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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체 Apr 25. 2024

떨어질 운(隕)

  회색으로 표시된 그레이 라인은 우리나라 1호선처럼 주로 낙후된 지역을 다닌다. 상습적 정체는 물론 숫제 안 다닐 때도 있어 시간 맞추기가 늘 불안했는데 오늘따라 별나게 일찍 도착했다.    

 

 지하철이 어느새 브루클린 브리지를 지나고 있다. 브루클린 브리지는 관광객들의 명소이지만 나는 그곳에 가보질 못했다. 미챌이 혼자서 브루클린 브리지를 건너면 영원히 홀로 된다고 말한 게 찜찜해서이다. 미챌의 말은 언제나 못 미덥지만 나는 번번이 그의 말을 듣곤 했다. 미챌은 1년 전 햄버거 가게 앞에서 처음 만났다. 매디슨 스퀘어 파크 한가운데에 있는 가게에서 길게 줄을 서고 있는데 내게 한국인이냐며 말을 걸며 접근했다. 미챌은 자연스럽게 새치기를 한 셈이었고 나는 같은 한국인이라는 반가움이 있었다. 우리는 같은 테이블에 앉아 햄버거를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미챌은 이 년 전 한국에서 미군을 만나 결혼했는데 남편은 현재 외국에 파병 간 상태라 혼자 뉴저지에서 지내고 있다고 하였다. 그 후로 우리는 만나서 온종일 거리를 가로 세로로 걸어 다니며 수다를 떨고 쇼핑을 했고 지치면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뉴욕 라이프를 즐겼다. 미챌은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현지인의 생활 정보를 알려 주었고. 좀 전에도 통화하면서 오늘은 ‘센츄리 21’이 할인을 많이 하니 가서 가보라고 권하였다. 그게 좀 우습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공항에서 나와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가 센추리 21로 가는 길 안내라니….


“뭐래니.”


 미챌은 ‘미친 거 아니야?’란 말 다음으로 ‘뭐래니’란 말을 자주 썼다. 그럴 때마다 나는 기분이 나빠져서 그를 한 대 때려주고 싶었지만, 오히려 그의 말버릇을 닮고 말았다.


 “진짜 내가 뭐래는 거니. 암튼 서울 도착하면 연락하자.”


  미친 거 아니야, 가 조금 바보 같은 느낌이 든다면 뭐래니는 좀 병신 같다. 그것도 뷰융신이라고 하는 것 같다.  하긴 바보나 병신이나 뷰융신이나.





 유니온스퀘어 역에서 옐로 라인으로 갈아탔다. 브루클린에 위치한 디캡 애비뉴에서 로어 맨해튼의 풀톤 스트리트로 가는 길은 여러 방법이 있다. 내가 택한 방법은 잘못된 선택은 아니었지만 나은 선택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냥 어쩌다 그렇게 다니다 보니 습관이 되어버렸다.


옐로 라인의 지하철은 비교적 신형 같은 데 의자를 뷰융신같이 배열해 놓았다. 창가에 붙은 장형 의자는 별도이고 마주 보는 4인석 의자도 심어놨다가 하는 등 좌우로 길고 짧게 좌석을 배열하며 다양성을 과시했다.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려 함인지 공간 활용을 높이고자 함인지 의도를 알 수가 없다. 


샛노란 의자에 앉으니 건너편으로 남성 커플의 뒤통수가 보였다. 순간 마주 보며 앉는 게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 이렇게 좌석 배치를 한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며칠 전 엄마와 통화하면서 다음 주에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말했더니 뜻하지 않게 정색을 하였다. 최근 북한이 발작하여 한국 상황이 불안하니 미국에 조금 더 있거나 될 수 있으면 더 오래 있다 오면 좋겠다고 말하는 거였다. 엄마의 염려는 북한이 도발할 때마다 비상식량을 사두라고 했던 할머니의 말과 크게 다르지 않게 들렸다.


 “됐고, 뭐 필요한 건 없고?”

 “없어. 없어. 돈 없는데 뭘…. 장지갑이나 장갑이나 사 오던지.”

  “둘 중에 정확하게 필요한 게 뭔데?”

