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물류센터 노동자의 항소이유서

성실함이 죄가 되고 책임감이 조롱받는 이 비정한 시대를 향하여

by 안녕 굿데이

[항소이유서]


사 건: 성실함에 대한 모독 및 신체 손상


피고인: 어느 물류센터 계약직 노동자 (우측 족관절 관절염 환자)


항소인: 위 피고인


위 사건에 관하여 피고인은 다음과 같이 항소이유를 개진합니다.



1. 항소의 동기


본 피고인이 이 서면을 작성하는 것은, 훼손된 오른쪽 발목의 통증이 극심해서가 아닙니다. 혹은 병원비조차 감당하기 버거운 빈곤함이 억울해서도 아닙니다.


본 피고인이 참을 수 없는 것은, 국내 최대 규모의 거대 물류 기업을 이끄는 총수가 내뱉었다고 알려진 “시급제 노동자는 성과급이 없으므로 열심히 일할 이유가 없다”라는 천박한 궤변이, 피고인의 지난 삶을 송두리째 모욕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피고인이 땀 흘려 일한 시간은 ‘비효율적인 낭비’였으며, 요령 피우지 않고 일한 태도는 ‘어리석음’으로 규정됩니다.


이에 피고인은 자본이 내린 ‘미련한 노동자’라는 1심 판결에 불복하며, 인간의 노동이 단지 화폐로만 환산될 수 없음을 항변하고자 합니다.


2. 교육의 배신과 자본의 기만


본 피고인은 유년 시절부터 가정과 학교, 그리고 사회로부터 일관된 가르침을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라. 요령 피우지 않고 묵묵히 제 몫을 다하는 자가 성공하고 존경받는다.”


피고인은 이 가르침이야말로 시민사회를 지탱하는 건강한 윤리이자, 인간으로서 마땅한 도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 믿음은 피고인의 삶의 자세가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피고인은 소위 ‘혁신’이라 칭송받는 그 거대한 물류 현장에서도 그 믿음을 실천했습니다.


관리자가 보지 않는 순간에도 쉼 없이 상자를 날랐고, 1분 1초를 아껴가며 발을 굴렀습니다. 몇몇 주변 동료들이 적당히 요령을 피울 때, 때론 피고인은 그들을 경멸하기까지 했습니다.


같은 급여를 받으면서 태업을 일삼는 그들이야말로 부끄러운 존재이며, 우직한 피고인 자신이 도덕적 우위에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실의 법정에서 승리한 것은 피고인이 아니었습니다. 피고인에게 남은 것은 회복 불가능한 관절염과 병든 육체뿐인 반면, 피고인이 비난했던 ‘요령 좋은’ 이들은 건강한 몸으로 현장에 더 오랜 시간 근무하며 피고인 보다 더 많은 돈을 벌어갑니다.


피고인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를 길러낸 이 사회의 교육은 거짓이었습니까?


국가는 피고인을 훌륭한 시민이 아니라, 마모될 때까지 불평 없이 돌아가는 순종적인 기계 부품으로 쓰기 위해 그토록 ‘성실’을 주입했단 말입니까?


어쩌면 피고인이 손가락질했던 그들이야말로 이 비정한 착취의 구조를 일찌감치 간파했던 현자였을지도 모른다는 자괴감에, 피고인은 뼈가 시리도록 참담함을 느낍니다.


3. 인간 노동의 본질에 관하여


귀사의 경영진은 노동자를 ‘돈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 기계’로 단정했습니다. 그러나 피고인은 단호히 주장합니다.


노동자는 인격체이기에 ‘돈이 없어도 양심에 따라’ 움직입니다. 피고인이 숨이 턱까지 차오르도록 달린 것은 귀사가 던져주는 몇 푼의 돈을 탐해서가 아니라, ‘나는 내 몫의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라는 스스로에 대한 존엄을 지키기 위함이었습니다.


따라서 진정으로 부끄러워해야 할 자는, 성실한 사람들의 선의를 착취하여 거대한 부를 쌓아 올리고도, 그들의 죽음과 고통 앞에서는 “열심히 일할 이유가 없다”며 인간을 모독한 자본가들입니다.


4. 결론


비록 자본의 셈법으로는 피고인이 가장 어리석은 패배자일지 모릅니다. 피고인의 성실함은 악용당했고, 육체는 훼손되었습니다.


그러나 역사와 양심의 법정에서 피고인은 무죄를 주장합니다.


내 오른쪽 발목에 새겨진 둔탁한 통증은, 피고인이 비겁하게 요령 피우지 않고 온몸으로 삶의 가치를 증명했다는 명예로운 상처입니다.


피고인은 비록 절뚝거리는 다리로 법정을 나서지만, 영혼만은 저들의 천박한 논리보다 훨씬 더 높은 곳에 서 있음을 확신합니다.


모순투성이이기 때문에 더욱더 내 지나온 삶을 사랑하는 피고인은, 노동의 가치를 모독하는 시대를 향해 어느 시인의 시구(詩句)에 마지막 자존심을 덧입혀 이 항소를 마칩니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분노할 줄 아는 나는, 아직 패배하지 않았다.


2026년 1월

피고인 (성실했던 어느 노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