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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나이 들어서 그래

닭죽, 해물부추국

by 퉁퉁코딩

지난해 봄이었다.

내 혀는 어떤 맛들을, 아니 정확히는 어떤 향들을 간절히 원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고수, 미나리, 냉이, 깻잎 같은 향긋한 채소들이 미친 듯이 당겼다.

하루에도 몇 번씩 입안 가득 퍼지는 싱그러움을 느끼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미나리와 육회를 함께 파는 식당을 일부러 찾아가 미나리를 잔뜩 먹었다.

육회는 그저 미나리를 곁들이기 위한 핑계일 뿐이었다.

쌀국숫집에 가서는 고수를 한 움큼씩 집어넣었다.

내가 받은 쌀국수는 고수 담는 그릇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물론 예전부터 향채소를 좋아하긴 했다.

하지만 이건 좋아함의 수준을 넘어, 약간의 결핍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점심시간 회사 동료들과 산책을 하다가 그 얘기를 꺼냈다.

"요즘 이상해요. 왜 이렇게 고수랑 미나리가 당기는 걸까요?"

그러자 선배님 한 분이 아주 명쾌하게 그 원인을 알려주셨다.

그거, 너 나이 들어서 그래.

반박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납득이 갔다.

어딘가 슬프지만, 또 그만큼 자연스러운 말이었다.

누군가는 나 정도면 아직 한창이라고 하겠지만 사실 이젠 나도 알고 있다.

입맛뿐 아니라 내 하루를 채우는 감정들조차 예전 같지는 않다는 걸 말이다.

그렇게 맞이한 변화 중 하나가 바로 여행이었다.

그중에서도 해외여행.



6월 말, 본격적인 휴가철보다는 살짝 이른 시기에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휴양지'라고 불리는 유형의 여행지였다.

나는 지금까지 해외여행으로 그런 곳을 가본 적이 없었다.

우리 부부는 느긋하게 쉬는 여행보다는 발에 물집을 키우는 쪽을 선호했다.

도심을, 공원을, 박물관을, 미술관을, 동물원을, 때로는 계획에 없던 충동까지도.

우리는 늘 그렇게 걸었다.


말할 때 단어를 자주 실수하는 아내는 이번 여행 준비 과정에서 종종 이렇게 말하곤 했다.

"오빠, 우리 코스타리카 갈 때 옷 뭐 입을까?"

"코스타리카에 비 자주 오나?"

아무래도 그 나라에 대한 아쉬움이 여전히 남아 있는 모양이다.

코스타리카는 우리 신혼여행의 1순위 후보지였다.

국립공원에서 아기 나무늘보를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2순위는 남미 5개국 일주였다.

하지만 코로나를 포함한 여러 이유로, 결국 둘 다 가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일정은 거의 다큐멘터리 촬영 수준이었다.

젊다는 이유 하나로 고생을 자처하던 우리였다.


그런 우리에게 변화가 찾아왔다.

올여름 아내가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

우리 이번엔 휴양지 한 번 가볼까?

의외였지만, 나 역시 싫지 않았다.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좋지

그렇게 처음으로, 오로지 '쉼'이 목적인 해외여행을 준비하게 되었다.

여러 후보지를 알아보다가 '세계 3대 석양 명소'라는 화려한 타이틀이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여행지는 정해졌다.

석양을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말레이시아의 코타키나발루로 향하게 되었다



휴양지를 처음 가보았기에, 리조트도 생애 첫 경험이었다.

코타키나발루에서도 석양이 가장 아름답다고 소문난 탄중아루 해변 근처.

그 이름도 낭만적인 샹그릴라 탄중아루 리조트에서 2박을 머물렀다.


원할 때면 언제든 아내와 함께 수영장으로 향했다.

우리는 함께 둥둥 떠다니며 물 위를 산책하듯 놀았다.

해가 떠도 좋았고 져도 좋았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잤다.

기상 시간도, 식사 시간도, 스케줄도 모두 자유였다.

첫날 저녁엔 해변을 느릿느릿 거닐며 석양을 바라보았다.

해가 진 뒤엔 아내와 함께 룸서비스로 저녁을 먹었다.

아내와 함께 룸서비스를 시켜본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말레이시아 요리와 피자, 그리고 와인을 곁들인 저녁을 즐겼다.

낯설지만 은근히 잘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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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오후, 햇살은 유난히 뜨거웠다.