  "아니야. 아니야. 둘 다 필요 없어. 신경 쓰지 마라.”


전화를 허둥지둥 끊은 걸 보니 둘 다 필요한 모양이었다.


뉴욕에 머물면서 돈 쓰는 영어만 늘었다. 매일같이 쇼핑만 했음에도 아직도 살 게 너무 많았다. 지엔씨에서 영양제도 사고, 듀앤리드에서는 감기약도 잔뜩 샀다. 유니온스퀘어에 있는 디에스더블유에서 신발도 사고 세포라에서 국내에 입점하지 않은 화장품도 샀다. 특이해서 사고 싸서 사고 한국에 없다는 명목으로. 사실 인지 부조화에 걸렸을 뿐 꼭 필요한 것들도 아니었다. 


나는 엄마의 장지갑이나 장갑이나라고 한 말이 마음에 걸려 미챌이 알려준 센츄리 21에 들러야겠다 싶었다. 이런저런 쇼핑 목록을 생각하느라 그랬는지 앞에 노인이 서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딴생각을 하다 보면 시간이 소리 없이 점핑하는 기분이 들어 조금 억울할 때가 있다. 내가 인지하지 못한 짧은 동안 뭔가를 놓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나는 그놈의 예의 바른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러자 노인은 괜찮다는 제스처를 보였고 한술 더 떠 팔로 자신의 알통을 과시하는 포즈를 취하며 말했다. 


  “아엠 맨.”


오후 두 시를 조금 넘긴 한가한 시간대라 그런지 사람들 복장이나 표정이 유독 느슨해 보였다. 느슨한 것과 나른한 것의 구분이 모호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찰나, 길게 늘어선 의자에 앉아있던 덩치 큰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더니 갑자기 눈을 희번덕거리며 천장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다. 꼬락서니를 보니 무슨 예수 천국 불신 지옥 같은 얘기라도 하려나 싶었다. 도시란 곳은 어디를 가나 해괴한 사람들로 가득하여 말도 안 되는 생쇼를 하는 인간들이 수두룩한데 뉴욕에는 그걸 또 속아주는 사람들이 차고 넘쳤다. 그는 기어코 살충제를 맞고 쓰러진 해충처럼 빙글빙글 돌다가 바닥에 쿵 하고 납작하게 엎어졌다. 놀란 소리와 함께 몇몇 사람들이 그의 앞으로 다가갔고 누군가는 비상벨을 눌렀다. 쓰러진 남자는 흰자위를 반달처럼 보이며 침을 흘리고 있었다.  중학교 때도 그와 비슷한 증상을 지닌 반 친구가 있었다. 그 애의 발작이 시작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브래지어 끈과 허리띠를 풀어줬었다. 막대 같은 것으로 그녀의 혀가 말리지 않게 고정해 두기도 했다. 나는 그 애가 왜 그런 병을 앓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아무도 그 애에게 묻지 못했고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다. 나는 점차 어디에나 그런 증상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은 특별한 소수에게 주어진 재수 없는 벌점 같은 거로 생각하였다. 그렇게 운이 나쁜 사람은 세계 곳곳에 있었다. 


누워있는 남자의 게거품은 멈출 줄 몰랐다. 그의 뇌가 부글부글 분노를 삭이는 동안 열차는 완전히 정지했다. 혼잡을 막기 위함인지 개폐문은 열리지 않았다. 열차는 터널 초입에 머리만 집어넣은 채 멈춰 있었다. 객실 내에 그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였다. 하루에 한두 명 이상은 간호사 복장을 한 채로 돌아다니던 사람들도 웬일인지 하나도 보이질 않았다. 언젠가 옥색 아니면 분홍 고무장갑 색의 바지 유니폼에 운동화 그리고 작은 색을 들고 다니던 그들의 정체를 두고 미챌에게 물었었다.


“뉴욕에는 왜 이렇게 간호사 복장 입고 돌아다니는 인간들이 많은 거지? 일종의 코스프레하는 부류들인가?”

