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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좋은 어른이 된다는 건

좋은 어른이 된다는 건     

나이 들수록 우리는 좋은 어른,

제대로 사는 어른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것은, 내밀히 들여다보면

정말로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기보다

좋은 어른으로 비치고 싶은 욕망이 아닐까.

인생 선배로서 한마디 할게 이렇게 살아야 해

저렇게 살아야 해라는 말로

내가 얼마나 좋은 어른인지 설명하려고 애쓸 필요 없이,

선배가 사는 모습이 좋아 보이면

그 모습이 자연스럽게 후배에게 스며드는 게 아닐까.

그게 최고의 조언은 아닐까.      

혹시 이 세상이 손바닥만 한 스노볼은 아닐까

조미정 지음, 웨일 북스, 88~89쪽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일에서 멋지게 성공하고 이른바 후진양성이라는 걸

하고 싶은 포부가 예전에는 있었다.

소위 닮고 싶은 선배나 롤 모델이라는 것도 되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내 알았다.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멘토는 내 자리가 아니었다.

나 하나 살기도 바쁜데,

누가 누구의 모범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어른들 말씀처럼 그저 입 다물고 지갑이나 열면 되는 것인데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세대 비슷한 또래들끼리,

말 통하는 이들끼리 편하게 먹고 싶을 텐데 시간 내서

나와 같이 먹어주는 것만 해도 참 고마운 일이다.      


얼마 전 후임으로 피겨 중계를 한 후배에게 그동안의 모든 노하우를 알려주라는 상사의 지시가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터였다.      

전문적인 부분은 해설위원이 있으니

나는 방송을 어떤 식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꼭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 위주로

가능한 내가 아는 모든 것을 알려주었다.


혹시나 해서 시상식 중계 요령까지 상세하게 전수(?)했는데, 우리나라가 김연아 선수 이후

사대륙 선수권대회에서 처음으로 2위를 하면서

후배는 첫 중계에서

시상식까지 방송하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행운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모름지기 선수가 잘하면 중계진까지 웬만하면 칭찬을 듣는다.

눈에 띄는 큰 실수만 아니라면 잘했다는 평가가

여지없이 기다리고 있다.      

경기 후에 상사는 나에게 어떻게 보았느냐며

모니터 결과를 물었고,

나는 잘 안착한 것 같다고 대답하며 같이 안도했다.      

상사는 말했다. "하여튼 00 씨 운도 좋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나는 한편으로 씁쓸했다.

운이 따라주는 사람과 따라주지 않는 사람이 확실히 있구나, 운도 실력이라면 나에게 지독히도 따라 주지 않았던

그 운 탓이라는 걸 할 수 없겠구나 싶어서였다.      


운도 좋았지만 노력이 뒷받침해주지 않았다면

결코 할 수 없었던 첫 방송에서 연착륙.

후배는 나에게 출근하자마자 하이파이브를 청했다.

 참 뿌듯하고도 고마웠다.

살면서 한 번쯤 제대로 된 선배 노릇이라는 걸

해보고 싶었는데 방송 일이라는 것이,

워낙 다양하고 개성이 필요한 일이라

각자도생의 성격이었는데

나에게는 흔치 않던 기회가 닿아서였다.


게다가 이런저런 우여곡절이 녹아있는 선배의 경험을 놓치지 않고 소중히 받아 안아,

자신의 것으로 찰떡같이 소화해 주니 더 감사했다.

후진양성이라는 거창한 꿈은 아니었지만

현실적인 인수인계의 목표를

실현하게 해 줘서 더더욱 그랬다.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는 어른이자 선배인 상사와 나는

또 다른 노파심이 생긴다.

‘이번에는 선수들이 잘해줘서

운 좋게 어찌어찌 잘 넘어갔지만,

다음번에는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줘야 할 텐데.’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리 큰 걱정은 하지 않으려 한다.

연습이 실전이고 실전이 연습이라는 말이 있듯

한 번의 큰 경험이 후배에게는 값진 자산이 되었을 것이고,

워낙 센스가 있는 데다가 이번 일로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걸 자연스레 알게 되었을 테니 말이다.      


결국 생각은 돌고 돌아 제자리로 온다.

"누가 누구를 걱정하는 거야?

괜한 오지랖에 오버하지 말고 내 할 일이나 잘 하자."          


      




혹시 이 세상이 손바닥만 한 스노우볼은 아닐까

저자조미정

출판웨일북(whalebooks)

발매2019.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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