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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체 Mar 21. 2024

아이들 눈은 정확하지 않다

어릴 적 내 기도 제목은 변함이 없었다. 바로 예뻐지게 해 주세요,였다. 소원이 딱히 간절한 것은 아니었지만 교회를 가면 뭔가를 빌어야 하는 줄 알았고 마땅히 빌 만한 소원이라고 생각난 것은 그것뿐이었다. 아이들이란 본디 단순하기 짝이 없는 법이니까.


얼마 전에 이천 아웃렛에 갔더니 입구 벽에 어린아이 손글씨로 똑같이 쓴 문장을 발견했다. 나처럼 예뻐지고 싶어서 기도하는 아이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현대 의학으로는 원하는 얼굴과 몸매 심지어 키도 늘렸다 줄일 수 있다고 하여서 요즘 아이들에게 그런 소원은 필요 없는 줄 알았다.  


여하튼, 어릴 적 기도가 통했던 걸까? 나는 비교적 예쁘게 자랐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다는 거다. 오십 문턱에 이르러 예쁨을 논할 수 없는 나이에 이르자 그때 내가 꽤 예뻤었구나, 를 깨달았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최고의 자산은 평균 이상의 외모 덕분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예뻤던 나인데 그때는 알지 못한 것이 원통하다.  한창 예쁘던 시절에 예쁜 척을 더 하고 살았다면 인생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심지어 내가 예뻤다는 것은 나만의 착각도 아니었다. 어릴 적 집에 온 젊은 화장품 판매원 언니도 나를 보며 커서 미스코리아 내보내면 되겠다고 말한 적도 있다. 그때 엄마는 콧방귀를 뀌며 답했다.


 “코가 오뚝하다고 다 미스코리아 하나? 눈이 예쁘긴 하지. 눈만 예뻐.”


그래서 나는 내가 눈만 예쁜 아인 줄 알고 살았다. 그런 것보다 어린 시절 줄곧 듣고 살던 말은 예쁘다가 아닌 잘생겼다란 소리 때문에 그런 소원을 빌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그토록 예쁜 것에 집착한 이유가 바로 그놈의 잘생겼다는 소리에 대한 반감으로 생겨난 현상이 아닌가 한다. 여자로 태어났으면 예뻐야지 잘생겼다가 뭐냐고. 처음 보는 사람 모두 나를 사내아이로 착각하는 게 원통한 것도 있었고. 


머리는 짧고 피부는 까맣고 행동은 극성스러웠으니 당연히 남자애로 본 것인지 이목구비가 남자애처럼 강직하게 생겨서인지는 말하지 못하겠다. 그렇게 예뻐지길 원했으면서 정작 나는 예뻐지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보다는 예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았다. 내가 나를 꾸미는 것보다 내가 누군가를 예쁘게 꾸며주는 게 좋았고 예쁜 것을 찾아내는 게 좋았다. 그리고 누가 봐도 예쁜 사람을 추앙하는 것이 좋았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얼굴이 예뻤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것을 보면 예쁜 것을 보는 안목은 조금 부족했던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물론 어떤 때에는 독보적으로 미적 재능을 발휘했으나 대체로는 무언가에 홀리듯이 보는 눈이 독특한 것도 있었다. 사실 독특이라기보다는 지나치게 대중적이고 그 대중적인 안목이 조금 앞섰다고 봐야 할 것 같다. 그렇다면 나름 안목이 있다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고급스러운 눈썰미를 장착한 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미스코리아 김성희 (이미지 출처: 나무위키)



그러한 근거로 먼저 어린 시절 그러니까 내가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 내가 첫 번째로 반한 미인은 미스코리아 진 출신 김성희였다. 물론 그녀는 당시 엄청난 미인 대접을 받았고 가수 활동도 해서 큰 인기를 얻은 걸로 알고 있다. 어린 내 눈에 그녀는 유달리 까만 눈에 폭이 좁은 갸름한 얼굴 그리고 아래턱이 조금 나온 듯 치아가 살포시 보이며 웃던 그 모습이 천사가 따로 없어 보였다. 그러나 훗날 내가 김성희를 다시 찾아봤을 때 깜짝 놀라서 심히 당황했다.  물론 그 시대를 대표한 미인은 맞지만 내가 생각하고 있던 그녀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눈이 크고 깊었던 게 아니라 너무 짙고 까만 눈화장을 하고 있었다. 물론 당시 기준으로는 엄청난 미인일 수도 있었겠으나 뭔가 속은 기분이 들었다. 어린 시절 내가 생각하고 있던 미의 여신 김성희는 순정 만화 속 주인공처럼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턱이 짧으면서 갸름하고 머리카락이 찰랑였어야 하는데 사진 속 김성희는 부스스한 헤어 스타일에 그냥 화장 진한 평범한 여인이었다. 아마도 어릴 적에는 미모보다는 그녀의 가녀린 목소리에 홀렸었나 보다. 


 대체로 사람들이 말하길, 어린아이의 눈은 속일 수가 없다고 하는데 어린아이는 화장발에 잘 속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래서 유치원 선생님들은 빨간 립스틱을 발라야 아이들이 좋아한다고 했던가. 여하튼 아이들 눈에 예뻐 보이는 어른들은 죄다 요물이다. 그래서 각별히 경계해야 한다. 순진한 아이들을 가식적인 미소와 화장발로 꼬드기다니. 그러니 어린아이들이 못생겼다고 외면해도 좌절 금지. 나도 좌절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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