“실제 간호사가 맞고요. 뉴욕은 워낙 위험한 도시라 간호사들은 전부 다 출퇴근 시 유니폼을 입고 다녀야 해. 그래야 위급할 때 알아보고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그러면 의사는?”

“의사는…. 뭐, 가운을 입고 돌아다닐 수는 없잖아?”


   브루클린의 전깃줄에 주렁주렁 매달린 신발이 마약 판매처 표식이든 죽은 사람들의 신발이든 사실을 확인할 수 없는 일들은 수도 없이 많았다. 이방인은 언제나 오해를 달고 사니까. 때가 되면 저절로 알게 되는 일도 있고 영영 몰라도 상관없이 살다 가면 그만이었다. 





약 십 분 정도가 지났을까. 남색 제복을 입은 건장한 경찰 네 명이 들것을 들고 왔다. 놀랍게도 그중 두 명은 여성이었다. 그들은 숙련된 로봇 같은 몸짓으로 쓰러진 남자를 들것에 실었고 한 손에 공평하게 무게를 나눠 들며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얼마 후 안내 방송이 나왔다. 창자 속에서 부패로 들끓다 나오는 거품 방귀처럼 지하철에서 들리는 모든 안내 방송은 불분명하게 들리는 특색을 지닌다. 몸에 좋지 않은 인간을 대량 폭식한 탓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방송을 들으며 나도 모르게 또 뭐래니,라고 혼잣말을 하고 말았다.


열차는 출발했지만, 자꾸 가다 서기를 반복했다. 배차 간격에 신경 쓰느라 그런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뉴욕의 열차는 항상 불안했다. 그런 불안감은 이제 면역이 돼서 익숙했다. 썩은 닭장 냄새. 탄광 같은 어두컴컴함. 정체성이 불분명한 사람들. 그런 불편함이 멋이 되기도 하는 곳. 그리고 잦은 고장은 감기보다 하찮게 느껴지던 곳이 뉴욕이다. 게다가 곳곳에 자리 잡은 말도 안 되는 예술가 코스프레는 표현의 자유보다는 지나치게 상업적인 냄새가 물씬 풍겼다. 그들은 아무거나 뚝딱거리고 아무렇게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재주를 부리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돈을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그것이 한국의 눈먼 사람 흉내를 내며 하모니카를 불거나 다리를 절뚝거리며 복사한 손 편지를 나눠주며 구걸하는 일보다는 예술가답긴 했지만 크게 달라 보이진 않았다.


열차의 상습적 정체에도 승객들은 누구도 동요하지 않았다. 대도시의 지하철이 오랜 역사를 자랑하듯 낡음을 훈장처럼 과시한 것을 겪은 나도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멋있는 것은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라고. 그래서 잠자코 있었다. 


한국은 지금 명절 준비로 한창일 것이다. 엄마는 차례도 그렇고 김장도 갈수록 의미 없고 힘들기만 하다고 늘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말하곤 어김없이 진행했다. 갑자기 돌아간다는 나 때문에 손이 더 바빠졌을 것이다. 어제 통화 때도 여덟 가지의 김치를 담갔다고 말했다. 나는 김치를 누가 먹는다고 여덟 가지씩 했느냐고 소리를 질렀다. 엄마에게 배추김치, 물김치, 오이김치, 백김치, 갓김치, 부추김치, 총각김치, 겉절이, 깍두기, 고들빼기 담근 얘기를 다 듣고 난 뒤 한숨을 쉬었다. 이어서 엄마는 큰일이라도 난 듯이 내가 좋아하는 고구마 줄기 김치를 빼먹었다고 말했다. 고구마 줄기가 먹기 딱 좋을 때인데,라고 말하며. 엄마가 해 준 고구마 줄기 김치는 딱 한 번 맛있다고 했던 기억밖에 없다. 그게 김치인 줄도 몰랐다. 사실 김치는 한 종류만 있어도 먹을까 말까인데. 


