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눈물

by ziwoopa

나는 울 때 눈물이 나질 않았다. 밖에 놀러 나간 지 5분 만에 넘어져서 울고 들어올 때도, 동네 힘센 아이들한테 맞고 들어와서도, 엄마에게 혼이 난 후에도 그냥 소리만 냈다. 그런 날 보고 참 희한하다고들 했었다. 다락방 올라가는 턱에 누워 <엄마 없는 하늘 아래> 영화를 보면서도 소리는 내어 흐느꼈지만 그냥 찔끔! 하고 말았다.

남자라고 해서 누군가 울면 안 된다는 강요를 한 적도 없었지만 슬플 때는 참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어차피 눈물도 안 나는 울음.


엄마의 병세가 발현되면서 집안이 흔들렸고 군 복무를 하고 있을 즈음 갈등은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복학을 하고 3학년 2학기가 시작되었다. 결국 집안의 혼란을 참지 못한 아버지가 엄마를 입원시키기로 결정하셨다. 아니. 거의 강제로 구급차에 실려 입원을 했었다고 한다. 지방에서 자치하고 있던 나는 입원 소식을 듣고도 모른척 했다. 난 점점 망가져가는 집안 분위기를 외면이라도 하듯이 공부를 핑계 삼아 엄마의 면회를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었다.

3개월 정도 지나서 누나와 동생들의 성화를 못 이기고 결국 병원으로 향했다.

누구보다 힘이 세고, 어려운 가난을 이겨내며 나 대학공부만은 꼭 끝내야 한다고 아버지와 매 번 다툼을 하시던 엄마. 몇 달 만에 본 엄마의 모습은 약기운에 지쳐 이전 모습은 찾을 수 없이 바보가 되어있었다. 병이라 생각 못하고 방치했던 긴 세월 동안 엄마는 얼마나 힘들어했을까. 정신이 혼몽한 상태에서도 공부하지 뭐 하러 왔냐는 책망을 하는 모습에 괜한 소리 하지 말라는 핀잔만 주고 말았다.

면회를 마치고 병원 건물을 나서 정문을 향하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순간 하늘이 뿌옇게 흐려지면서 태어나 처음으로 폭포수 같은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음이 느껴졌다. ‘지금 내가 울고 있는 건가?’ 뒤에 따라오는 식구들이 볼세라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지만 어깨는 자꾸 들썩여지고 눈에서는 물방울이 뚝뚝 뜨거운 아스팔트 위로 점점이 떨어지고 있었다.




군에 자대 배치를 받고 신병 때부터 일병 말 호봉 때까지 울 엄마는 한 달에 몇 번씩 면회를 오셨다. 인사계와 중대장까지 나서서 엄마를 설득했지만 소용없었다. 용문시장 통닭을 두 마리씩 튀겨서 싸들고 와서는 닭다리 4개를 다 먹는 걸 보시고 나서야 돌아가셨다.

그때 엄마의 어깨가 지금 나처럼 분명히 떨리고 있었다. 외아들 군대 보내 놓고 면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엄마의 마음이 그대로 내 마음속에 들어왔다. 그제야 무언가 봉인되었던 금기가 풀리듯이 마음이 편해지면서 소리 내어 울고 싶어 졌다. 걸음을 멈추고 엉엉 어린애 마냥 소리 내어 한참을 그렇게 울었다. 눈물이 바닥이 날 때쯤 가만히 어깨에 손을 올려놓은 누나의 손길에 정신을 차렸다.

난 뜨거운 눈물의 의미를 그때 알았다. 엄마!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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