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가 감탄할 수 있는 것도 재능이라는 말에 적잖은 용기를 얻었다. 침팬지와 우리는 겨우 유전적으로 1.6% 정도 다를 뿐인데 온갖 문명의 이기를 누리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감탄할 수 있는 능력 때문이라고 한다.
우린 어렸을 때 얼마나 사소한 일에도 감탄을 금치 못했는지 떠올려본다. 완두콩이 또르르 굴러가는 것만 봐도 어깨를 들썩이며 까르르 웃던 여고시절도 있었다. 보잘것없는 일에도 기뻐하고 놀라워했던, 참 많이 즐거워하고 원 없이 웃었던, 우리는 모두 알고 보면 재간둥이들이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경이로움에서 비롯된 탄성은 한동안 이어졌다. 내 아이가 “엄마.”하고 그 작은 입술로 말문을 터뜨렸을 때, 처음으로 뒤집고 앉으며 소파를 붙잡고 섰을 때, 수백 번 넘어지기를 반복하다 마침내 제 발로 서서 내게로 아장아장 걸어올 때, 숟가락으로 손수 밥을 떠서 흘리지 않고 제 입으로 가져갈 때, 부러뜨릴 듯 그러잡은 연필로 삐뚤빼뚤 ‘엄마, 사랑해요.’를 썼을 때...
어깨에서 팔꿈치만큼으로 태어난 갓난아이가 심장 높이까지 올라선 지금, 아쉽게도 이제는 더 이상 감탄할 일이 없다는 사실이 한탄스러울 수 있다.
사전을 찾아보니 ‘감탄’은 마음속 깊이 느끼어 탄복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그 ‘감탄’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것도 재능이라면, 마음껏 표현하며 감상하는 ‘감탄과 엇비슷한 감정과 느낌들’ 모두 다 재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음악을 들으며 공중에 흘러 다니는 음표를 상상할 수 있는 재능,
멋진 풍경을 무심히 지나치지 않고 오래도록 바라볼 수 있는 재능,
다른 사람의 아픈 마음을 누구보다 예민하게 알아챌 수 있는 재능,
새벽의 적막 속에서 낮에는 미처 몰랐던 작은 소리들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재능......
우리의 재능이 생각보다 많아질 수 있겠다 싶다. 게다가 누구나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니 재능을 기꺼이 꺼내 키울 수 있다. 굳이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구분해 양자택일 할 필요도 없이, 많으면 많을수록,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좋은 재능이다. 눈을 크게 뜨고 "우와!"라고 외칠수록, 콧등을 부여잡으며 ‘크!’ 소리를 많이 낼수록 우리는 그만큼 더 다재다능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