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정화 부부는 열흘간의 유럽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관광이라기보다는 고행에 가까웠다. 정화는 아픈 동수를 휠체어에 태우고 다니는 일이 힘에 부쳤다. 돌아온 뒤에도 쉴 틈 없이 동수의 시중들기에 바빴다. 동수는 젊으나 늙으나 건강할 때나 아플 때나 한결같이 차가웠다. 그런데도 정화는 성 한번 내지 않고 동수의 까탈을 받아주었다. 정화가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강행한 이유는 그것이 동수의 살아생전 마지막 여행이겠거니 싶어서였다.
여행을 다녀온 뒤 정화는 못내 아쉬움이 남은 듯 부쩍 그곳을 그리워했다. 변덕스러운 공기 속 센강 변을 거닐던 때가 마치 익숙한 일상처럼 떠올랐다. 부쩍 우는 일도 늘었다. 마치 다한증처럼 눈가에 눈물이 배어 그칠 줄 몰랐다. 스페인의 달고 맛있는 디저트를 먹을 때도, 피렌체의 석양을 보면서도, 파리의 노천카페에서도 조금만 기분에 여백이 생기면 얼굴에 축축하고 연약한 자국들을 남겼다. 동행한 은퇴 간호사 동기들은 정화 부부의 각별한 애정을 입으로만 부러워했다.
여행 내내 동수는 고통을 호소하는 대신 허한 객기를 부리며 일행을 재촉했다. 자신이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소외당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동수는 점점 더 세상의 마지막 이방인 같은 모습으로 변해갔다. 턱 밑의 희끗희끗한 수염을 단 채 휠체어에 앉아 있는 그는, 마치 그에게만 특수하고 병약한 조명이 내리비추는 듯 기이해 보였다.
부부는 부쩍 과거를 파먹고 살았다. 입이 심심하듯 마음 한편이 허해졌던지 철 지난 사랑 이야기부터 자식들 얘기를 두서없이 뱉어냈다. "연주 어릴 때 꿈이 엄마 아빠랑 해외여행 가는 거랬는데 그 기집애 다 까먹었을 거야." "윤 박사는 일전에 통화한 이후로 연락 없었어?" "취업 준비하느라 바쁜 사람이잖아. 우리 챙길 틈이 어딨어. 지들끼리 잘 살면 됐지." "연주 시집보내고 연석이 취직하고 이제 좀 한갓지다 싶었는데 이렇게 되어서 좀 아쉽네." "요즘 암은 병도 아니야. 못 걸으니 조금 불편해서 그렇지." "그런데 사람이란 게 참 영물이지. 휠체어 타고 다니는 사람을 보면 불편해서 어째, 하면서 안쓰럽게만 봤는데 막상 내가 그러니 그래도 탈만 하네. 금세 적응이 됐나 봐." "아유, 그래 지금 그대로만 유지하면 좋겠수." "일전에 기도원 가서 기도발이 좀 먹힌 듯해.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니까."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동수는 날이 갈수록 얼굴이 부어올랐고 발음이 어눌해졌다. 며칠 전부터는 미세하게 손을 떨기 시작했다. 의사가 말하길 더는 심해지지 않을 거라 했지만 호전도 없을 거라 했다. 쉽게 죽지도, 낫지도 않을 거라고. 그러나 고통은 나날이 심하게 죄어왔다. 특히 밤이 되면 빈틈없는 통증으로 인해 분별없는 분노를 일삼아 여느 중증환자들처럼 똑같이 좌절하고 힘겹게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이면 정체 모를 그럴싸한 약과 즙을 마시며 또다시 살아갈 날의 희망을 품었고. 정화는 동수가 어떤 모습으로든 살아만 주면 감사할 일이라고 바랐다. 그러나 동수의 뒤치다꺼리에 제 몸은 버석버석한 나뭇잎처럼 가벼워지고 있는 것도 모르고 지냈다.
정화의 왼쪽 얼굴에는 치유되지 않은 상흔이 남아있었다. 두 돌이 채 안 되었을 무렵, 시골집 안방에 있던 호롱불에 얼굴을 크게 덴 까닭이다. 눈을 다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라 했지만 엄마 말련은 딸의 얼굴에 평생 남을 흉터를 보며 죄책감으로 일생을 살았다. 고로, 다른 자식들과의 차별에 무게를 둘 수밖에 없었다. 정화의 네 살 위 언니 정순은 물론 고작 한 살 위인 둘째 정남도 모든 것을 정화에게 양보해야 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막내 정미도 똑같은 희생을 담보로 잡혀야 했고. 그렇게 말련의 무기력한 죄책감은 사랑보다 힘이 강해서 죽는 날까지 헌신적인 얼음처럼 정화에게 녹아내렸다.