우리는 방 안에 머물며 남은 와인과 초콜릿, 그리고 커피를 곁들여 여유를 즐겼다.

해가 기울 무렵, 근처 야시장에서 사 온 음식들을 방 안에 펼쳐놓았다.

음식을 맛보며 창밖으로 서서히 물드는 석양을 함께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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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날 오후엔 도심 투어를 신청했는데 신청자가 우리뿐이었다.

가이드와 함께 우리만을 위한 프라이빗 투어가 되었다.

말레이시아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지만, 이슬람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다.

도심을 돌아다니다 보니 눈에 띄는 모스크들도 많았다.

핑크 모스크와 블루 모스크.

이름만큼이나 실물도 아름다웠다.


중간에 마신 코코넛 망고 음료는 먹어본 코코넛 음료 중 단연 최고였다.

그동안 코코넛이 들어간 무언가를 맛있다고 느낀 적은 없었지만 이건 달랐다.

말레이시아의 뜨거운 오후 그 한 잔은 단비였다.


이날 저녁은 또 다른 석양 명소인 KK워터프론트에서 한식당을 찾았다.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석양을 즐겼다.

이제는 여행을 가도 가끔은 한식을 먹어줘야 하는 나이인가 보다.

노을 속에서 익어가는 삼겹살은 분명 세계 어디서나 위대했다.


그리고 이날, 또 하나의 생애 첫 경험이 추가되었다.

마사지를 처음 받아봤다.

낯선 공간, 낯선 손길, 낯선 음악.

긴장 반, 설렘 반으로 한 시간 반이 흘렀다.

끝나고 나니 몸이 흐물흐물, 말랑말랑해졌다.

처음이라 어색했지만 숙소로 돌아오는 길엔 이미 다음번을 생각하고 있었다.

노곤노곤해진 몸으로 쓰러지듯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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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날 우리는 호핑투어에 나섰다.

배를 타고 사피섬으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씨워킹'이라는 레크리에이션을 체험했다.

물속에서 커다란 헬멧을 쓰고 산소를 들이마시며 느릿느릿 걸었다.

바닷속을 산책하는 느낌이었다.

둥글고 투명한 헬멧을 뒤집어쓴 채 물속에 들어가자 내 숨소리만 또렷이 들렸다.

마치 유리방 안에 떠 있는 기분이었다.

씨워킹 장비는 2000년대 초 통신사 광고에 등장하던 마스코트 '홀맨'의 머리 같았다.

이렇게까지 옛 마스코트가 생생히 떠오른 걸 보니, 나이 들어서 그런다는 선배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수심 6미터 바닷속을 15분쯤 걸으며 열대어들과 눈인사를 나눴다.

빵가루를 뿌리자 어디선가 수십 마리의 물고기 떼가 몰려들었다.

시야가 가려질 정도였다.

몰려든 물고기들과 짧은 인사를 나누고 물 위로 다시 올라왔다.

씨워킹이 끝난 뒤에는 스노클링으로 이어졌다.

맑고 투명한 바다 아래를 유영하며 애니메이션 속 니모 가족도 만날 수 있었다.


호텔로 돌아온 뒤, 우리는 저녁 무렵 라운지로 향했다.

석양을 바라보며 간단한 음식과 함께 와인과 칵테일을 곁들였다.

물놀이 직후여서 그런지 메뉴는 많지 않았지만 입안에서는 하나같이 별미였다.


해가 진 뒤에는 다시 인피니티 풀로 향했다.

물놀이가 이렇게 좋은 줄은 정말 몰랐다.

'아직은 체력 좀 되는데?', '이 정도면 꽤 젊은 거 아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거는 없었지만 괜히 뿌듯한 자신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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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엔 반딧불이 투어를 떠났다.

도심에서 차로 한 시간 반쯤 달려 '봉가완'이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간단히 저녁을 먹은 뒤, 바닷가 쪽으로 조금 더 이동해 이 여행의 마지막 석양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보아왔던 석양들이 도심을 배경으로 했다면 이날은 달랐다.

넓게 트인 해변 위로 천천히 내려앉는 태양.

어딘가 더 깊고 더 오래 마음에 남을 것 같은 빛이었다.


해가 완전히 저물자 우리는 보트를 타고 반딧불이를 보러 갔다.

형광빛을 머금은 반딧불이들이 나무 위에 앉아 어두운 숲을 마치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밝혀주고 있었다.

절로 탄성이 나왔다.

