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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체 May 13. 2024

봄날의 화상


며칠 전 정화 부부는 열흘간의 유럽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힘들고 유난스러운 관광이었다. 정화는 아픈 동수를 휠체어에 태우고 다니는 일이 힘에 부쳤다. 돌아온 뒤에도 쉴 틈 없이 동수의 시중들기에 바빴다. 동수는 젊으나 늙으나 건강할 때나 아플 때나 한결같이 차가웠다. 그런데도 정화는 성 한번 내지 않고 동수의 까탈을 받아주었다.

정화가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강행한 이유는 동수의 살아생전 마지막 여행이겠거니 싶어서였다.



여행을 다녀온 뒤 정화는 못내 아쉬움이 남은 듯 부쩍 그곳을 그리워했다. 변덕스러운 공기 속 센강 변을 거닐던 때가 마치 익숙한 일상처럼 떠올랐다. 부쩍 우는 일도 늘었다. 다한증처럼 눈가에 눈물이 배어 그칠 줄 몰랐다. 스페인의 달고 맛있는 디저트를 먹을 때도, 피렌체의 석양을 보면서도, 파리의 노천카페에서도 조금만 기분에 여백이 생기면 얼굴에 축축하고 연약한 자국들을 남겼다. 동행한 은퇴간호사 동기들은 정화 부부의 각별한 애정을 입으로만 부러워했다.

여행 기간 내내 동수는 고통의 호소 대신 허한 객기를 부리며 재촉을 일삼았다. 자신이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소외를 당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동수는 점점 더 세상의 마지막 이방인 같은 모습처럼 변해갔다. 턱 밑의 희끗희끗한 수염을 달고서 부조리한 순간에 우연히 어느 곳에 다다른 뭐랄까 마치 그에게만 특수하고 병약한 햇살이 내리비추는 것처럼 보였다.




부부는 부쩍 과거를 회상하기 바빴다. 입이 심심하듯 마음 한편이 허해졌던지 철 지난 사랑 이야기부터 자식들 얘기가 두서없이 마구 튀어나왔다.


“연주 어릴 때 꿈이 엄마 아빠랑 해외여행 가는 거랬는데 기집애 다 까먹었을 거야.”


“윤 박사는 일전에 통화한 이후로 연락 없었어?”


“취업 준비하느라 바쁜 사람이잖아. 우리 챙길 틈이 어딨어. 지들끼리 잘 살면 됐지.”


 “연주 시집보내고 연석이 취직하고 이제 좀 한갓지다 싶었는데 이렇게 되어서 좀 아쉽네.”


“요즘 암은 병도 아니야. 못 걸으니 조금 불편해서 그렇지.”


“그런데 사람이란 게 참 영물이지. 휠체어 타고 다니는 사람을 보면 불편해서 어째, 하면서 안쓰럽게만 봤는데 막상 내가 그러니 그래도 탈만 하네. 금세 적응이 됐나 봐.”


 “아유, 그래 지금 그대로만 유지하면 좋겠수.”


“일전에 기도원 가서 기도빨이 좀 먹힌 듯해.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니까.”


동수는 날이 갈수록 얼굴이 몰라보게 부었고 발음이 어눌해졌다. 며칠 전부터는 미세하게 손을 떨기 시작했다. 의사가 말하길 더는 심해지지 않을 거라 했지만 호전도 없을 거라 했다. 쉽게 죽지도, 낫지도 않을 거라고. 그러나 고통은 나날이 심하게 죄어왔다. 특히 밤이 되면 빈틈없는 통증으로 인해 분별없는 분노를 일삼아 여느 중증환자들처럼 똑같이 좌절하고 힘겹게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이면 정체 모를 그럴싸한 약과 즙을 마시며 또다시 살아갈 날의 희망을 품었고.


정화는 동수가 어떤 모습으로든 살아만 주면 감사할 일이라고 바랐다. 그러나 동수의 뒤치다꺼리에 제 몸은 버석버석한 나뭇잎처럼 가벼워지고 있는 것도 모르고 지냈다.