 나는 한식보다 뉴욕의 국적 불분명한 음식들과 커피를 사랑했다. 더욱이 뉴욕은 요가와 채식 위주 식습관이 유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웰빙 트렌드로 인해 좋다는 짓만 하고 다녔음에도 뉴욕의 공기는 내 안에서 역반응을 일으켰다. 이상하게 몸이 자꾸 말라갔다. 집에는 걱정할까 말도 못 하고 병원은 비싸서 갈 엄두를 못 냈다. 나의 증상을 미챌에게 말했더니 플러싱에 있는 중국인 침술사를 소개해 주었다. 


 침술사는 나의 맥박을 재고 눈알을 확인하더니 몇 가지 질문을 하였다. 침술사는 나더러 홈씩(homesick)이라고 하더니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집 나온 지 불과 2년밖에 안 되었는데 그렇게 고향이 그리웠었나?  나는 미국이 내 체질에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무엇을 먹어도 맛있고 어떤 옷을 입어도 미국의 배경색이 나를 근사하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뉴욕의 지저분한 거리조차 그럴듯해 보여서 좋았고. 미트 패킹에 있는 호텔 라운지에서 모히토를 마시며 건너편 건물 옥상의 프라이빗한 풀장에서 노니는 사람들을 선망하며 미국은 평등한 사회라고 믿고 지냈다. 간장에 밥을 비벼 먹는 것보다 쉬웠던 바질 페스토 소스에 버무린 파스타를 먹으며, 구운 연어 위에 데리야키 소스 하나만 뿌려 놓았는데도 대단한 맛인 양 감탄하면서. 꺼끌꺼끌한 질감의  호두 파이를 고급스러운 풍미라 여기며. 안젤리카 키친에서 두부 케이크를 먹으며 요가 센터에서 인헬 엑셀 호흡을 따라 하며 즐기던 나인데 그랬던 내가 향수병에 걸렸다니. 



열차에서 기다린 지 한 시간이 넘어갈 무렵 안내 방송과 함께 승무원이 핑크색의 띠지 같은 블록 티켓을 나눠 주면서 계속 기다리거나 내려서 버스를 타면 된다고 하였다. 좀 전의 쓰러진 흑인 남자만 문제가 있던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승객 대부분은 아무 말 없이 티켓을 받아 들고나갔다. 좁고 가파른 계단에 승객들이 일렬로 길게 늘어서 있는 게 보였다. 드문드문 앉아 있는 사람들은 조금 있다가 나가려는 건지 열차가 수리되길 기다리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체념도 아닌 무표정한 그들의 표정은 무기력에 가까워 보였다. 그렇다고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의 표정이 밝아 보였던 것은 아니다. 다들 하나같이 아무렴 어때,라는 식의 무연한 반응이었다. 


열차 안보다 밖은 훨씬 더 탁하고 습기로 가득했다. 계단을 오르기 전 비상벨 밑으로 금지 문구가 보였다. 기분 나쁘게 뉴욕에서 안 된다는 문구는 죄다 한국어 아니면 중국어로 쓰여있다. 자기들은 얼마나 잘하고 산다고. 갑자기 참던 화가 치밀었다. 


씩씩거리며 밖으로 나오니 하늘에서 뭔가 뚝뚝 비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어디선가 들리는 요란한 굉음은 정체를 알 길이 없었다. 점점 북, 장구, 징, 꽹과리 등 김치 종류와 다를 바 없는 타악기 소리가 내 귀를 자극적으로 건드렸다. 오색 옷을 입고 상모 돌리는 사람들 위로 불꽃같은 종이 가루가 휘날렸다. 아, 그랬지. 오늘 퍼레이드가 있을 예정이라고 존이 말했었지. 


조금 있으면 존의 행렬도 보일 것 같았다. 나는 두리번거리며 퍼레이드 행렬을 주시했다. 존은 나의 영어 선생이다. 미챌에게 개인 선생이 필요하다고 했더니 곧바로 그를 소개해 줬다. 미챌은 그를 오가다 만난 사이라고 하였다. 존은 머리 검은 미국인이다. 두 살 때 입양되었고 뉴욕에서 자라 그곳에서 줄곧 살고 있었다.  존은 외모와 어울리지 않게 한국어를 단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둥근 얼굴형에 바짝 깎은 민머리를 한 그는 두상이 유난히도 납작했다. 성격마저도 납작했다. 


