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주세요!!!
군 훈련 중에 독수리 훈련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부대마다 훈련 이름이 다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국가 중요인물이 국내를 이동할 때나 외국의 인사가 국내를 방문할 때 주요 항로 밑이나 이동경로 근처 야산에 매복을 합니다. 혹시 있을지도 불순분자의 도발을 막고자 함이 목적입니다. 군 생활중에 겨울에만 딱 두 번 나갔었습니다. 주로 눈이 쌓인 산속에 매복을 하게 돼서 하이바(군 철모)에 씌우는 위장 포도 뒤집어 하얗게 위장하고, 야상 대신 스키부대에서나 입는 겨울 위장복을 입고 훈련을 나갑니다.
92년 겨울에도 외국의 국빈이 방문한다기에 포천 인근의 야산으로 매복을 나갔습니다. 별로 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냥 흩어져서 주요 거점 장악한 후 한두 시간이면 훈련은 보통 종료됩니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훈련이 좀 일찍 종료되었는지 중대장이 부대원들을 모아놓고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지금부터 흩어져서 산짐승을 산 채로 잡아오면 휴가를 보내주겠다는 겁니다. 산짐승 포획이 불법일 수 도 있고, 휴가를 보내준다는 말이 뻥일 수도 있었지만 어쨌든 다들 소리 죽여 환호하고 즉시 투입!!
우리 분대도 반으로 나누어 3명씩 1개 조가 되어 산을 훑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간간히 토끼도 보였지만 토끼 아무나 잡는 거 아닙디다. 무지하게 빠르더군요. 아무리 군인이라도 맨손으로 동물을 잡는 건 무리였는지 거의 빈손으로 왔습니다. 몇몇 팀은 민간인들이 쳐놓은 올무에 걸린 오소리와 토끼 2마리를 잡아 왔습니다만 무효!!
게임(?)은 싱겁게 끝나고 부대원이 다 모여서 인원 파악을 하는데 상병 한 명이 안 보입니다. 순진한 건지 멍청한 건지 항상 어리바리했던 그 상병이 결국 사고를 치나 싶었는데 그때 계곡 쪽에서 사람 소리가 들렸습니다.
.... 주세요..!! 여기....
뭔 일이 났다 싶어 모두 그곳으로 달려가 봤더니 동물 잡으려는 올무에 다리 두쪽이 모두 걸려 있는 겁니다. 사람은 손이 있어서 올무에 걸려도 풀고 나오면 그만이지만 어쩌다 그리 됐는지 두 발목이 모두 올무에 옥좨인 체로 계곡 방향으로 거꾸로 넘어져 있는 겁니다. 총은 바로 앞 낭떠러지 쪽에 대롱대롱 매달려 걸려 있어 손을 써서 올무를 풀자니 총을 포기해야 하고, 한 손으로 풀기에는 두꺼운 철사가 이미 발목을 파고들고 있어 여의치 않았던 겁니다. 그런 상태로 눈물 콧물 범벅인 채로 있던 거죠.
처음엔 창피해서 소리도 못 질렀답니다. 그러다 능선 위쪽에서 일행이 모이는 소리를 듣고 산속에 혼자 남을 생각을 하니 무서워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답니다. 큰 사고가 아니라서 다행이었습니다.
무분별한 산짐승의 포획과 올무 설치는 불법입니다.
그 상병은 어떻게 되었을 것 같습니까?
물론 멍청한 사고를 쳤지만 총기를 잃어버리지 않으려는 노력이 가상하여 중대장 특명으로 훈련이 끝난 후에 특박을 다녀왔습니다. 잡으라는 짐승은 못 잡았는데 엉뚱하게도 셀프로 올무에 잡힌 인원이 상을 받은 겁니다. 군인에게 총기는 생명과도 같으니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었습니다.
다리를 절면서도 환하게 웃으며 위병소를 나가던 모습이 생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