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용어>의 향연
밥 먹고 걷는 게 훈련의 대부분이었던 예비사단(26사단)은 이제 진짜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기계화보병사단으로 재편되었다가 이제 다른 사단에 흡수되어 그 깃발을 내리게 되었다. 아쉬운 마음에 글을 써본다.
힘차게 군가를 부르며 위병소를 줄지어 나가는것으로 훈련이 시작된다.
최대한 <민가>에서 멀리 떨어진 길을 따라 <기도비닉>을 유지한 채 앞사람의 <비표시>만 바라보고 걷는다. <일몰>시간에 맞춰 도착한 <400 고지> 아래 <와지선>에 모여 잠시 휴식을 갖는다. 지는 해가 노을과 임무 교대를 한다. 풀냄새와 흙먼지 냄새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라 코끝을 간지럽힌다.
<전열>을 갖추고 이동을 시작한다. 등산로도 아닌 산길을 헤쳐가면서 오른 <7부 능선> 자락엔 작년 가을 <진지 보수> 기간 동안 구축해 놓은 <교통호>가 있다. <떼조>, <돌조>가 먹이를 나르는 개미 떼 마냥 줄줄이 열을 지어 잔디와 돌을 공급했었다.
<척후대>가 돌아와 <고지>상황을 전달하자 부대는 <고지전> 준비에 돌입한다. 평소에 분실을 우려해 <대검>은 구경도 못하지만 있는 척! 하고 <착검> 시늉을 한 채 일제히 <돌격>을 한 우리는 순식간에 <고지 점령>에 성공을 한다. 이미 해는 져서 멀리 보이는 <공제선> 위로 별이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한다.
<고지 방어>를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점령과 함께 반대쪽 <7부 능선>으로 넘어간 <경계조>는 <간이 비트>를 파고 <은폐>를 하고 고지에 남아있는 <병력>들은 <불침번> 조를 나눠 기나긴 저녁을 보낸다. 지루한 시간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보내던 누군가 담배를 몰래 폈나 보다. 어두운 밤 담뱃불은 몇 킬로 밖에서도 보이고 담배 냄새는 더 멀리 퍼진다. 중대장의 불호령과 함께 사위는 다시 적막 속에 잠긴다.
해가 뜨기 직전 제일 어두운 시간에 적의 <여명 공격>이 예상된다. 잠시 몸을 떨어 차가운 새벽 공기를 밀어 내고 <대항군>으로 분한 <본 부대> 병력들과 밀고 밀리는 <고지 방어훈련>을 끝으로 훈련지 일정이 끝났다.
배꼽시계가 요동을 칠 즈음 산 아래 <육공 트럭>이 도착했음을 알리는 무전이 <p77>을 통해 날아온다. 각 소대 <추진조>들이 <짬통>에 식사를 받아온 <짬밥>을 삼삼오오 모여 <반합>에 나눠먹는다.
식사를 마치고 뒷정리를 한다. 훈련지에서 식사를 할 때는 <반합>에 <비닐봉다리>를 씌워 밥과 국을 담아 삼삼오오 모여 밥을 먹는다. 미군이 먹는 <C-레이션(MRE)> 따위는 구경도 못하고, 국산 전투식량은 <1종 창고>에 짱 박혀 있다가 유통기한이 끝나기 직전 소비해 버린다. 어쨌거나 봉다리 사용은 설거지 시간을 줄이는 효과는 있겠지만 환경을 생각하면 문제가 있다.
모든 훈련이 끝났다. 아니 행군도 훈련이니 끝난 게 아니다. 이제 부대로 복귀하기 위한 <100킬로 행군>이 남아 있다. 자 이제 출발이다.
행군은 꼭 걸어서 이동하는 것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도보, 차량, 항공기, 함선을 이용한 수송 등 부대의 이동을 의미한다. 부대의 이동은 철저한 작전에 의해 이루어지는 중요한 일이다. 그중에 <도보>로 이동하는 행군에는 그 성격과 거리등에 따라 여러 명칭으로 구분된다. 무조건 걷는다고 다 똑같지는 않다는 점이다.
그중에 일반적으로 100km 정도 거리 미만의 거리를 부대가 도보로 이동하거나 할 때는 <전술행군>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 외에 정해진 목적지까지 최단시간에 주파하는 <급속행군>, 특수부대가 주로 하는 훈련<천리행군> 등 상황과 부대 성격에 따라 다양한 행군이 있다.
물론 전시에는 위에서 정의한 용어들이 아무 의미가 없다. 죽지 않으려면 어디든 걸어가야 하고, 쫒아가든 도망가든 거리나 속도가 목숨보다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꾸 부연설명이 길어진다. 진짜 출발한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전 대대원이 2열로 걷기 시작한다. 대략 500여 명이 일렬로 서서 걷자면 엄청나게 줄이 길어진다. 속도는 시속 4km/h 정도 된다. 맨 몸으로 걸어도 쉬운 일이 아니건만 군인은 자기 짐은 자기가 메고 다녀야 하므로 그 무게 또한 만만치 않다.
일반 <보병>인 땅개가 <완전군장>을 했을 경우 배낭의 무게는 약 40kg (구형 텐트의 경우), 소총의 무게는 <K2 소총> 기준으로 30발들이 <탄창> 포함 약 5kg. 도합 50kg 의 무게를 달고 걷는다.
각 종 <화기>의 종류에 따라 무게가 점 점 더 무거워진다.
중대급 <중화기>로 화기소대에서 2인 1조로 운용하는 <M16(람보 총)>,
중대급에서 똥포라 불리며 3인 1조 운용하는 6.25 때 쓰던 <60mm박격포>, 대대급 <대전차화기>로 화기중대에서 운용하는 <90mm 무반동총(저팔계 바주카포)>, 대대급에서 운용하는 <81mm박격포> 등이 있다.
연대급 이상 지원중대에서 운용하는 차량이나 바퀴가 달린 무기를 제외하고는 일반 보병들은 이걸 나눠 들고 이고 지고 하염없이 걸어야 한다.
내가 걷는 건지 다리가 걷는 건지도 모르게 땅만 보고 걷다 보면 어느덧 부대 위병소가 멀리서 보인다. 자대에 복귀하면 점호도 생략하고 밥 먹고 씻고 쓰러져 잔다. 며칠간의 정비까지 끝나야 훈련이 끝난 거다.
행군 에피소드는 또 다른 글에서 풀어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