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회복 선언문

딸꾹질처럼 사라진 것들

by 안녕 굿데이

나는 오랫동안 나를 초라하게 생각했다. 가진 것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뚜렷하게 내세울 명함이 없어서도 아니었다. 그저 내 존재의 부피가 남들보다 한참은 덜 나가는 것 같은, 스스로만 느끼는 막연하고도 집요한 결핍이었다. 저울에 올라가 본 적도 없으면서, 나는 늘 내가 깃털처럼 가볍다고 확신했다.

문제는 그 시선이 거울 앞에서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습관처럼 내 눈을 타인의 눈동자에 덧씌웠다. 내가 나를 시시하게 여기니, 세상 모든 사람도 나를 시시하게 볼 것이라 확신했다. 내 안의 낮은 자존감이 거울처럼 타인의 눈에 투영된 것이다. 그것은 ‘자격지심’이라는 이름의, 아주 짙고 어두운 색안경이었다.

그 안경을 쓰고 보면 모든 시선이 나를 향한 심판처럼 보였다.

하지만 내가 잠시 잊고 있었던 명백한 사실이 하나 있었다. 평소 내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 “다들 자기가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라 자의식이 강하다”는 그 명제였다.

그렇다. 그들도 저마다 자기 영화의 주연 배우들이라, 본인의 대사와 연기를 챙기느라 정신이 없다. 내 눈에만 내가 주인공이지, 그들의 앵글에서 나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행인 1’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들은 나를 감시한 게 아니라, 오늘 저녁 메뉴를 고민하거나 자신의 배역에 심취해 있었을 뿐인데. 나는 행인 주제에 주연 배우들이 나만 보고 있다고 착각한 셈이다.

그 사실을 몰랐던 나는 사람들 틈에만 섞이면 이상하게 쪼그라들었다.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과장된 리액션을 하거나, 반대로 투명 인간처럼 입을 꾹 다물었다. 마치 터져 나오려는 딸꾹질을 억지로 참는 사람처럼, 나는 내 안의 불안을 꿀꺽 삼키며 숨을 죽였다. 아무도 나를 유심히 보지 않는데, 나는 모두가 나를 감시한다고 믿었다. 그것도 내가 나를 바라보는 그 가혹하고 멸시 어린 눈빛으로.


이 지옥 같은 자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무던히도 발버둥 쳤다. 심리학 책을 밤새워 읽고, 거울 속 나를 다독여도 보았다.

하지만 애를 쓸수록 수렁은 깊어졌다. 괜찮은 척하려 할수록 나의 초라함은 더 선명하게 도드라졌고, 타인의 시선은 더 날카로운 화살이 되어 내 몸을 뚫고 들어왔다.

그렇게 내 안의 바닥까지 긁어내며 괴로워하던 어느 날이었다. 더 이상은 잘 보일 기력도, 아닌 척 포장할 에너지도 남아있지 않은 완전한 탈진 상태. 나는 비로소 나에게 백기를 들었다. 더 나은 사람이 되려는 발버둥을 멈추고, 그냥 바닥에 널브러진 내 마음을 향해 툭, 한마디를 던졌다.


“그래, 나 좀 지질하다. 남들 눈치도 엄청 본다. 그게 나다. 어쩔래.”

그것은 포기라기보다는, 처절한 인정이었다. 나의 초라함을 숨기기 위해 온몸에 잔뜩 주고 있던 힘을, 죽을힘을 다해 탁, 놓아버린 순간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그토록 공들여 읽은 심리학 책 어디에도 “어쩔래”가 해답이라고는 적혀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랬더니 나를 숨 막히게 하던 그 증상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멈추지 않던 딸꾹질 같았다. 숨을 참고 물을 마시며 멈추려 애쓸 때는 온몸을 들썩이게 하더니, 에라 모르겠다 하고 긴장을 풀어버리자 그제야 스르르 잦아든 것이다.


알고 보니 그것은 타인의 시선 때문이 아니었다. 내가 나의 초라함을 들키지 않으려고 잔뜩 힘을 주고 있었기에 생긴, 내 불안의 경련이었다. 결국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남들의 눈이 아니라, 나를 노려보던 내 안의 눈초리였다.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타인의 시선은 더 이상 공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내가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데, 누가 나를 부끄럽게 할 수 있단 말인가.


고요해진 마음으로 주위를 둘러본다. 나를 노려보던 그 수많은 눈동자는 실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만들어낸 허상이었고, 스스로를 괴롭히기 위해 불러낸 유령이었다. 유령은 믿는 자에게만 보인다더니, 정말이었다.

이제 나는 사람들 틈에서도 제법 편안하게 숨을 쉰다. 사라지고 나서야 알았다. 그 숨 막히던 고통은, 내가 나를 부정하려 애쓰던 그 시간들이 만들어낸 긴 딸꾹질이었음을.


그리고 깨달았다. 내 존재의 부피가 작았던 것이 아니었다. 불안한 내가 스스로를 쥐어짜며 작아지게 만들었을 뿐이었다. 힘을 빼니, 나는 비로소 나만의 부피를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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