히 다시 만났다. 아직 앞의 상황에 대한 감정이 가라앉지 않았는지 다른 민간위원과 이야기 중이었다.(사실 그냥 지나치고 싶었지만 딱 걸렸다) 여하튼 야외 벤치에서 2시간 반 동안 왜 그러한 요청을 했었는지, 과정과 절차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소통의 방식 부재 등 다양한 세부 상황을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 모두들 이런 이야기를 잘 들으려고 하지 않고, 매우 불편해한다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사실 이런 말들을 2시간 반 동안, 그것도 꽤 흥분(upset)한 사람에게 듣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잘 들었다.(이게 나의 재능이었나?!) 나는 들으면서 민관협치가 추구하는 방향에 대해 동감 가는 부분이 많았고, 그런 부분에서 동의와 응원도 함께 했다.(물론 앞서 나간 다소 이상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현실의 상황에 대한 이해도 구했다)


2시간 반이 지난 후, 밤 11시 30분, 그 민간위원은 들어줘서 너무 고맙다며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너무 늦어 미안하다고 하며 본인이 아까부터 가지고 있던 카스텔라 케이크를 손에 쥐어주었다. 사실 이런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회의에서 하고 싶었는데 그게 너무 아쉬웠단다. 협치는 원래 서로의 의견을 자유롭게 주고 받고, 때론 서로의 논리를 주장하며 논쟁도 하는 그런 모습을 상상했었는데 현실은 너무 달라서 실망한 것 같다고, 그래서 괜히 더 흥분했던 것 같다고 하였다.


그때 그 사람의 얼굴은 온화한 미소로 가득했고, 아까의 흥분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나는 우스갯소리로 주요 업무가 하소연 듣기라는 말을 가끔 한다.(사실 꽤 많다) 그 대상은 민간파트너와 행정파트너를 가리지 않는다.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 함께 일을 하려니 오죽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겠는가. 당연히 이해 안 되는 부분이 있고, 그것은 민과 관을 가리지 않고 서로의 관점에서 모두 발생한다.


그럴 때, 누군가는 잘 들어야 한다.


일단 잘 듣는 것(good listening)이 매우 중요하다. 경청하는 것은 말하는 사람에게 당신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다는 신호를 준다. 경청의 시간이 지나면 그것은 신뢰라는 모습으로 되돌아온다.


이렇게 민간파트너와 행정파트너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려고 노력했고,  5년의 시간이 흘렀다. 물론 쉽지 않은 시간이다. 하지만 그런 경청의 시간은 현재 어김없이 신뢰라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다. 참고로 이야기 속 민간파트너는 그 날 이후 누구보다 민관협치에 적극적이다.


5년  여름밤의 2시간 30,

한 손에 쥐어진 카스텔라,

그리고 따뜻한 미소.


 장면에 협치의 원리가 모두 담겨 있다고 하면 오버일까. 왠지 오버가 아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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