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회복 선언문

쉬운 길은 늘 내리막이었다.

by 안녕 굿데이

동네 뒷산을 오르다 문득 멈춰 섰다. 심장은 갈비뼈를 두드리고, 허벅지는 불에 덴 것처럼 뜨거웠다. 겨우 동네 뒷산일 뿐인데.


거친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들자 눈앞에 갈림길이 나타났다. 왼쪽은 울창한 나무 그늘 아래로 완만하게 이어지는 흙길. 오른쪽은 고개를 한껏 젖혀야 끝이 보일 듯 말 듯 한, 뾰족한 돌들이 박힌 가파른 오르막.


나는 본능적으로 왼쪽을 쳐다봤다. 땀이 눈을 찌르는 와중에도 머릿속은 바쁘게 계산기를 두드렸다. ‘저쪽으로 돌아가도 정상은 나오지 않을까?’ 숨은 차고 다리는 천근만근이니, 내리막이 정상을 향하는 길이길 바라는 말도 안 되는 요행을 부리고 있었다.

나는 쫓기듯 왼쪽 길로 접어들었다. 발바닥이 편안했다. 숨도 차지 않았다. 콧노래가 나올 만큼 쾌적했다. 나는 그것을 ‘융통성’이라 불렀다.

그런데 이상했다. 분명 앞으로 부지런히 걷고 있는데, 나무 사이로 보이는 풍경은 여전히 제자리였다. 땀은 식어가는데 정수리는 서늘해졌다. 꽤 걸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여전히 산 밑자락을 맴돌고 있었다.

그제야 보였다. 내가 택한 평탄한 길은 정상을 향하는 게 아니었다. 산허리를 빙빙 도는 둘레길이거나,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숨이 차지 않는 길은 위로 향하지 않는다.

고개를 들어 위를 본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등산화 끈을 매고 출발했던 사람들은 저만치 위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누군가는 이미 깃발을 꽂고 환호하고 있고, 누군가는 그 험한 깔딱 고개를 넘어 이제는 완만한 능선 위를 여유롭게 걷고 있다. 안정된 직장, 존경받는 위치, 단단한 통장 잔고라는 전리품을 배낭에 가득 채운 채, 그들은 이제 더 이상 가파른 숨을 내쉬지 않는다.

순간, 목구멍 끝까지 쓴 물이 올라왔다. 질투였다.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나는 운이 없었다고 투덜거리고 싶었다. 하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 격차는 세상의 탓도, 운의 탓도 아니었다.


아직 내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이유는, 오로지 ‘오르기보다 편하려 했던’ 내 선택들의 정직한 대가였다.


그들이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고통을 참으며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 나는 그늘 밑 벤치를 찾았다. 그들이 미끄러운 바위틈을 기어오를 때, 나는 잘 닦인 평지를 골라 걸었다.


당연히 고되고 힘들어야 올라갈 수 있는 것인데, 당장의 편안함만 쫓아 내리막과 평지만 골라 디뎠던 나. 그 수만 번의 ‘쉬운 선택’들이 모여, 처음 바라보던 목표와 나를 이토록 멀어지게 만들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나를 여전히 산 밑자락, 이 눅눅한 숲 속에 묶어두었다.

찬 바람이 훅 끼쳐온다. 땀이 식으며 등줄기가 서늘하다. 어느새 또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올해도 나는 열심히 걸었다고 자부했지만, 냉정히 말해 위로 오르지는 못했다. 그저 편안한 길을 찾아 헤매며 허송세월했을 뿐. 걷는 시늉만 했을 뿐, 오르지 않았다.

나는 다시 헐떡이는 숨을 고르며, 외면하고 싶었던 오른쪽 오르막길을 올려다본다. 까마득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 다리가 후들거리고, 심장이 터질 듯 뛰고, 숨이 턱까지 차올라야만, 비로소 내가 위로 올라가고 있다는 증거라는 것을.

편안한 오르막은 없다. 나를 여전히 산 밑자락에 묶어둔 것은, 내가 외면했던 그 가파른 오르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