엄마가 미안해할수록 정화의 좌절과 콤플렉스는 비례해서 커졌다. 자아가 강해질 무렵 정화는 긴 머리카락으로 상처를 가리고, 두꺼운 뿔테 안경 뒤로 숨었다. 오로지 교회라는 좁은 울타리 안에서만 안전함을 느꼈다. 특별히 모난 성격은 아니었으나, 평생 받아만 온 탓에 소유에 대한 집착이 기형적으로 자라났다. 사춘기가 찾아오자 정화는 탈선하는 대신 점점 더 외부에 인색해졌다. 말련은 어려운 형편에도 정화가 원하는 대학에 보내주었다. 다른 자매들이 별 볼 일 없는 학벌로 공부를 마친 것에 비교하면 정화를 위해 대학 뒷바라지를 한 것은 묵직한 차별이 분명했다.
정화는 본디 의사가 꿈이었다. 자신처럼 흉터로 고통받는 이들을 구하겠다는 소망이었으나, 간절함이 재능을 이기지는 못했다. 간호대를 졸업하고 외지의 보건소 공무원이 되었음에도, 흉터가 만든 고독의 깊이는 메워지지 않았다.
숱하게 고통을 재생하며 평생 홀로 살 것처럼 굴던 정화는 서른을 한 해 앞두고 동수를 만나 결혼하였다. 홀어머니 아래서 식구라고는 단둘뿐인데도 지겹도록 가난을 면치 못했던, 윗동네 '거꾸리 엄마'의 아들 임동수. 동수가 정화에게 매달린 이유를 주변에선 좀처럼 이해하지 못했고 마찬가지로 신뢰할 수 없던 정화는 동수의 맹렬한 구애에 활기찬 거부를 하며 좀처럼 받아주지 않았다. 어쩐지 믿어지지 않았고 꿈만 같았고, 간절히 원할수록 이루어지지 않을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교회에서 처음 인연을 맺은 둘은 추위가 다가오는 어느 날, 돌발적인 사고처럼 하룻밤을 함께 보낸 후 결혼에 이르게 되었다. 당시에 동수는 간헐적으로 목수 일을 보는 것 외에는 내세울 만한 직업이 없었지만, 멋쟁이로는 통했다. 빼빼하고 가무잡잡하게 마른 몸에 타고난 색 감각을 지닌 덕분에 값싼 옷도 그럴듯하게 잘 입고 다녀서 동네에서 제법 인기가 좋았다. 정화는 그런 동수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감사했다. 결혼 후 동수가 사업 자금 명목으로 정화에게 돈을 요구해도, 첫째 연주를 낳을 무렵 바람을 피울 때도, 연석의 출생 후 몇 년 동안 가출 후 돌아오지 않을 때도 정화는 모욕이나 수치심 따위는 깡그리 잊고 오직 동수를 위해 헌신했다. 사랑이라기보다는 오기였다.
동수의 몰락은 뜬금없이 찾아왔다. 딸 연주에게 선물할 선반을 만들다가 의자에서 툭, 하고 떨어졌다. 단순 골절인 줄 알았으나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 피가 썩고 있었다. 동수는 치료를 거부했으나 정화의 강요로 수술을 받았고, 기적처럼 회복되자 기도원에 매달렸다. 그러나 운명은 얄궂은 타이밍에 발을 걸었다. 기도원에서 돌아오던 길, 동수는 가벼운 접촉 사고를 냈다. 평생 무사고였던 그는 자존심에 흠집이 나자 트럭 기사의 멱살을 잡았다. 정화마저 옆에서 앙칼지게 거들자, 격분한 기사가 동수를 밀쳤다. 그 한 번의 밀침으로 동수는 다시는 일어서지 못했다. 말기 암 환자였던 동수는 바닥에 나동그라졌고, 고소를 하네 마네 악을 쓰는 동안 정화는 수척해졌고 동수는 괴팍해졌다. 걷지 못하게 되자 욕심은 다리 대신 머리로 올라갔다. "회사에서 보내주는 부부 동반 여행, 죽어도 가야지. 가서 마지막 추억이라도 남겨야지." 그것은 여행이 아니라, 생의 마지막 증명사진을 찍으러 가는 길이었다.
여행 준비는 피난 행렬을 방불케 했다. 약과 주사기, 휠체어만으로도 트렁크가 터질 듯했다. "피난 가나? 커피포트는 왜 챙겨?" "당신 차 마셔야지." "멋 부리다 얼어 죽겠네. 모자는 왜 다섯 개나 가져가?" "냅둬요. 내 멋에 사니까." 정화는 여행 첫날부터 불길하게 분주했다. 짐을 나르고 휠체어를 끄느라 혼비백산인 정화에게 동수는 확성기처럼 고함을 질러댔다. 동수는 연신 호통을 치고 있었고 정화는 혼비백산이 되어 이리 뛰고 저리 뛰느라 실수를 남발했다. 보다 못한 동료들도 조금씩 수고를 덜어주었다. 다들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일행 중 환자가 있다는 것은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었다.