정화가 체력적 한계에 다다를 무렵 마지막 관광지로는 크로아티아가 남아 있었다. 파리에서 기차로 장시간을 가야 했기에 준비를 단단히 해야 했다. 그녀는 아무리 피곤하고 시간이 촉박해도 제일 먼저 일어나서 화장했다. 화장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족히 두 시간이 너머 걸렸다. 눈을 뜨자마자 얼굴이 벗겨질 정도로 꼼꼼하게 세안을 한 후 스킨을 질척하게 얼굴에 발랐다. 고농축 에센스를 그 위에 덧바른 후 수분 크림을 두껍게 발랐다. 손끝으로 흡수가 잘되게 톡톡톡 얼마 동안 두드리고 나면 파운데이션을 스펀지로 곱게 펴 발랐다. 파운데이션 하나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다음으로 붉은 기를 잡아주는 베이스를 바른 후 피부톤을 고정하는 픽서를 발라야 했다. 점성이 강하면서 강력한 커버력을 보장하는 컨실러를 흉터 부분에 세밀하게 메워주는 일도 빼먹지 않았다. 그와 같은 화장 습관은 수십 년 동안 숱하게 반복해 왔던 일이지만, 아무리 제품이 발달하고 기술이 발달해도 속도는 줄지 않았다.


그녀는 점점 더 많은 제품을 얼굴에 발랐고 점점 더 화장하는 데 오랜 시간을 할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굴의 못마땅함은 거울을 볼 때마다 느끼는 감정이긴 했다.



정화의 좌면상에는 치유될 수 없는 상흔이 남아있다. 정화가 두 돌이 채 못 되었을 무렵 시골집 안방에 있던 호롱불에 얼굴을 크게 덴 까닭이다. 그나마 눈을 다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고 이후 그녀의 엄마 말련은 딸의 얼굴에 평생 남을 흉터를 보며 죄책감으로 일생을 살았다. 고로, 다른 자식들과의 차별에 무게를 둘 수밖에 없었다. 정화의 네 살 위 언니 정순은 물론 고작 한 살 위인 둘째 정남도 모든 것을 정화에게 양보해야 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막내 정미도 똑같은 희생을 담보로 잡혀야 했고. 그렇게 말련의 무기력한 죄책감은 사랑보다 힘이 강해서 죽는 날까지 헌신적인 얼음처럼 정화에게 녹아내렸다.


그러나 말련이 정화에게 미안해할수록 정화의 좌절과 콤플렉스는 심해져 갔다.



자아가 강해질 무렵 정화는 한쪽으로 길게 늘어뜨린 단발머리를 하고 최대한 상처 부위를 가릴 수 있게 애를 썼다. 두껍고 답답해 보이는 뿔테 안경을 쓰는 것도 빼먹지 않았다. 학창 시절 정화는 소수의 친구하고만 좁게 교제를 하였고 신앙심으로 모든 걸 의존하다시피 했다. 무슨 까닭인지 정화의 성격이 특별히 모난 구석은 없었지만 말련의 헌신으로 받는 것에 익숙했고 소유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다.



누구든 외모 콤플렉스가 정점이 된다는 사춘기가 찾아오자 정화는 탈선하는 대신 점점 더 외부에 인색해졌다.

 


말련은 어려운 형편에도 정화가 원하는 대학에 보내주었다. 다른 자매들이 별 볼 일 없는 학벌로 공부를 마친 것에 비교하면 정화를 위해 대학 뒷바라지를 한 것은 묵직한 차별이 분명했다.

정화는 본디 의사가 꿈이었다. 자신처럼 몹쓸 흉터 때문에 고통받는 환자를 치료해 주는 것을 소명으로 삼고자 했다. 그러나 간절한 만큼 치열하게 공부하진 못했다. 정화는 간호대를 졸업 후 외지의 소외계층을 돕는 파견 간호 공무원이 되었다. 앞날이 보장된 든든한 직장을 갖고 원하는 바를 소극적으로 이루게 되었음에도 콤플렉스로 인한 고독감을 극복하지 못했다.



