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발라드의 탄생
90년대 초반. 매월 초에 거행되던 국기게양식을 겸한 연대 연병장 제초 작업을 하기 위해 전 연대 병력이 지주 핀(텐트 고정용 철물) 하나씩을 들고 연대 잔디 연병장에 모였다. 식전 30분 동안 자신이 서 있는 반경 1미터 내외의 잡초를 제거하는 작업을 했다. 행사가 다 끝나고 자대로 복귀하기 위해 힘차게 군가를 부르며 뿔뿔이 흩어져 자대로 복귀하고 있을 즈음 연대장의 고성이 연병장을 울렸다.
원위치!!!
"지금 군가를 부르는 건가. 고함을 지르는 건가? 앙????!!!"
하긴. 제대로 된 악보도 없이 사수(위 선임)에게 대충 배우고, 악으로 깡으로를 강조하다 보니 음정이 맞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연대 병력이 악을 써가면서 불러댔으니 얼마나 시끄러웠을까! 투철한 군인정신으로 이해했다면 좋게도 보였겠지만 아마도 그 당시 연대장은 감수성이 예민 했었나 보다.
그 이후로 군가 지도병을 중대별로 배치하고 군가 악보도 지급되었다.
하지만 대대 병력 중에 악보를 보고 군가를 지도할 수 있는 인원이 몇이나 되었겠는가!
결국 우리 중대에서 노래로는 방귀 깨나 뀌던 내가 덤터기를 썼고, 대대 통합지도병이라는 감투까지 쓰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악보를 보면서 기타로 음을 따는데 아무래도 이상했다. 내가 알고 있던 군가가 아니란 말이다. 정훈병을 통해 군가 테이프를 구해서 들어보니 역시 내가 사수에게 엉터리로 배운 것이었다.
젠장맞을 윤성구! 대구에서 사과장사하다 군에온 내 사수다. 군가를 딱 세 음으로 가르쳐준 대단한 음감의 소유자였다. 자대 배치받고 처음으로 군가를 배울 때도 너무 음치여서 힘들었는데, 원래 그러려니 하고 간신히 배웠다. 사실 음을 제대로 낼 필요도 없었다. 좌우로 반동하면서 소리만 지르면 땡이었으니...
한 달이 지난 후 다시 거행된 국기게양식. 식이 끝나고 자대로 돌아가는 수백 명의 군인들이 지도병들에게 제대로 배운 군가를 발라드풍으로 부르며 우아하게 걸어가고 있을 때 또다시 연대장의 일성이 터졌다.
원위치!!!
이번에는 군기가 너무 빠졌대나?
어쩔 수 없이 연대병력들은 록커처럼 굵은 목소리로 정확한 음의 군가를 불러야 했다. 마치 메탈리카가 이승환 노래를 부르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이른바 군발라드 되시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