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회복 선언문

제주도로 보낸 이삿짐 속에, 새로운 나는 없었다.

by 안녕 굿데이

나를 바꾸는 일은, 적어도 나에게는 매번 작은 혁명처럼 어렵다. 우리는 스스로의 변화를 이야기할 때 대개 그것을 '마음먹기 나름'이라 가볍게 단정하지만, 정작 변화를 실행하려는 순간, 마음은 예전의 습관 속으로 미끄러지듯 돌아간다. 아마 인간은 과거의 자기와 너무 오래 함께 살아서, 새로운 자아와는 아직 깊이 친해질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서울을 떠나 제주도로 간 건, 지금 생각해 보면 긁지 않은 복권이 분명 1등이라 믿는 사람의 신념과 닮아 있었다. 그 믿음은 합리적 근거가 아니라, 변화를 믿고 싶은 열망에서 비롯했다. 바람과 바다가, 나를 한 번에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줄 거라 믿었다.

변화라는 것을 삶의 터전을 옮기며 생기는 새로운 경험들과 착각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비행기 표나 이삿짐 속에서, 새로운 자아가 동봉되어 제주에서는 달라진 내가 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제주도에 도착한 첫날, 하늘은 믿을 수 없을 만큼 푸르고, 파도는 하얀 목소리로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아직 풀지 못한 이삿짐 속에서 나는 이미 내 삶이 바뀌었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장소는 사람을 바꾸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진리를 마주했다. 풍경은 우리에게 배경을 제공하지만, 등장인물의 대사를 바꿔주지는 않는다는 점 말이다.


3년쯤 지나, 제주도 곳곳이 눈을 감아도 머리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섬이었다.


어디로 가도 결국 바다였고, 바다는 경계였다.

더 갈 곳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어디로 가도 벗어날 수 없다는 느낌.

반복될 삶이 보였다. 같은 길을 걷고, 같은 카페에 앉고, 같은 나로 살아가는 일.

그것이 두려웠다.


서울에서 꿈꾼 제주도는 완벽했지만, 막상 살아보니 제주도도 결국 제주도였다. 아침엔 일어나야 하고, 밥은 해 먹어야 하고, 일은 해야 했다.


나는 여전히 방 안에 있었다.

아름다움은 천천히 피로로 변하고, 낯섦은 습관으로 마모된다. 낯선 바람이 먼지처럼 거칠어지고, 기대했던 것들은 예고 없이 평범해진다.


변화가 나를 찾아오지 않자, 나는 또 다른 변화를 찾아 떠났다.

그다음 선택지는 부산이었다. TV 속 낭만에 속아 부산에 왔다. 영도대교를 건너는 순간, 공기가 달라졌다. 비린내와 녹슨 철판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영도 앞바다는 어선보다 거대한 화물선들이 차지했다. 한 대, 두 대, 열 대… 검고 흰 선체들이 묵직하게 물 위에 서 있었다. 사람들은 그곳을 '화물선 주차장'이라 불렀다. 항구를 따라 걷다 보면 이곳은 거친 '바다'가 아닌 묵직한 '정박지'의 풍경이었다.

골목은 좁았고, 오르막과 내리막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비탈 위 집들은 서로 몸을 겹치듯 붙어 있었다. 저녁이면 골목 어귀 작은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많이 묵으라" 하는 할머니 말투가 낯설었지만, 곧 익숙해졌다. 아침엔 부두의 기적 소리에 눈을 떴고, 저녁엔 다시 비탈을 올라 집으로 돌아왔다.

낯선 골목, 처음 보는 카페, 미지의 동네들. 여긴 또 다를 것 같았다.


하지만 곧 익숙해졌고, 바다내음도 평범해졌다. 설레던 초행길은 어느새 출근길과 다를 것 없는 길이 되었다.

이 순간, 나는 깨달았다. 더는 내게 이상향이 남지 않았다는 것을. 예전에는 '저기만 가서 살면 행복할 것'이라고 믿었던 그 희망의 장소조차 이제는 내 마음속에 남아있지 않았다. 도달한 이상향은 더 이상 이상향이 아니었다. 꿈은 꿈으로 남겨둘 때 더 빛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어 서글펐다.


지금은 안다. 이곳도 지난번과 다를 게 없다는 걸. 겨울 초입, 부산에 찬바람이 불었다. 문득 제주도 오름이 떠올랐다. 답답함에 떠나온 그곳을, 이제는 그리워하고 있었다. 바람 부는 언덕 위, 억새가 일렁이던 그 순간들. 떠나고 싶어 떠났는데, 떠나고 나니 그리워하는 나. 그 변덕스러움도 결국 나였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다 보니, 변화라는 것이 사실 '장소'가 아니라 '관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어렴풋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 관점마저도 오래된 자기 안에서 부식되듯 낡아간다. 우리가 나이를 먹을수록 변화가 어려워지는 이유는 세상을 너무 많이 알아서가 아니라, 세상을 너무 빨리 해석해 버리기 때문일 것이다. 해석은 낯섦을 제거하고, 낯섦이 사라진 자리에서 변화는 숨을 잃는다.


새로운 지역, 새로운 일, 새로운 사람들. 처음 가본 골목은 여전히 날 설레게 한다. 하지만 이상한 건, 그 골목을 걷고 있는 '나'는 언제나 같은 나라는 것. 설레는 건 골목이고, 변하지 않는 건 나였다. 문제는 나였고, 나는 어디를 가도 나였다.


이렇게 생각하면, 변화란 '완전히 새로운 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낯섦을 오래 붙잡아 두는 능력'인지도 모른다. 그 능력을 잃는 순간, 인간은 제자리에서 빙빙 도는 존재가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걸 알고 나니 조금 편해졌다. 어쩌면 나를 바꾸는 일은 어느 날 갑자기 날아드는 바람이 아니라 하루 한 발씩 내딛는 느린 걸음인지 모른다. 변화는 번쩍이는 사건이 아니라 오래도록 밀려오는 조용한 파도였다. 변하지 않아도 괜찮은 것들이 있다는 걸 알았다. 변화를 꿈꾸면서도 변하지 못하는 게 나라면, 그 나로 사는 것도 괜찮았다.

오늘도 나는 방 안이다. 책상 위엔 미완의 문장이 흩어져 있고, 머릿속엔 시작도 못한 미래가 끝도 없이 웅성거린다. 나는 게으른 이상주의자다. 머릿속의 생각은 세상을 세 번쯤 바꾸고도 남는데, 손끝은 아직 한 번도 세상을 움직인 적 없다.

나아지고 싶다. 달라지고 싶다. 그러나 변화는 내게 언제나 먼바다 건너 불빛처럼, 아득하고 흔들린다. 가까워질 듯, 손 닿을 듯, 하지만 결코 완전히 닿지 않는 그 불빛.


나는 평생 그 불빛을 향해 걸을 것이다. 도착하지 못한다 해도, 그 길 위에서만 내가 숨을 쉬는 사람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