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오토픽션

브라질표 아버지

by 무체

버스에서 내리자 비탈을 따라 위태롭게 들어선 알록달록한 집들이 쏟아질 듯 다가왔다. 거리엔 시선을 끄는 자동차들이 즐비했다. 그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차가 있었다. 직감적으로 차 주인이 아버지란 걸 알았다. 언젠가 페이스북에서 보았던, 넙데데한 얼굴에 이마가 훤하게 벗겨진 단발머리. 사진 속 모습 그대로였다.

내가 다가가자 아버지는 익숙한 듯, 그러나 자못 피곤한 눈빛으로 나를 안았다. "사진보다 덩치가 훨씬 크구나. 잘 컸어." 아버지는 내 얼굴에서 엄마를 찾으려는 듯 미간을 좁히며 덧붙였다. 엄마를 많이 닮았다고. 아버지는 내 모습에서 간신히 엄마의 기억을 복기해 내는 듯했다.

"가는 길에 명소 좀 둘러보고 가자꾸나." 나는 구경보다 쉬고 싶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핑크 비틀은 처음 봐요." 내가 꺼낸 첫마디였다. 아버지는 올드카를 구입해 직접 도색했다며 웃었다. 여기는 폭스바겐이면 된다고 했다.


ㄹ무제.jpg


삼십 년 만에 만난 부녀의 대화치고는 겉돌았다. 어색한 침묵을 메우기 위해 아무 말이나 던져대는 꼴이었다. 아버지는 전직 택시 운전사답게 거칠면서도 능숙하게 차를 몰았다. 브라질에 온 지도 오 년이 넘었다며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아버지는 나를 철저히 손님으로 대하고 있었다.


창밖으로 마을이 흘러갔다. 도로 전면으로 독일식 주택들이 정연하게 늘어서 있었다. 얼마쯤 가다가 아버지는 카넬라 폭포를 가리켰다. "이과수 폭포에 비하면 저것은 애기 폭포에 불과하지." 아버지는 익숙하게 차를 세웠다. 손님들에게 으레 그랬듯 내게도 습관화된 의례처럼 굴었다.


폭포는 거대한 짐승이 포효하듯 우렁찼다. 희뿌연 물안개가 날렸고, 폭발하듯 터져 나오는 물줄기는 압도적이었다. 귀가 먹먹할 정도로 시끄러운 폭포의 광기(狂氣)를 멍하니 바라보는데 아버지가 손짓을 했다. 나는 아버지를 따라 물의 소리를 빠져나왔다.


아버지는 갑자기 생각난 듯 왜 SNS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싸이월드에서 짐을 싼 이후 카카오 스토리에 둥지를 틀었다가 트위터를 거쳐, 최근에는 페이스북으로 이주했다. 그곳에 아버지의 모든 일상이 전시되어 있다고 했다. 나는 아버지와 카카오 스토리까지 왕래하다 그마저도 그만두었다. 보여 줄 것도, 보고 싶은 흥미도 사라진 탓이다. 어쩌다 동생 계정으로 아버지의 삶을 훔쳐본 적은 있다. 타임라인에는 그리움의 이모티콘이 가득했다. 구체적으로 누구를 향한 그리움인지는 모호했다. 그 모호함은 때로 연민처럼 다가왔다.


아버지는 초콜릿 카페를 가리키며 뜨거운 우유에 초콜릿을 녹여 먹는 '서브마리노'를 마시자고 했다. 음료를 기다리는 동안 다시 서먹한 정적이 흘렀다. "그동안 왜 한 번도 오지 않았니. 이렇게 좋은 것을." 나란히 선 아버지는 나보다 머리 하나가 작았다. 거리를 지나는 쭉쭉 빵빵한 남미 미녀들을 보고도 무심할 만큼 이곳 생활이 태연해진 아버지는, 아무리 봐도 낯선 아저씨였다. 갑자기 목울대가 뜨거워졌다. 나는 대답 대신 가방에서 선글라스를 꺼내 썼다.


아버지는 서브마리노를 마시는 나를 연신 카메라에 담았다. "연아! 어떠냐? 맛이 좋지?" 아버지는 브라질의 광활한 땅과 문화를 극찬했다. "특히 이곳은 맑은 날은 말할 것도 없지만 흐린 날은 흐린 대로 예쁜 곳이지. 천국이 따로 없어." "그라마두가요? 아님 브라질이요?" "브라질이지. 근데 준이는 취업 준비하느라 못 왔다고?" "취업이 아니라 창업이요. 아이템은 좋은데 투자자만 확보하면 된대요." "열심히들 사는구나. 쉽지는 않을 테지."


창밖으로 작은 꼬마가 뛰어다녔다. 꼬마의 이마를 타고 내리는 땀방울이 바닥에 툭툭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있는데 아버지가 일어났다. 아버지는 핑크 비틀을 향해 걸어갔다. 아무리 봐도 아버지의 핑크 비틀은 그 옛날 싸이월드에서 유일하게 건져 온 보물 같았다. 지금은 폐허가 되어 아무도 살지 않는 곳. 내 미니미는 지금쯤 빈방에 홀로 웅크리고 있을 것이다. 기분 상태는 '대체로 맑음'을 띄워둔 채.