정화가 체력적 한계에 다다를 무렵 마지막 관광지로는 크로아티아가 남아 있었다. 파리에서 기차로 장시간을 가야 했기에 준비를 단단히 해야 했다. 그녀는 아무리 피곤하고 시간이 촉박해도 제일 먼저 일어나서 화장했다. 화장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족히 두 시간이 너머 걸렸다. 눈을 뜨자마자 얼굴이 벗겨질 정도로 꼼꼼하게 세안을 한 후 스킨을 질척하게 얼굴에 발랐다. 고농축 에센스를 그 위에 덧바른 후 수분 크림을 두껍게 발랐다. 손끝으로 흡수가 잘되게 톡톡톡 얼마 동안 두드리고 나면 파운데이션을 스펀지로 곱게 펴 발랐다. 파운데이션 하나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다음으로 붉은 기를 잡아주는 베이스를 바른 후 피부톤을 고정하는 픽서를 발라야 했다. 점성이 강하면서 강력한 커버력을 보장하는 컨실러를 흉터 부분에 세밀하게 메워주는 일도 빼먹지 않았다. 그와 같은 화장 습관은 수십 년 동안 숱하게 반복해 왔던 일이지만, 아무리 제품이 발달하고 기술이 발달해도 속도는 줄지 않았다. 그녀는 점점 더 많은 제품을 얼굴에 발랐고 점점 더 화장하는 데 오랜 시간을 할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굴의 못마땅함은 거울을 볼 때마다 느끼는 감정이긴 했다.
지옥 같은 여행에서 돌아온 지 일주일째. 4월의 봄날이었으나 바람은 겨울 끝자락처럼 매서웠다. "추워. 난로 좀 피워." 새벽부터 동수가 보채기 시작했다. "아직 이삿짐도 안 풀었는데 무슨 난로야." "얼어 죽겠다고! 오한이 든단 말이야!" 정화는 귀찮음이 덕지덕지 묻은 손으로 라이터를 켰다. 벽난로 주변에는 이사 갈 짐들이 시한폭탄처럼 쌓여 있었다. 참나무 위에 종이 뭉치를 던져 넣고 불을 붙였다. 매운 연기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 순간이었다. 열린 문틈으로 동풍이 들이닥쳤다. 불길은 기다렸다는 듯 혀를 날름거렸다. 순식간에 불꽃이 종이에서 커튼으로, 커튼에서 이삿짐으로 옮겨붙었다. 화마(火魔)는 삽시간에 집안을 집어삼켰다. "불이야! 으악!" 동수의 비명보다 먼저, 불길이 정화의 얼굴을 세차게 훑고 지나갔다.뜨거움. 두 살 때 겪었던 그 원초적인 공포가 환영처럼 되살아났다. 정화는 타들어 가는 얼굴을 감싸 쥐지도 못한 채 동수의 휠체어를 밀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동수를 마당에 내팽개치듯 내려놓자마자, 정화는 다시 불타는 집 안으로 뛰어들려 했다. "안 돼! 내 짐! 연주 줄 선물!" "여보! 가지 마!" 동수의 울부짖음은 들리지 않았다. 정화는 병적으로 집기들을 빼내려 안간힘을 썼다. 귀걸이 하나, 옷가지 하나. 평생 채우지 못한 욕망을 불길 속에서 건져내려는 듯."그만하세요!" 구조대원이 정화를 낚아챘을 때, 그녀는 털썩 주저앉았다. 집은 이미 거대한 소각장이 되어 있었다. 정화가 평생 감추려 했던 흉터 위에, 더 크고 붉은 새로운 흉터가 내려앉고 있었다.
정화는 화상 전문 병원으로, 동수는 요양 병원으로 흩어졌다. 정화의 얼굴은 붕대로 칭칭 감겨 거대한 알처럼 변해 있었다. 눈과 입만 간신히 뚫린 채, 진물이 흐르는 틈새를 거즈로 꾹꾹 눌러야 했다. 가족들이 병실을 찾았다. "연석이는?" "회사 간 애를 왜 불러. 피곤하게." 정화는 붕대 속에서 웅얼거렸다. 자매들은 혀를 찼다. "집이 홀랑 탔는데도 자식 챙기는 건 여전하네. 업보다, 업보." 언니들의 목소리는 붕대 너머로 웅웅거리며 흩어졌다.
