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심이란 인간이 느끼는 다양하고 복잡한 감정에 해당한다. 성경에서 수치심의 개념은 회개, 죄, 용서, 등의 믿음의 변형 차원에서 발생하는 감정으로 해석되곤 한다. 일반적으로 수치심은 부끄럽고 창피한 기분을 느끼게 하지만 성경에서는 죄의 맥락에서 다루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그러니까 하나님 말을 듣지 않는 일련의 행위를 수치심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이 수치심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는 방법이 제시된다.
그러나 신앙을 떠난 수치심은 자존심 그리고 지력과 더 연관이 있어 보인다. 자신이 알고 정립했든 안 했든 자신이 세워 둔 기준에 못 미치거나 부합하지 못한 행동이나 감정을 느꼈을 때 찾아오는 감정이다. 수치심에 대한 관용의 폭이 클수록 뻔뻔하다는 소리를 듣는 것일 테고. 수치심을 자주 깨달을수록 그것은 나름의 성장 혹은 업그레이드되는 과정이라고 본다.
수치심이란 크거나 작거나 무모한 삶의 결과이다.
수치심은 자의든 타의든 실수에 의한 무모한 삶의 결과이다. 아브라함이 술에 취해 알몸으로 잠이 든 것을 그의 세 아들이 보았고 이를 폭로한 막내 함은 저주를 받았는데 생각해 보니 아브라함은 어디다 대고 화풀이를 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옷을 벗는 것이나 알몸을 보였다는 것은 아들의 경솔한 행동보다 수치심이 더 큰 부분을 차지한다.
사람들에게 알몸을 보이고도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것은 짐승이나 다를 게 없지 않은가? 그래서인지 간혹 시위한다면서 상의 노출 등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 수치심이 누구 몫이 되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인류의 조상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고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바로 수치심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잎사귀 등으로 알몸을 가렸고 창조주는 이것들이 자체 진화에 성공했구나, 하며 진노를 금치 못하셨다. 짐승과 인간이 분류되는 순간이었다.
창조주는 한숨 섞인 어조로 한차례 큰 호통과 책임 추궁 끝에 이들을 에덴동산에서 쫓아냈다. 그리고 다시는 에덴동산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못하게 경호 역할을 하는 체루빔들을 세워 놓았다. 그리고 아담과 이브를 위해 창조주가 마지막으로 보여준 선의는 가죽 옷을 입혀 주신 거였다. 옷을 직접 지어 입혔는지 까지는 모르겠고, 창조주가 이들에게 옷을 입혀 내보냈다는 것은 일종의 용서를 의미한 거라고 봐도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