아버지는 내가 건넨 주소 메모를 보더니 집에서 멀지 않다고 했다. "원하면 우리 집에서 묵어도 상관없다." 나는 괜찮다고 거절했다. 간다고 했을 때부터 묵을 곳을 묻던 분이 아니던가. 아버지는 시동을 걸며 머무는 동안 자주 보자고, 보여줄 게 많다고 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가 내려준 숙소 앞에는 화려한 문양의 홈드레스를 입은 뚱뚱한 노파가 앉아 있었다. 노파는 엉거주춤하게 걸으며 방을 안내했다. 옷을 갈아입고 잠시 쉬려는데 노크 소리가 들렸다. 아베크롬비 모델처럼 상의를 벗은 채 황금빛 피부를 드러낸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서툰 영어에 환한 미소를 장착한 남자, 알마였다. 알마는 모델 에이전시 동료였던 밀레나의 소개로 알게 된 친구다. 일본계 혈통이지만 부모 얼굴은 모른 채 노파 손에 자랐다고 했다. 그는 낮이면 항상 웃통을 벗고 지내는 스무 살의 풋내기 모델 지망생이었다.


며칠 뒤, 알마가 합류했다. 알이 꽉 찬 밤송이처럼 핑크 비틀은 터질 것 같이 좁았다. 낯선 세 사람의 체취가 폐를 조여 왔다. 에어컨 대신 창문을 열고서야 조금 살 것 같았다. 나는 아버지의 아내 사야코, 그리고 알마와 함께 카로콜 폭포를 구경하고 오는 길이었다. 아버지는 운전대를 잡은 채 알마 흉을 보았다. "밥은 지네 집에 가서 먹지. 구태여 따라 들어왔을까." 브라질에서 아버지는 특별한 직업이 없었다. 방랑객으로 최적화된 숭굴숭굴한 성격 덕분인지, 일은 안 해도 사람들과 어울리느라 바빴다. 쉴 새 없이 전화가 왔고, 한국어와 일본어를 섞어 응대했다.


돌아오는 길, 아버지는 집에서 저녁을 먹자고 했다. 알마는 내가 대답도 하기 전에 좋다고 나섰고, 나도 얼떨결에 수락했다. 비 온 뒤라 신발 바닥에 흙이 질척했다. 충분히 털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버지는 잿빛 흙이 묻은 내 신발을 보더니 인상을 썼다. "좀 더 털어야겠다." 매트에 발을 문지르고 점프를 해도 흙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됐다." 아버지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사야코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먼저 들어갔다. 아버지는 사야코의 뒷모습을 보며 일본에서 만났다고 했다. 그전에도 전 세계의 숱한 여자를 만났다고 자랑처럼 덧붙였다. 아버지가 사야코와 산다는 건 싸이월드 시절부터 알고 있었다. 둘은 브라질로 이주한 뒤 정식으로 결혼했다. "착한 여자다." 사야코는 친척 식당에서 일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무언가 더 말하고 싶은 눈치였지만 나는 궁금함을 드러내지 않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둘만의 애틋한 사정 따위를 들어줄 여유는 없었다.


부엌에서 서둘러 음식을 준비하는 사야코의 뒷모습을 힐끗 보았다. 착한 여자. 그래, 착한 여자라고 했다. 사야코는 아버지와의 결혼이 초혼이었다. 오십 대 중반, 염색하지 않은 검은 커트 머리. 핏기 없는 얼굴에 박힌 까만 점들이 별자리처럼 보였다. 엄마의 활달하고 화려한 모습과는 대조적인, 조신한 여성이었다.


스멀스멀 고소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사야코는 강박증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접시 위치를 몇 번이나 고쳐 놓았다. 아버지는 오코노미야끼를 가리키며 사야코가 가장 잘 만드는 음식이라 추켜세웠다. 당신은 한식을 싫어하며 일본 음식이 입에 맞는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때때로 아버지는 한국에 관한 모든 것을 부정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또 다른 접시에는 옥수수 가루를 묻혀 만든 브라질 전통 음식, '파러파'가 담겨 있었다. "이건 양고기랑 같이 먹어야 제맛이다." 아버지는 훈수를 두며 내 얼굴 앞에 핸드폰을 들이밀었다. 셔터 소리가 연달아 터졌다. 뷰파인더 속의 나는 웃고 있지 않았다.


