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어느 밤 나는 차를 마셨다

by 뜨레


DALL·E 2023-01-15 03.26.42 - an illustration of the man who is sitting on the sofa beside the window at cozy apartment, the orange light of small lamp located  on the table beside.png


12월의 어느 밤, 작지만 아늑한 나의 아파트에 앉아있었다.

내가 앉아있는 소파 옆에는 저번주에 사 온 작은 램프가 놓여있었는데, 거기서 나오는 따듯한 호박색 불빛이 내 얼굴을 부드럽게 비추고 있었다.


가끔 창밖에서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외에는 아주 고요하고 조용했다.

소파에 앉기 직전 뜨거운 물을 넣은 찻잔에는 아직도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나는 녹차의 은은한 단맛을 음미하며 한 모금 마시고 눈을 감았다.

녹차 특유의 은은한 풀내음이 내 안을 가득 채웠고, 손에서는 따듯한 컵의 온기가 느껴졌다.


내 몸이 이완되는 것을 느꼈다.


이 차는 나를 어린 시절로 돌려보냈다.


어렸을 적 시골에 있는 할머니네 집으로 놀러 갈 때면, 할머니는 항상 따듯한 차를 내어주셨다.


함께 차를 마실 동안, 할머니는 자주 인생, 사랑, 그리고 세상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때 난 겨우 초등학생이었기 때문에 할머니의 말을 대부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따듯함이 넘쳐나는 공간에서 할머니와 대화하는 그 자체가 충분히 즐거웠고, 충만했다.


오늘 밤, 나는 차를 마시면서 그녀의 존재를 느낀다.

눈을 감고 나긋나긋 울려 퍼지는 할머니의 목소리를 듣는다


나는 차를 마지막으로 한 모금 마시고, 컵을 내려놓았다.

마지막 한입의 온기가 목을 넘어 가슴으로 내려갔고, 내 안은 만족감으로 가득 찼다.


나는 편안했고, 평화로웠다.


5년 전 할머니는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먼 곳으로 떠났지만,

매년 찾아오는 12월의 추운 겨울밤, 따듯한 차를 마시는 날이면 나는 다시 할머니와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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