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의 시작
1985년 5월. 새벽 4시. 경주 수학여행.
정빈은 어제 친구들과 선생님 몰래 먹은 술로 인해 심한 숙취를 겪었다. 빨리 일어나라는 체육선생님의 성화에 못 이겨 무거운 몸을 이끌고 버스에 올라 목적지도 모르고 실려가다 내린 곳에서부터 산길을 올랐다. 5월의 새벽은 아직 찬바람이 에일 듯이 깃속을 파고들었다. 친구들과 장난을 치며 오른 너른 마당 한편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목조건물과 석탑 하나가 서 있을 뿐. 동트기를 기다리며 또다시 재촉하는 선생님들의 성화에 못 이겨 줄을 서서 목조건물을 통과했다. 얼핏 보인 유리벽 속에 앉아 있던 불상 하나. 잠이 덜 깨기도 했거니와 추위에 몸을 잔뜩 움츠리고 있던 정빈은 빨리 해가 뜨기만을 바랄 뿐. 결국 구름 낀 하늘 덕분에 일출은 포기하고 다시 하산을 시작했다. 오를 때와 달리 산을 오르던 그 길은 가파른 낭떠러지를 끼고 오르던 위험한 길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장난을 치며 위험하게 올라왔던 일을 생각하며 정빈은 가볍게 몸을 떨었다.
"아! 아까 본 게 석굴암 이었구나. 그렇다면 여긴 토함산?"
1998년 9월. 서울 설계사무소.
벌써 며칠째 밤을 새웠는지 기억도 없다. 빨리 일을 마무리하고 편하게 잠을 자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책상에 널브러져 있었다. 오전 9시가 되자 하루 일과가 시작되면서 일거리들이 쏟아져 내려온다.
"김정빈! 4층 창고에 가서 도면 청사진 떠와!"
"네...!"
대답은 했지만 속으론 욕을 하며 무거운 몸을 이끌고 청사진 기계가 있는 4층 문서고로 향했다.
'항상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기는가?'
마침 청사진 기계는 암모니아가 떨어진 상태여서 보충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젠장. xx"
투덜대면서 한쪽 구석에 놓인 암모니아 말통을 드는 순간 도면들이 쌓여있는 선반에서 둘둘 말려있던 도면 꾸러미 하나가 떨어진다.
"툭~!"
"이게 뭐지?"
굉장히 오래되어 먼지가 쌓인 트레이싱지 말이는 모서리가 다 부서질 정도로 낡아있었다. 호기심이 발동한 정빈은 청사진은 벌써 잊은 채 도면을 들고 문서고를 나갔다.
[석굴암 2차 증개수 보수공사]
"우와~! 이게 뭐야!"
펼쳐 놓은 도면은 A1 크기에 연필로 1차 초벌 드로잉을 하고 잉킹을 해서 그린 석굴암 도면들이었다. 배치도, 입면도, 단면도 등.
작성 시기는 196X 까지만 확인이 되었고. 총 8장으로 구성된 도면이었다.
아니 도면 번호는 08 까지 있었지만 2장은 없었다. 04번과 05번 도면.
"뭐지? 왜 없는 거야?"
03번 단면도는 본존불 후면 하단 부위가 심하게 손상되어 있었다. 02번 평면도를 확인한 결과 그 위치는 십일면 관음상이 있는 아래 기단부. 다시 단면도를 들어 형광등 불빛에 비쳐본 결과 희미하게 초벌로 쓰여있던 글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出入XXX XX '
정빈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도면의 글자들은 모두 한글인 반면 지워진 이 부분의 글자는 한자로 쓰여있었기 때문이다.
"출입?"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일제가 1913년경 해체 복원을 하는 과정에서 들이부은 콘크리트 덮개 뒤로 무언가 그림을 그렸던 흔적이 있었다.
5층으로 올라온 정빈은 인터넷 검색과 회사 내 자료책자에 있는 석굴암을 검색해 보았지만 그 도면에 있던 흔적과는 다른 모습들 뿐이었다.
사무실에서 예전에 실제로 1960년대 증개축 보수 도면을 찾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우연히 다시 꺼내 보고는 떠오른 상상... 이야기 구상을 하다 멈춰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