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겨울 이야기

첫 눈이 오면 생각나는 사람

by ziwoopa

그날도 피곤한 쫄다구들 대신해서 말뚝 상황근무를 섰다. 바로 전날 저녁에 RCT(연대 종합전술훈련)가 끝나서 긴 행군을 마치고 들어왔는데 서로 눈치를 보는 상황이었다. 짬밥 한 그릇이라도 더 먹은 내가 서야지 생각하고 말뚝 근무를 섰던 그 다음날. 저녁때부터 꾸물꾸물하던 날씨가 새벽부터 하얀 첫눈을 뿌렸다. 오늘 좋은 일이 있으려나? (군대에서 좋은 일 있어봐야...)


점심때쯤 되었을 때 대대 CP(본부)에서 신병 접수하라는 연락을 받고 신병 2명을 접수받았다. 한 명은 키가 아주 컸고 나머지 한 명은 눈이 아주 컸다. 키가 큰 신병은 이등병 답지 않게 씩씩하고 목소리도 우렁찼지만, 어째 눈이 큰 신병은 상태가 안 좋아 보였다. 병력카드 작성하고 긴장한 애들 PX 데려가서 과자 좀 먹이다 보니 그 날 하루가 지났다.




다음날 아침 점호시간. 드디어 일이 벌어졌다. 신병 하나가 점호에 참석을 하지 않았다. 행정반 내무실에 가보니 아직 소대로 배치가 안 되어 본부 내무반에서 자던 신병의 침낭이 마치 누에고치 마냥 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들쳐봤다. 그 눈 큰 넘이 눈물이 범벅이 되어 누워있었다.


순간 확~~! 하고 풍겨오는 냄새!!

“헉!~~ 이게 무슨 냄새여?”

신병이 똥을 싸서 뭉개고는 그 안에 돌돌 말려 있지 않은가?!

“내참!!...”

상태가 불안해 보이긴 했다만 이 정도 일 줄은 정말 몰랐다, 할 수 없이 홀딱 벗겨서 씻기고 전투복 빨아서 널어주고 상태를 점검해 봤다.


나중에 더플백을 뒤져보니 청심환 20여 개가 나왔다. 그 아이 엄마가 아픈 아들 걱정이 되어 긴장하지 말라고 넣어 준거란다. 매일 같이 그걸 먹고 잤으니 그럴만하다는 이해는 갔지만 훈련소를 거치면서 들키지 않고 용케 자대까지 약을 들고 와 먹었다는 게 용하기만 하다. 군에서는 허용된 약 이외에는 먹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엄마 맘은 다 같은 거구나!


한 달 정도 지나서도 계속 문제만 일으키고 적응을 못했다. 그 아이는 밤에 화장실 간다고 나가면 다른 중대에서 연락이 온다. 신병 찾아가라는 잔소리와 함께 투덜대는 전화가 반복이 되었다. 겨울이면 아침에 하는 알통구보도 시켜 보고 냉수마찰도 하고 어찌어찌 겨울을 나나 했는데 우리 중대장이 결국 결심을 했다. 이 친구는 군대 올 병력이 아니라고 의가사제대신청을 한단다. 그때부터 나는 고생문이 열렸다. 뭔 놈의 군대 서류는 해도 해도 끝이 없는지.




그로부터 몇 달 후 그 아이 부모로부터 ‘홍 병장님 보시오...’ 로 시작하는 장문의 편지가 왔다. 그 아이 아버지는 XX여중 교감선생님이셨다. 00 이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배꼽에 파상풍이 걸려 심하게 앓고 난 후에는 지능이 떨어지면서 정신박약 증세를 보였단다.

어렵게 어렵게 길러서 성인이 된 후에 신검을 보게 되었는데 어이없게도 <현역 판정>이라는 결과가 나와 버렸다. 말도 안 되는 결과에 부모들은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일을 무마시켜 보려고 했지만 멍청한 행정처리로 결국엔 입대를 했다고 한다.

아버지의 편지


그래서 부모들은 이렇게 된 마당에 군대에 갔다 오면 좀 나아지겠지 하는 마음에 안타까운 맘을 다스리고 아침마다 부대 근처에 와 먼발치서 나마 아들의 알통 구보하는 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고 돌아갔다는 얘기도 해주었다.


그런데!! 아픈 아들을 군대에 끌어 갈 때는 언제고, 또다시 그 아들을 의가사제대시키려는 군대의 처사에 또 한번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었단다. 잘 해준 것도 없는 내게 고맙다는 말로 편지를 맺었다. 몇 개월 만에 그 아이는 의가사제대를 해서 우리 곁을 떠났다.


첫눈이 오면 퉁방울 같은 눈을 굴리며 왔던 그 아이가 생각도 났지만 그 추운 겨울 아침마다 먼발치서 아들 얼굴 보고 울며 돌아가셨을 엄마의 사랑이 더 생각이 난다. 내 엄마도 나 군대 보내고 훈련소까지 찾아오셨었다. 물론 면회는 안 되었다. 우리 사단 훈련소가 두 곳이었는데 내가 있는 곳이 아닌 다른 곳에 가셔서 담장밖에 기대어 울고 오셨더랬다.




첫눈이 오면 손님처럼 왔다간 00과 그 아이의 엄마, 우리 엄마가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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