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어느 밤, 작지만 아늑한 나의 아파트에 앉아있었다.
내가 앉아있는 소파 옆에는 저번주에 사 온 작은 램프가 놓여있었는데, 거기서 나오는 따듯한 호박색 불빛이 내 얼굴을 부드럽게 비추고 있었다.
가끔 창밖에서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외에는 아주 고요하고 조용했다.
소파에 앉기 직전 뜨거운 물을 넣은 찻잔에는 아직도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나는 녹차의 은은한 단맛을 음미하며 한 모금 마시고 눈을 감았다.
녹차 특유의 은은한 풀내음이 내 안을 가득 채웠고, 손에서는 따듯한 컵의 온기가 느껴졌다.
내 몸이 이완되는 것을 느꼈다.
이 차는 나를 어린 시절로 돌려보냈다.
어렸을 적 시골에 있는 할머니네 집으로 놀러 갈 때면, 할머니는 항상 따듯한 차를 내어주셨다.
함께 차를 마실 동안, 할머니는 자주 인생, 사랑, 그리고 세상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때 난 겨우 초등학생이었기 때문에 할머니의 말을 대부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따듯함이 넘쳐나는 공간에서 할머니와 대화하는 그 자체가 충분히 즐거웠고, 충만했다.
오늘 밤, 나는 차를 마시면서 그녀의 존재를 느낀다.
눈을 감고 나긋나긋 울려 퍼지는 할머니의 목소리를 듣는다
나는 차를 마지막으로 한 모금 마시고, 컵을 내려놓았다.
마지막 한입의 온기가 목을 넘어 가슴으로 내려갔고, 내 안은 만족감으로 가득 찼다.
나는 편안했고, 평화로웠다.
5년 전 할머니는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먼 곳으로 떠났지만,
매년 찾아오는 12월의 추운 겨울밤, 따듯한 차를 마시는 날이면 나는 다시 할머니와 가까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