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모어 걸스에 나오는 드래곤플라이 인은 우리말로 잠자리 여관을 의미한다. 어쩌면 이렇게 절묘하게 이름을 잘 지었을까? 길모어 걸스의 드래곤 플라이 모텔은 극 중에서 매우 상징적인 장소이지만 이름을 왜 그렇게 지었는지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짧지만 강렬했던 문화의 획을 그었던 아르 데코 시절은 자연 친화적인 삶의 끝판왕이었다. 온 세상이 아름다웠고 인간의 손에 의해 자연을 모티브로 인공적인 아이템이 유행이었는데 아름다움을 전제로 한 이 아이템 중 잠자리는 아르데코 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장식품이었다.
길모어걸스에서 모텔 이름을 드래곤플라이로 지은 이유는 미국의 순수한 시절 혹은 자연친화적인 미학을 보여주고 싶어서 그리 지었던 게 아닐까? 로렐라이의 히피 기질을 내포한 것은 당연한 것일 테고.
예부터 잠자리 토템은 삶의 변화와 적응하는 지혜를 의미했다. 잠자리는 영혼의 동물로 빛과도 연관이 깊으며 행복 그리고 속도 및 순수함을 나타낸다. 미국의 원주민 중 가장 큰 부족인 나바호족은 잠자리가 한 때 용이었다고 믿었다고 한다. 그래서 드래곤플라이로 이름 지어진 건지는 모르겠으나 이들은 잠자리를 순수한 물의 원천이며 초자연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고 여겼기에 잠자리를 죽이는 것을 금기시했다. 어릴 때 장난 삼아 잠자리 날개를 떼고 못 살게 군 것을 생각하면 아찔할 정도다.
잠자리는 빠르고 민첩하지만 수명이 짧다. 그래서 찰나의 기쁨처럼 여기는 걸까?
켈트족 신화에는 잠자리에 관한 스토리가 엄청 많다. 전설 속에 등장하는 잠자리는 마법의 존재인데 실제 잠자리 날개는 무지갯빛을 띠며 잠자리 눈은 360도로 굴러가기에 환영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은 한계 너머의 특별한 것을 추구하는 인간의 마음을 상징한다. 혹은 대변하는 것 일 수도.
자연 속을 날아다니지만 종종 연못이나 호수 등 물가 가장자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잠자리는 자연 친화적인 특징을 지니며 봄, 부활 그리고 갱생까지 관여하는 것인지 어쩐 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그런 걸 상징한다. 나는 잠자리하면 가을 그리고 코스모스에 앉아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래서 일종의 생생한 도약 이미지보다는 연로한 어르신의 휴식기를 보는 기분이었다.
아무튼, 잠자리가 원시 부족들 사이에서 영적인 부분을 관장한다고 했을 때 기독교에서도 크게 다르게 여기지 않았다. 잠자리는 기독교에서도 각별하게 여기는 편이었는데 그들은 물속에서 태어나 빛으로 떠오르기 전 어둠 속에서 살아있고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는 투명하며 햇볕에 닿았을 때는 마치 마법처럼 아름답고 화려하고 변하는 모습을 신성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것이 마치 예수의 빛이 그들에게 비칠 때 인간이 변형되고 거듭난다는 기적처럼 여긴 거다.
영국 원주민 켈트 신화에 이어 웨일스 신화에서 잠자리의 의미는 뱀이 뱀을 따라다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뱀의 한 종류로 보았다고 한다. 이건 그리 좋게 본 것처럼 느껴지진 않는다. 한편, 일본도 잠자리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일본은 이상하리만치 잠자리를 숭배하는 쪽에 가깝다. 일본은 잠자리를 국장으로 삼으며까지 좋아하는데 잠자리가 기쁨과 부활을 상징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일본에는 잠자리가 여름의 끝과 겨울의 시작을 나타내는데 대마도로 불리는 일본의 섬 아키쓰시마는 섬의 모양이 잠자리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내 눈에는 어디가 어떻게 잠자리와 비슷하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 섬의 이름은 일본의 초대 천왕 진무 덴노가 지었다고 하는데 일본 사람들은 잠자리가 죽은 사람들의 여름 잔치를 위해 돌아온 죽은 조상들의 귀환을 돕는 일종의 옵저버로 믿었다고 한다. 확실히 일본은 상상력이 풍부한데 이상하게 가장 그럴듯하게 느껴진다.
중국은 생뚱맞게도 잠자리의 영혼이 행운을 불러와 사랑의 주문을 외칠 때 사용된다고 한다. 한국도 의미가 남다를 것 같아서 찾아봤더니 본래 잔잔한 날갯짓을 한다는 의미의 잔자리에서 잠자리로 변형되었다고 하고 모양이 남근을 상징하여 정력제로 사용되고 득남을 기원하는 상징으로 쓰였다고 한다. 아무리 뿌리 깊은 농경 사회 문화라고는 하지만 사연이 참 처참하다. 다른 나라는 마법이니 옵저버니 심지어 낭만적인 사랑의 메신저 역할도 하는데 한국은 너무 원초적이고 미개하고 변태적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 께름칙한 기분 어찌할 거야.
우리와 비슷한 베트남은 어떨까 하고 찾아봤더니 베트남은 잠자리가 날씨를 예측하는 용도로 쓰인다고 한다. 잠자리가 낮게 날면 비가 온다고 보고 높이 날면 날씨가 화창하고 밝으며 중간쯤으로 날면 하늘이 흐려진다는 것을 예상한다고 하는데 한국보다 현실적이며 덜 원시적인 것 같아서 부러울 정도다.
잠자리를 기쁨과 부활을 상징한다고 보는 반면 북미 원주민들은 잠자리가 죽은 영혼을 상징하기도 한다.
북유럽 스웨덴도 잠자리에 대해 남다른 의미를 지니는데 이들에게 잠자리는 영혼의 순수성을 측정하는 도구로 이용된다는데 사용법은 알 길이 없다.
덴마크와 포르투갈에는 잠자리가 어둠을 상징한다. 이들에게 잠자리는 악마의 바늘로 불린다고. 투명하게 태어난 잠자리가 빛을 받으면서 색채를 띠다가 죽은 후에는 다시 색이 없고 투명해진다는 사실 만으로도 충분히 두려움을 느낄 만하다.
이렇듯, 몇몇 나라에서 잠자리에 대한 상징은 극과 극이다. 그러나 삶과 죽음의 상징 중 죽음이 조금 더 우위에 있는 것 같다. 와, 그런데 한국은 득남 기원에 정력제로 사용했다고 하니 아, 역사 왜곡 마렵다. 한국 특유의 서러운 정서적 한(恨)은 상쇄하고 보다 건조하면서 낭만적인 기질 강화에 주력해야겠다 싶은 의무감이 드는 건 왜일까? 그러니까 감정 충만보다 낭만 충만이 더 필요할 것 같은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