그중 한 마리는 내 손 위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작고 가벼운 생명체 하나가 쉽게 날아가지 않고 한참을 내 손에 머물렀다.

말 한마디 없이 시간을 멈춘 듯한 순간이었다.

아마 내 마음속에도 그 작은 불빛 하나가 오래도록 머물러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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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넷째 날의 그 근거 없던 자신감은 정말 아무 근거가 없었다.

다음 날 아침부터 몸이 이상했다.

기침이 나고 콧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인피니티 풀이니, 반딧불이 투어니 하며 돌아다녔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가벼운 감기는 결국 몸살로 번지고 말았다.


약을 먹고 쉬어도 좀처럼 낫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이쯤에서 얼큰하고 뜨거운 국물 요리를 찾았을 것이다.

문제는 그러다 보면 소주까지 따라오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

감기를 핑계 삼아 해장인지 회복인지 모를 짓을 하곤 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처음으로 진짜 아파서 죽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것도 나이가 들어서일까?

눈앞에 보글보글 끓는 죽 한 그릇이 자꾸 그려졌다.

뜨끈하고 순하며 부담도 없고, 한 숟갈 뜨면 속이 풀릴 것 같은 바로 그 죽 말이다.



그래서 오늘은 닭죽을 끓이기로 했다.

아내는 아픈데 무슨 요리냐며 걱정했지만 시켜 먹는 건 또 싫었다.

대신, 오늘만큼은 메뉴판 없는 식당의 단골손님인 아내에게 요리 보조를 요청했다.

보조의 역할은 명확하다.

내가 필요한 재료나 양념을 다져다 주고, 다 쓴 그릇이나 도구를 정리한다.

보조는 칼이나 냄비를 잡을 수 없다.

규칙은 엄격하다.


먼저 닭 육수를 만든다.

닭다리살을 넣고 1분쯤 끓이면 거품과 불순물이 올라온다.

그 물은 과감히 버리고 새 물을 받아 다시 끓이기 시작한다.

진한 닭 육수는 사실 닭뼈와 닭발에서 나오는 법이지만 오늘은 몸살이 심하다.

그래서 정육 닭다리살로 끓이고 치킨파우더 한 스푼을 넣는다.

합리적인 타협이라 볼 수 있다.


30분쯤 지나면 닭다리살은 푹 익는다.

그걸 건져두고 육수에 불려둔 쌀을 넣는다.

다진 양파와 당근도 함께 넣는다.

그리고 마늘가루, 소금, 후추를 넣고 눌어붙지 않도록 저어가며 10분간 천천히 끓인다.

이 10분간의 저어주기는 오늘 보조의 주 임무다.

묵묵히 국자를 돌리는 모습이 좀 귀엽다.


그 사이 건져둔 닭다리살은 먹기 좋게 찢어서 죽에 넣고 추가로 5분 더 끓인다.

이제 뚜껑을 덮고 약불로 10분간 뜸을 들인다.

마지막으로 잘게 썬 부추를 넣고 한 번 더 부드럽게 저어주면 완성이다.

그 순간 온 주방에 묘하게 따뜻하고 다정한 향기가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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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곁들일 국물은 해물부추국으로 정했다.

중국집에서 나오는 중식 우동 국물 같은 맛이다.

감기로 목이 칼칼할 땐 뜨끈하고 개운한 국물 한 그릇이 제일이다.

해동한 각종 해물에 채 썬 양파, 부추, 파를 더해 참기름에 볶는다.


지글지글 볶다 보면 야채와 해물에서 자연스럽게 물이 배어 나오기 시작한다.

이 타이밍에 물을 조금 더 붓고, 소금과 후추로 간을 맞춘다.

사실 다시마 육수를 쓰면 훨씬 깊은 맛이 나지만 오늘은 그런 여유까지는 없다.

대신 코인 육수 두 알을 톡톡 떨어뜨린다.

이것도 충분히 훌륭한 선택이다.


5분 정도 보글보글 끓이다가 계란 두 알을 풀어 조심스럽게 국물 위에 흘려준다.

이때부터는 국물을 젓지 않아야 한다.

2분 뒤 전분물을 살짝 풀어 농도를 잡아주면 완성이다.

부드럽고 따뜻한 국물이 목을 감싸줄 준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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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찬으로는 오징어젓, 무말랭이, 고춧잎무침, 고들빼기를 곁들였다.

오늘은 병원밥 분위기를 살려 식기를 전부 흰색으로 통일했다.

