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긴장한 상태로 손소독제까지 챙긴 엄마, 아빠와는 대조적으로 아이는 무척 신이 나있었다.
애완 새우를 사러 가기로 했으니 말이다. 초등학교 입학 전, 글쓰기 연습을 하면 도장을 찍는 칸이 그려진 종이에 ‘참 잘했어요!’ 도장 대신 새우 그림을 새겨주었다.
한 칸에 한 마리씩 그린 새우는 애완 새우 한 마리를 의미한다. 연필 잡는 것조차 쉽지 않은 아이에게 새우 도장 하나당 한 마리의 새우를 사주겠다는 약속은 비록 괴발개발 억지로 그리는 글씨였지만 그럭저럭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아이는 애완동물 코너로 날아갈 듯 향했다. 손톱만 한 새우들은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사랑스러운 존재였고, 아이는 좀 더 잘 보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엉덩이를 뒤로 뺐다. 그때 옆을 스쳐 지나가던 한 할머니가 아이의 엉덩이에 닿을 듯하자 자지러지듯 손을 가로저었다. 일회용 비닐장갑을 쓴 손이었다.
그 할머니는 아이가 ‘코로나 19’ 때문에 유치원에 가지도 못하고 꼬박 일주일 넘게 집에만 있다가 모처럼 마실 나온 사정을 알 리가 없었다. 아이의 옷깃이 닿을까 봐 노심초사 부르르 떨기까지 했던 그 할머니는 아이보다는 훨씬 더 여러 장소를 전전했을 텐데 싶은 마음에 내 입장에서는 황당하기까지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새우에 정신 팔린 아이는 체리 새우 3마리와 노란 새우 3마리, 그리고 생이 새우 2마리를 골라 비닐에 담았다. 옆 어항에 있는 민물가재는 합사가 불가능해서 다음번에 따로 사기로 했다. 아이는 기쁜 마음에 방방 뛰었고, 주변에 있는 아이에게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안녕? 나 오늘 새우 샀다. 어항에 넣어서 키울 거야.”
순간 옆에 있던 아이 아빠의 동공이 흔들렸다. 우리 아이가 너무 자신의 아이에게 가까이 다가가 말을 건넸기 때문이었다. 두 아이 모두 마스크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아이 아빠는 자기 아이를 얼른 안아 들고 도망치듯 사라졌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무서워하고 사람이 다른 사람이 두려워서 피하게 되는 일. 누군가 다가오는 것조차 혐오스러워 슬금슬금 그 자리를 뜨게 되는 일.
낯선 어른이 다가와 말을 시키면 긴장하던 아이들이, 이제는 낯선 또래 아이가 다가와 말을 걸어도 줄행랑을 쳐야 되는 상황이 되었다.
아이에게 모르는 사람에게는 불안감을 조성할 수도 있으니 말을 걸지 말라고 할 걸 그랬나 싶기도 했다. 한없이 씁쓸했지만 입장이 바뀌었대도 나 역시 별 수 없었을 것이다.
코로나 19가 장기화 조짐을 보인다고 한다. 4,5월에 절정이었다가 6,7월은 되어야 수그러든다고 한다. 당분간 마트는 가지 말아야겠다. 아이든 어른이든 너나 할 것 없이 자신도 모르게 남에게 실례를 하거나 피해를 줄 수 있겠다 싶어서다. 아이의 무심한 접근에 자지러지는 할머니와, 반갑게 건네는 몇 마디 말에 황급히 자리를 옮기는 어느 부자(父子)의 모습과는 대조적이었던 아이의 해맑은 표정이 도저히 잊히지 않는다.
문득 오스카 4관왕을 휩쓴 ‘기생충’에서 다른 사람이 죽은 상황에서도 아랑곳없이 자신의 아들만을 챙기며 코를 틀어막는 이선균의 모습도 떠오른다. 우한의 어느 마트에서 하나 남은 마스크를 서로 사겠다며 드잡이를 하던 동영상이 어쩌면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공포감마저 든다.
일단은 작전 수행하듯 비장하게 생필품을 사러 나가는 오프라인 장보기를 온라인 배송으로 대신하며 무사히 살아남아야(?)겠다. 사람이 다시 바이러스가 아닌 온전한 사람으로 보일 때까지는 시간이 꽤 필요할 것 같다. 그때까지 우리 모두 무탈하게 지내는 것만으로 충분히 기특해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