 숱하게 고통을 재생하며 평생 홀로 살 것처럼 굴던 정화는 서른을 한 해 앞두고 동수를 만나 결혼하였다. 홀어머니 아래서 식구라고는 단둘뿐인데도 지겹도록 가난을 면치 못했던 윗동네 거꾸리 엄마로 불리던 그분의 아들 임동수. 동수가 정화에게 매달린 이유를 주변에선 좀처럼 이해하지 못했고 마찬가지로 신뢰할 수 없던 정화는 동수의 맹렬한 구애에 활기찬 거부를 하며 좀처럼 받아주지 않았다. 어쩐지 믿어지지 않았고 꿈만 같았고 간절히 원할수록 이루어지지 않을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교회에서 처음 인연을 맺은 둘은 추위가 다가오는 어느 날, 돌발적인 하룻밤을 함께 보낸 후 결혼에 이르게 되었다. 당시에 동수는 간헐적으로 목수 일을 보는 것 외에는 내세울 만한 직업이 없었지만, 멋쟁이로는 통했다. 빼빼하고 가무잡잡하게 마른 몸에 타고난 색 감각을 지닌 덕분에 값싼 옷도 그럴듯하게 잘 입고 다녀서 동네에서 제법 인기가 좋았다. 정화는 그런 동수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감사했다. 결혼 후 동수가 사업 자금 명목으로 정화에게 돈을 요구해도, 첫째 연주를 낳을 무렵 바람을 피울 때도, 연석의 출생 후 몇 년 동안 가출 후 돌아오지 않을 때도 정화는 모욕이나 수치심 따위는 깡그리 잊고 오직 동수를 위해 헌신했다.

 


  연주가 서른을 앞두고 시집가기 얼마 전 동수는 딸에게 가치 있는 뭐라도 해줘야겠다며 나섰고 연주가 요청한 거실 벽에 놓일 선반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거의 완성될 때 즈음 동수는 올라선 의자에서 힘없이 툭 하고 떨어졌다. 동수는 단순 골절로 여겨 한의원만 몇 번 드나들었으나 좀처럼 낫지 않았고 급기야는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

동수의 몸속에 피가 썩고 있었다. 치료하기에는 체력적 부담이 있겠다는 염려를 붙잡으며 동수는 치료를 거부했다. 그러나 일말의 노력이라도 해보겠다며 정화는 항암치료를 하자고 강력히 요구했다. 결국, 동수는 수술을 받았고 회복 기미가 보이자 이후에는 기도원에 열심히 다녔다.


코 밑이 거뭇해지는 바람이 부는 어느 날 동수는 기도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가벼운 접촉 사고를 냈다. 여태껏 한 번도 없던 일인데 심신이 나약해 방향 감각을 잃었는지 앞차를 들이받고 말았다. 평생 무사고 운전을 하던 동수는 좀처럼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되려 언성을 높여 소리를 질렀다. 트럭에서 내려온 운전사를 본 동수는 참지 않고 내려와 그의 멱살을 붙잡고 싸움을 걸었다. 둘 사이에 고성이 오갔고 정화는 그런 동수를 말리기는커녕 옆에서 앙칼진 목소리로 상대방을 함께 몰아붙였다. 약이 바짝 오른 트럭 기사는 순간 동수를 떠밀었다. 아차 싶기도 전에 동수는 바닥에 나동그라지더니 몸을 전혀 가누지 못했다. 나중에 자신이 말기 암 환자를 건드렸다는 사실을 안 트럭 기사는 비탄에 빠졌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불운한 노을이 지고 짙은 저녁이 찾아왔을 때 동수는 성질을 누그러뜨리지 못하고 그에게 고소 드립을 날렸다. 세상에 적의를 드러낼수록 정화는 나날이 수척해지고 동수는 나날이 괴팍해졌다. 그 뒤부터 동수는 걸을 수 없게 되었고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더욱 세상을 촘촘히 욕심껏 살고 싶었던지 둘의 욕심은 끝없이 치올랐다.