이런 걸 하나하나 신경 쓰는 걸 보니 아직 덜 아픈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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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밥을 앞에 두니 입맛이 없다.

코도 막혀서 맛도 잘 느껴지지 않는다.

겨우 두세 수저 떴을 뿐인데, 몸에 힘이 하나도 없고 숟가락을 드는 것도 버겁다.

밥 먹는 것마저 일이었다.

그런데 맞은편에 앉은 아내는 "이거 진짜 너무 맛있다!"며 감탄을 연발한다.

어디서 그런 기세가 나는 건지 닭죽을 힘차게 퍼 먹는다.

누굴 위해 차린 식탁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나는 겨우 한 그릇을 비우고 약을 먹었다.

그 사이 아내는 조용히, 자연스럽게 닭죽을 한 그릇 더 리필했다.

그제야 알겠다.

이 식탁은 나를 위한 게 아닌 것 같다.

그래도 잘 먹는 아내의 모습을 보니 예쁘다.

그거면 됐다.



밥을 다 먹고 소파에 살짝 기대앉는다.

약 기운이 퍼지는지 몸이 조금씩 느슨해진다.

닭죽의 힘으로 감기가 내 몸에서 한 걸음 물러나주길 바라 본다.


주방 쪽에선 그릇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조금 뒤, 정리를 마친 아내가 소파로 다가온다.

그리고는 아픈 나를 바라보며 묘하게 장난기 어린 눈빛을 보낸다.

말은 없지만 표정은 분명하다.

"지금 뭔가 장난 좀 쳐볼까?" 하는 눈빛이다.

기운은 없지만 나는 바로 눈치를 채고 말한다.

"애도 아니고 남편이 아픈데... 자꾸 장난만 치려 그래?"

그러자 아내는 기다렸다는 듯 소파 옆에 툭 앉으며 웃는다.

나이가 뭔 상관이야.
나 꼬부랑 할머니 돼도, 오빠한테 계속 장난칠 건데~~

그 말에 피식 웃음이 났다.

몸은 여전히 축축 처지는데, 마음은 어느새 조금 살아난다.

이런 소소한 웃음 하나가 약보다 더 효과 있는 날도 있는 법이다.


문득 생각이 든다.

이젠 예전처럼 얼큰한 국물부터 찾기보단 죽이 먼저 떠오른다.

빡빡한 여행보다 잘 쉬는 여행이 더 끌린다.

술보단 따뜻한 차가 좋아진 걸 보면 나도 나이를 먹긴 했나 보다.


그런데 그런 게 뭐 중요할까.

입맛이 변하고, 취향이 바뀌고, 체력은 줄어들더라도 그 변화를 함께 받아줄 사람이 곁에 있다면.

매일 반복되는 평범한 하루 속에서도 함께 밥을 챙기고, 가끔은 장난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삶은 여전히 유쾌하고 충분히 가치 있다.

꼬부랑 할머니가 돼서도 내게 장난칠 거라는 그 사람 덕분에 오늘도 나는 웃는다.

그리고 그 웃음이 가끔은 진짜 휴양지에 데려다주는지도 모르겠다.


아내의 후기

닭죽과 해물부추국
★5.0점
닭죽과 국물의 조화는 정말 최고였어요!
그래서 이건 따로가 아니라 함께 묶어서 별 다섯 개 드려야 합니다.
닭죽은 그 자체로 완벽했고 하얀 해물 국물은 감칠맛이 정말 환상적이었어요.
한입 먹자마자 감탄이 절로 나와 리액션이 폭발했고 한 그릇씩 더 먹었네요ㅎㅎ
아픈 몸 이끌고도 예술작품 같은 한 끼를 만들어준 우리 신랑!!
늘 존경스럽고,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P.S.

코타키나발루를 코스타리카라고 부르던 아내는 어릴 적부터 이런 실수를 곧잘 했다고 한다.

시장에 가는 엄마에게 "꽹과리 먹고 싶어, 사다 줘!"라고 말했다고 한다.
장모님은 잠시 고민하셨지만 결국 아내가 진짜 원했던 걸 정확히 사 오셨단다.
그 꽹과리는 다름 아닌 꽈배기였다.

간장계란밥은 늘 간장게장이라 불렀고, 김치찜은 자신 있게 찜김치라 말했단다.

처음엔 헷갈리지만 자꾸 듣다 보면 괜히 정이 간다.

틀려도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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