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미인 saga

메리위도우 스타 릴리 엘시

by 무체

1900년대 초반, 영국 에드워드 시대라는 거대한 유리 상자 안에 갇힌 단 하나의 얼굴을 꼽는다면 그것은 릴리 엘시(Lily Elsie)다.


1886년 웨스트 요크셔의 누추한 공기 속에서 태어난 이 소녀는, 자신의 얼굴이 수만 장의 엽서에 박제되어 누군가의 서랍 속에서 탐닉의 대상이 될 것이라곤 짐작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시대가 발명한 가장 화려한 소모품이었고, 현대의 아이돌이 포토카드 속에 갇히듯 그녀의 미소 또한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대중은 그녀를 소유하려 했으나, 그 누구도 그 미소 뒤에 가려진 습한 그늘은 보려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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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W9CFGJBhLRY

무대 위에서 길을 잃은 수줍은 짐승


엘시 코튼이라는 본명은 화려한 무대 조명 아래서 휘발되었다. 열 살 무렵부터 타인의 시선을 먹고 자란 그녀는 무대 위에서만큼은 찬란한 끼를 발산했으나, 분장을 지운 뒤의 삶은 고통스러울 만큼 내성적이었다. 그녀는 마치 날개를 가졌으나 비행법을 배우지 못한 기형의 새처럼, 자신에게 쏟아지는 광적인 찬사를 견디지 못하고 떨었다. 이 지독한 부적응은 훗날 그녀의 영혼을 갉아먹을 부스럼의 전조였다.


《메리 위도우》, 화려한 저주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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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오페레타 《메리 위도우》는 그녀를 불멸의 스타로 만들었지만, 동시에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는 굴레가 되었다. 그녀가 착용한 거대한 모자와 드레스는 즉각적인 욕망의 대상이 되었고, 당대 화가들은 캔버스 위에 그녀를 박제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수많은 남성이 그녀의 사진을 품에 넣고 흠모의 열병을 앓았으나, 릴리 자신은 그 열기 속에서 질식해갔다. 대중의 관심은 시혜가 아니라, 서서히 살을 파고드는 가려움증 같은 성가신 통증이었다.


박제된 결혼과 무너진 날개

정점에서 선택한 결혼은 도피처가 아닌, 또 다른 형태의 무허가 조산원과 같았다. 부유한 제조업자의 아들 이언 불로우는 그녀가 평범한 아내라는 이름의 '수집품'이 되길 원했다. 빈혈과 잦은 수술은 그녀의 육체를 부식시켰고, 무대를 그리워하는 영혼과 평범을 강요하는 남편 사이의 괴리는 그녀를 정신적 빈사 상태로 몰아넣었다. 그녀는 간헐적으로 무대에 섰으나, 그것은 비행이 아니라 단지 추락하지 않기 위한 필사적인 퍼덕임에 불과했다.


고독이라는 이름의 종막

대중에게 그녀는 영원히 빛나는 '메리 위도우'였으나, 인간 릴리 엘시는 요양원의 차가운 침대 위에서 서서히 잊혀갔다. 1930년의 이혼은 그녀에게 자유가 아닌 극심한 신경쇠약을 선물했다. 정신은 급속도로 악화되었고, 한때 수천 명의 박수를 받았던 머리칼은 뇌 수술을 위해 무참히 깎여 나갔다.


76세의 일기로 세인트 앤드류 병원에서 숨을 거둘 때, 그녀 곁에는 환호성도, 엽서를 든 팬들도 없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아름다운 괴물은 그렇게 골더스 그린의 화장터에서 한 줌의 재로 산화했다.


그녀의 비행은 끝났지만, 여전히 낡은 엽서 속의 그녀는 박제된 채 슬프게 웃고 있다. 마치 태초부터 날 수 있었으나, 날기 위해 필요한 근육 대신 타인의 욕망만을 이식받은 신인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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