그나마 괜찮다는 말을 들은 탓인지 연석은 갓 입사한 회사 일을 핑계로 곧바로 오지 않았고, 연주는 임신 초기라 조심해야 한다며 병원에 오길 꺼려서 대신 사위가 왔다. 정화는 눈만 뚫린 상태로 붕대가 감겨 있었는데 눈 주위에는 진물이 나와 거즈로 그곳을 계속 누르고 있었다. 돌봐 줄 사람이 없던 동수는 집 근처에 있는 요양 병원에 강제 입원을 해두었다. 정화는 할 말을 잃은 듯 연신 앓는 소리만 내었다. 그 와중에도 사위는 유별나게 챙겼다. "윤 박사 여기로 앉아. 왜 다리 아프게 서 있어?" 정남은 앉던 자리를 조카사위에게 내줬다. 그는 괜찮다며 거부했지만, 정남은 정화의 불편한 시선에 더는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소식을 들은 외종질들은 시차를 두고 방문하여 정화를 걱정했다.
퇴원 후, 정화는 불탄 집터로 돌아갔다. 까만 재 덩어리로 변한 집을 보며 정화는 어린아이처럼 오열했다. 호출받은 자매들이 투덜거리며 청소를 도왔다. "어머, 이거 봐. 귀걸이 한 쌍은 멀쩡하네. 내가 챙겨야지." 정미가 전리품을 챙기듯 재 속에서 귀걸이를 주워 올렸다. "얼른 숨겨. 저 욕심쟁이가 보면 당장 내놓으라고 할 걸. 어휴, 결국 다 재가 될 것을 뭐 그리 악착같이 모았는지." 정남의 비아냥이 정화의 등에 꽂혔지만, 정화는 들리지 않는 척 재가 된 세간살이를 뒤적거렸다.
그 후로 정화는 변했다. 아니, 더 정화다워졌다. 화상 치료 후 급격한 우울증에 빠진 그녀는 동수를 찾지 않았다. 동수가 요양원에서 집에 가고 싶다고 애원해도, 자식들이 무심해도, 정화는 스스로 만든 감옥에 갇혀 지냈다. 언니 정남은 딸에게 하소연했다. "그 성격 어디 가겠니. 힘들게 병문안 갔더니 고맙다는 말은커녕 일이나 거들라고 떵떵거리는 꼴이라니. 난 이제 손 뗐다. 저 화상(火傷) 덩어리, 죽든 말든." 가족들의 발길도 끊겼다. 정화는 인적 드문 산중, 재개발만 기다리는 낡은 아파트로 이사했다. 머리카락은 숭숭 빠져 하얗게 셌고, 왼쪽 얼굴은 붉은 지도 위에 짓무른 늪처럼 흉측해졌다.
정화는 눈 덮인 산길을 휘청이며 올랐다. 센강 변의 햇살. 파란 하늘. 비둘기를 쫓던 평화로운 오후. 기억은 흉터처럼 왜곡되어 있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자신이 행복했다고, 신에게 감사를 드렸다고 믿어버렸다. 고통스러웠던 전쟁 같은 여행은, 햇살 가득한 성지순례로 덧칠되었다. 마치 그녀의 얼굴을 덮었던 두꺼운 파운데이션처럼. "엄마는 왜 나를 똑바로 보지 못했을까." 정화는 죽은 말련을 생각하며 이유 모를 분노에 치를 떨다가도, 밤이면 남몰래 오열했다.
동수의 마지막은 허무했다. 응급실에 실려 온 동수는 앙상한 뼈만 남은 채, 눈을 부릅뜨고 입을 떡 벌리고 숨을 거뒀다. 할 말이, 원망이 아직 많이 남아있는 표정이었다. 정화는 울지 않았다. 덤덤한 손길로 동수의 벌어진 턱을 밀어 올렸다. "미안해. 내가 당신 빨리 가길 바라서 하나님이 데려가신 것 같아. 미안해, 연주 아빠." 그것은 사과가 아니라, 지독한 고백이었다. 장례식은 초라했다. 자매들은 핑계를 대며 늦게 왔고, 정화는 동수의 유골을 집이 불탄 자리, 재만 남은 흙 위에 뿌렸다. 수목장이라 했지만,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개가 죽어도 저렇게 묻지는 않겠네." "비 오면 흔적도 없이 씻겨 내려가겠지." 하지만 미망인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정화가 울지 않으니 누구도 소리 내어 울지 못했다.
새로 부임한 치유 교회 목사가 흰 목도리에 눈부신 백구두를 신고 설교를 했다. "고인은 천국에 입성하셨습니다." 그 옆에는 목사 사모가 서 있었다. 화장기 없는 얼굴이었지만, 입술에 새긴 붉은 문신만이 핏자국처럼 선명했다. 정화는 붕대 감은 얼굴로, 그 지워지지 않는 붉은 입술을 뚫어지라 쳐다보았다. 화창한 봄날의 햇살이 그녀의 일그러진 얼굴 위로, 화상(火傷)처럼 뜨겁게 쏟아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