나는 억지로 파러파를 개인 접시에 덜었다. 고소한 옥수수 냄새 사이로 이질적인 무늬가 보였다. 갈색 점이었다. 처음엔 후추나 향신료인 줄 알았다. 하지만 점들은 제멋대로 대열을 흩트리며 접시 가장자리로 기어가고 있었다. 개미였다.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득시글했다. 숟가락이 손에서 미끄러져 테이블 위로 떨어졌다. 쨍, 하는 소리와 함께 위산이 식도까지 치고 올라왔다. "여기 벌레가 있어요." 알마는 눈이 휘둥그레졌고, 사야코는 얼굴이 빨개지며 접시를 가져가 살폈다. 아버지도 그럴 리가 있냐며 들여다보았다. 어이없게도 사야코는 괜찮다며, 그 정도는 먹어도 된다는 듯 제스처를 취했다. 아버지는 오히려 벌레가 어딨냐고 심기를 드러냈다. "개미가 막 기어 다니잖아요." 아버지는 끝까지 개미가 없다고 우기다가, 대체 개미 좀 나오면 어떠냐고 발끈했다. 알마가 자신은 괜찮다며 분위기를 수습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사야코는 내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포크를 쥔 내 손끝이 부르르 떨렸다. 아버지의 눈빛도 흔들리고 있었다. 급기야 아버지가 소리를 질렀다. "내 눈에는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무슨 벌레 새끼가 있다는 거야? 차려준 사람 성의도 생각 안 하고. 오냐, 이제 보니 괜한 시비를 걸려고 그런 거였구만." "개미가 득시글한 음식을, 보이지도 않는다고 우기며 먹으라는 건 너무한 거 아니에요?" "그깟 벌레 좀 있다고 유난은. 이 나라는 이런 건 신경도 안 쓴다. 나 원 참. 아주 제멋대로 자랐구만. 이렇게 사사건건 시비 걸 거면 니 알아서 살아라." "언제는 그렇게 안 살았던가요."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쳐나왔다. 알마도 허둥지둥 내 뒤를 따랐다. 아버지는 내 등 뒤에 대고 계속 고함을 질렀다. 그 뒤로 아버지와는 연락하지 않았다. 브라질에 와서 아버지와 상관없는 삶이라니 사뭇 우스웠지만, 자연스럽게 그렇게 흘러갔다. 돌아갈 날이 며칠 남지 않았지만 연락할 생각은 없었다.


짐 정리를 하고 있자니 알마가 들어왔다. 나는 그에게 숙박비를 건네고 작별 인사를 했다. 알마는 내게 브라질 특산품이라 불리는 '하바이아나스' 슬리퍼 두 켤레를 선물로 주었다. "셀럽들 파파라치 사진에 자주 등장하는 그 하바이아나스!" 대략 240과 280 사이즈로 보이는 핑크색 슬리퍼였다. 그는 커플 슈즈라며 웃었다. 나는 280 사이즈 슬리퍼를 들어 보였다. "그 색깔을 좋아하는 남자를 내가 알고 있거든."


그날 저녁, 나는 알마가 준 슬리퍼를 들고 아버지의 집으로 향했다. 마지막으로 사과도 하고 동생 얘기도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차마 문을 두드리지 못하고 주변만 배회했다. 집안에 개를 키우지 않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불 켜진 창문 안으로 아버지와 사야코가 식탁에 앉아 웃는 모습이 보였다. 사야코의 수줍은 표정, 아버지의 장난기 가득한 웃음. 그 모습을 본 나는 도저히 문을 두드릴 수가 없었다. 나만 바라보고 살다 무책임하게 떠난 엄마보다는, 무책임하게 굴어도 좋으니 살아만 있으면 다행이다 싶었다. 내심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딘가에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 유리창 너머, '브라질표 아버지'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해가 뜨지 않은 이른 새벽, 인천공항에 동생이 마중을 나왔다. 아버지를 한 번도 보지 못한 동생의 눈에 호기심이 서려 있었다. 기운 빠진 목소리로 아버지와 싸우고 나온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녀석은 얕은 한숨을 쉬었다. 훈훈한 혈육 상봉 스토리를 기대했던 걸까. 차 안에서 우린 한동안 우울한 음소거 상태로 앉아 있었다. 침묵 끝에 동생이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누나가 싫다면 나도 싫어. 나는 괜찮아. 아버지 없어도, 안 봐도 돼. 그 사람이 먼저 연락해도 나는 이제 안 본다. 페북 끊고 인스타그램으로 옮기든지 해야지." "너는 너고, 나는 나지." "나는 무조건 누나 편이다. 누나가 아무리 잘못했어도 가족이니까 무조건 누나 편이라고." 엄마가 술에 취해 들어오는 날이면 "연아, 준아" 하고 우리를 부르던 때가 겹쳐졌다. 어느새 붉게 아침이 밝아 오고 있었다. 동생은 창업에 성공해 돈을 모으면 다음엔 꼭 함께 리우데자네이루 여행을 가자고 했다. 아버지와는 상관없는 브라질로 가자고.


정말로 아버지와 상관없는 브라질을 갈 수 있을까. 나는 알마에게 받은 핑크색 슬리퍼를 동생에게 내밀었다. "브라질 슬리퍼는 하바이아나스면 된다니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