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일 놈의 사랑 이야기

마산 살던 H

by ziwoopa

어느 날 일병 하나가 우리 중대로 전출을 옵니다. 이름은 H. 키는 작았지만 척!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포스를 내뿜었고,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말썽을 부리면서 분위기를 흐리고 있었습니다. 중대 서무계였던 나는 따로 조용히 불러 사적인 대화를 나누면서 그 친구 신상에 대해서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일반적인 사항은 개인 이력카드를 통해서 알고 있었지만, 또래들과 달리 나이도 좀 많아 보이고 어딘지 어눌해 보이는 게 뭔가 남다른 사연이 있어 보였습니다. 홀어머니와 단 둘이 살았고, 본인보다 5살이나 많은 동거녀도 있었고, 직업은 예상했던 대로 지역 건달이었답니다. 이 세 가지 이력에 대한 에피소드가 차례로 일어났습니다.




EPISODE #1


야간 대공초소 근무를 나갔던 H가 무장탈영을 감행했습니다. 부대 앞에서 소총이 발견되어 무장탈영 혐의는 벗어났고, 재주도 좋게 마산까지 무사히(?) 도착해서 집에 있던 H를 잡기 위해 헌병들이 들이닥쳤습니다. 식칼을 들고 저항하는 H의 폭주를 우려한 헌병들은 어머니와 하룻밤만 자고 가겠다는 얘기를 듣고 집 주위를 포위한 상태로 기다렸다가 순순히 나오는 H를 체포해서 부대로 데려왔습니다. 초범이고 홀어머니가 걱정돼서 탈영을 했다는 H의 정상이 참작되어 영창 14일로 끝났던 사건입니다.


사고뭉치라도 엄마가 보고 싶은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EPISODE #2


주말에 행정반에서 상황근무 서고 있는데 위병소에서 T312 전화기가 울려댑니다.


“홍 병장님. 면회소로 와보십시오! H 때문에 여기 난리도 아닙니다.”


전화기를 끊고 면회소로 달려가 보니 참가관이더군요. 지난 탈영 사건으로 6개월 동안 외박/외출이 금지된 상태라서 동거녀와 면회만 할 수 있었는데. 그만 본능을 참지 못해 하나밖에 없던 재래식 화장실 문을 걸어 잠그고 그 안에 들어가 한참을 있으니 다른 면회객들이 민원을 재기했던 겁니다. 그 이후로도 한참을 시간을 보내고 나오더군요. 뭐라 할 말이 없어서 그냥 웃고 말았습니다.


사랑이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EPISODE #3


그 일이 지나고 한참 후에 위병소 조장 근무를 서고 있는데 한 무리의 깍두기들이 위병소로 서서히 들어옵니다. 바짝 긴장했던 나는 조심스럽게 매뉴얼대로 대응을 했습니다.


“누구 면회를 오셨습니까?”


“네. 2중대 H형님을 면회 왔습니다.”


형님??? 아무리 봐도 H보다 나이들이 더 많아 보였는데 말이죠.

중대에 연락해서 H를 내려 보내기 전에. 또 사고 치면 앞으로 면회도 없다는 엄포를 놓고는 면회를 허락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내려오더군요.


“상병 H 용무 있어 와 ㅆ...”


“아! 됐고!! 조용히 면회만 하고 올라가도록!”


그러자. H는 깍두기들에게 저를 소개합니다.


“자! 여기 내가 우리 부대에서 제일로 존경하는 홍성필 병장님이시다. 인사드려!”


그러자 깍두기들이 일제히 90도 각도로 허리를 숙이며 “형님!!! 사랑합니다!!라고 90도로 인사를 하더군요. 제식훈련받은 군인들보다 목소리가 컸답니다. 그 소리에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맞절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내가 왜 형님이고 날 왜 사랑하는데??!!




두 번의 탈영과 면회소 사건이 있은 후에 제가 멘토를 자처해서 참 잘했줬습니다. 별 다른 사고 없이 잘 지내는걸 보고는 제대를 했습니다. 제대하기 전날 밤에 찾아와서 눈물도 흘리고 참 애틋하게 떠나보내 준 친구입니다. 제대하는 날 위병소를 나가는데 그 친구가 악수를 하면서 이러더군요.


“홍 병장님! 언제 함 마산에 놀러 오십시오. 제가 화끈하게 모시겠습니다.”


그 친구 조직에서 하던 일이 지역 유흥업소에 연예인들이 행사차 내려오면 경호를 자처하면서 삥 듣는 일을 했었답니다. 그래서 연예인들 친분도 꽤 있었나 봅니다. 과연 제가 갔었을까요? 새가슴인 저로서는 그 무서운 데를 간다는 건 꿈에서조차 생각도 안 합니다.


H!! 잘 살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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