  “오래 살았다고 영어가 느는 게 아니야. 눈치만 느는 거지. 그러다 보면 그게 는 건 줄 착각할 때가 있다니까.”


  미국에서 삼 년째 살고 있는 미챌이 영어는 놀이지 공부가 아니라고 하였다. 존도 그렇게 생각했던 것일까? 존을 보면 영어를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닌 연애를 하러 나온 사람처럼 보이기는 했다. 존은 무슨 이유 때문인지 부쩍 한국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그러나 나라고 한국에 대해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는 한국에 가보고 싶으냐는 나의 질문에 이제는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얼마 후에 열리는 한인 축제에 한인 입양아 자격으로 참석할 예정이라고 했다. 존은 그동안 협회에서 요청이 올 때마다 한 번도 나가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용기가 생겨 참석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더러 시간이 되면 구경하러 오라고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일부러 그를 보러 갈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존이 저기에 있었다. 일종의 동시성 현상 같은 것인가?




퍼레이드 행렬 뒤에는 검은 구름이 뭉게뭉게 솟아났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 행렬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이상하게 뭉클했다. 한아름 마트의 주인과 직원들이 손을 흔들었고 한인 참전 용사 행렬도 보였다. 그들에게 바짝 다가간 푸른 눈의 노인은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을 둔탁하게 두드리며 내가 한국전에 참전했었노라고 말하였다. 그의 눈가가 붉게 충혈되었고 함께 늙은 한인 노인들도 그를 향해 구부정해진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어디선가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뉴욕 거리는 사이렌 소리가 흔하게 들렸다. 하루에도 몇 번씩 틈만 나면 울렸다. 진짜로 울리는 때도 있고 가짜로 울릴 때도 있었다. 사이렌 소리는 진짜와 가짜를 떠나서 똑같은 소리가 나니까. 가끔은 경찰도 가짜처럼 보일 때가 있었다. 경찰이란 직책이 저렇게 무서울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찰은 유약한 뷰융신이 따로 없는데. 한국 경찰도 남녀구분 없이 체격이 같고 저렇게 짙은 남색 제복을 입히면 조금 무서워 보이려나. 


드디어 존이 보였다. 퍼레이드 행렬 중 존과 같이 입양된 사람들은 노예 시장에 끌려 온 것처럼 겁먹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고 있었다. 게다가 존은 영어를 한마디도 못 하는 사람처럼 수줍은 모습이었다. 그런 존을 보고 있으니 문득 누런 개가 떠올랐다. 한국에서 점을 보러 갔을 때 들은 얘기다. 나의 조상 중에 개로 환생한 예도 있다며 나를 비롯한 식구들 모두에게 개고기는 절대 먹으면 안 된다고 당부했었다. 아무래도 역술가의 말은 역설 같다. 사실은 조상 중에 나처럼 인간으로 환생한 개가 있던 게 아니었을까. 


 나는 존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존은 귀를 쫑긋 세운 채 소리의 방향을 찾지 못하고 두리번거리기만 했다. 존의 시선은 하늘로 향했다. 존에게 떠난다는 말도 하지 못했다. 미챌처럼 때마침 나도 한국에 갈 일이 있다고 따라오면 어쩌나 싶은 걱정도 있었고. 서운함이 구차해 일부러 말 안 한 것인데 이제야 후회가 됐다. 


 “존!~룩 앳 미 존!”


  그 순간 푸른 눈의 잘생긴 경찰이 내 앞으로 총을 겨누었다. 그는 강경한 어조로 내게 스톱, 이라고 말했다. 나는 습관적으로 뭐래니,라고 말하며 그러거나 말거나 제자리에서 껑충껑충 뛰어오르며 존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경찰은 내게 한 번 더 스톱이라고 외쳤다. 사이렌 소리는 점점 더 크게 들렸다. 

어디선가 엄청난 굉음이 들렸다. 그 순간 내 손에 나부끼던 분홍색 띠지가 날아갔다. 나는 푸른 물속 같은 하늘에 돌고래처럼 파란 비행기가 바닥을 향해 헤엄치는 모습을 보았다. 아! 뷰융신 하고 떨어지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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