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 서랍을 뒤적이다가
지금도 그렇지만 초중고 시절 만화책을 진짜 진짜 무척이나 좋아했다. 내용에 푹 빠져서 읽고 또 읽고 울다가 웃다가 하던 날이 셀 수 없이 많았다.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 가사를 따라 적으며 좋아라 하던 것도 그때 한참 재미있게 보던 만화책 한 페이지에 가득 적혀있던 바로 그 노래 가사 때문이었다.
일본 만화를 그대로 베낀 것도 많았다 하고
해적판이 흔하던 때라
내가 본 만화책이 진짜 우리나라가 맞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래도 그 당시 엄청난 인기가 있던 이미라 작가의 인어공주를 위하여를 비롯한 순정 만화들은 여전히 가슴을 콩닥이게 할 때가 있다.
한 쪽으로 머리칼을 날리며 서 있던 모습하며
당시 이다음에 딸을 낳으면 슬비로 아들을 낳으면 푸르메로 이름을 짓겠다는 아이들이 무척 많았다.
하도 많은 작품에 슬비와 푸르메가 등장해서 어느 게 어느 건지 이제는 구분이 잘 안 가긴 한다.
그래도 궁금하지 않은가? 슬비와 푸르메는 지금 잘 살고 있을까?
그리고 라디오를 듣다 빨간 버튼이랑 플레이 버튼을 동시에 눌러 녹음해서 테잎이 늘어질 때까지 듣던 노래들.
그 무렵 가요 TOP10에 나오던 가수들은 덥수룩한 머리 모양에 커다란 안경을 쓰고 얼굴을 반은 가릴 거 같은 색색의 동그란 스폰지(?)가 끼워진 마이크를 들고 노래를 불렀다.
영화 돌아이 시리즈의 주인공이었던 전영록 아저씨도 멋있었고, 기역 니은 춤을 추던 박남정 아저씨의 발재간은 참 신기했다. 가사도 예쁘고 좋은 노래들이 많았는데 인형 같은 얼굴로 노래를 부르던 장덕을 제일 좋아했다.
사랑했던 사람은 곁에 없지만
사랑했던 마음은 남아 있어요
나중에 나중에 그 시절 노랫말이 예쁘던 여러 곡의 노랫말도 장덕이 쓴 거 란 걸 알고 더 슬퍼했던 기억이 난다.
또 한동안 부르고 다니던 저 바다에 누워는 남녀 가수가 함께 시원하게 부르는 소리가 듣기 좋았다. 엄마가 삯바느질을 하며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오면 귀를 쫑긋 세우고 들으며 따라 부르곤 했다.
유행가를 따라 부르며 어설피 가수들의 몸짓을 따라 하면 우리 딸 잘한다 잘한다 칭찬을 듣기에 진짜 잘하는 줄 알고 볼때기 한가득 빨간 물 들이고 서서 덩실거렸더랬다.
나 하나의 모습으로 태어나 바다에 누워
해 저문 노을을 바라다본다.
설익은 햇살에 젖은 파도는
눈물인 듯 찢기워간다. - 저 바다에 누워 가사 중
열 살 무렵 꼬꼬마가 뭘 안다고
이 노랫말이 멋있고 뭘 막 생각해야 할 것 같고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감수성이라고 해야 할지 사차원의 독특한 아이였다고 해야 할지.
그래도 이제는 어른이 되어서 어릴 때 좋아하던 은하철도 999 베르사유의 장미 슬램덩크 마스터키튼 등등등 블루레이랑 만화책들을 모아 놓으면서 아주아주 뿌듯해하고 있다.
가끔 작은 아이한테 하는 말이긴 한데 난 80이 넘어도 이렇게 살 것 같다. 노래 한 소절에 울컥하고 소설과 만화책 글 한 줄에도 울다가 웃다가 그렇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