“회사에서 부부동반 해외여행을 공짜로 보내준다는데.”


“가야지.”


“괜찮겠어?”


“죽어도 가야지. 가서 마지막으로 추억이나 남겨야지.”


마지막 여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정화는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정화는 여행을 앞두고 정리할 일이 너무 많아 시간을 사고 싶을 정도로 정신이 없는 상태였다. 퇴직일에 맞추어 사택으로 쓰던 집을 비워주고 새로 계약한 아파트로 이사도 해야 해서 이삿짐 싸기도 벅찼다. 그러나 그녀는 무언가에 홀린 듯 여행 갈 생각에 잔뜩 들떠 있기만 했다.


여행 채비로 동수의 약과 주사용품을 챙기는 데만 해도 짐이 넘쳤다. 짐을 줄이고 줄였는데도 트렁크가 미어터질 정도로 꽉꽉 들어찼다.


“가기도 전에 몸살 날 것 같네.”


“무슨 짐을 그리 많이 챙겼어. 더 줄여봐. 이건 또 뭐야. 커피포트는 왜 챙기고 그래.”


“당신 차 좋아하잖아. 수시로 마시려면.”


“이 사람이 지금 피난 가나. 그런 거 다 호텔에 있는 거 몰라?”


정화는 가져가는 모자만 해도 다섯 개가 넘었다.


“그냥 간소하게 챙겨서 가. 다 늙어서 무슨 멋을 부린다고.”


“냅둬요. 내 멋에 사는 거니까.”


“화장품 무게만 해도 용량 초과 나오겠다.”


정화는 여행 가는 첫날부터 불길하게 분주했다. 짐도 들어야 하고 휠체어도 끌어줘야 하는 데 정화는 힘에 부치기만 했다. 그럴 때마다 동수는 정화에게 버럭 소리만 질렀고.


“그니까 왜 그렇게 짐을 한가득 가져와서 가기도 전에 진을 빼고 그래.”


동수는 연신 호통을 치고 있었고 정화는 혼비백산이 되어 이리 뛰고 저리 뛰느라 실수를 남발했다. 보다 못한 동료들도 조금씩 수고를 덜어주었다. 다들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일행 중 환자가 있다는 것은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천근만근이 된 몸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정화는 연주 부부와 연석에게 챙겨 줄 선물을 따로 준비해 두었고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이사 때문에 정신없이 짐을 챙기느라 숨 쉴 틈도 없을 지경이 되었다. 정화의 자매들은 그 많은 짐이 이십 평 남짓 되는 좁은 아파트에 어떻게 들어갈지 모르겠다며 걱정 반 비아냥 반으로 수군거렸다.


정화는 사소한 것에도 욕심이 많았다. 유독 이웃이나 자매들에는 더욱더 욕심을 둑처럼 쌓아놓고 살았다. 어릴 적부터 불평등의 피해가 가장 컸던 정남은 툭하면 인심 없고 인정 없다고 정화를 흉보기 일쑤였다.



날은 화창한 데 유난히 차고 매섭게 바람이 부는 4월의 봄날이 되었다. 여행 다녀온 지 일주일째 접어든 날 정화는 여전히 힘 빠진 공처럼 무기력한 모습으로 잠에서 깨어났다. 동수가 춥다며 난로를 피우라고 성화를 부린 탓이다. 벽난로 주위로 아직 치우지 않은 짐들이 산재했다. 몸 상태가 안 좋은 것도 있지만 주택이라 외풍이 심한 탓에 동수는 새벽 추위를 못 견디고 호소했다. 정화는 동수가 몸살기가 있는 것 같다고 말하며 실내 온도를 잔뜩 높였다. 동수는 잔뜩 약이 오른 모습으로 방 안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벽난로를 피우면 되잖아.”


정화는 몇 번 만류하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난로에 불을 붙였다. 참나무 몇 개를 올리고 종이 꾸러미를 둘둘 말아서는 귀찮고 졸린 표정으로 라이터를 켰다. 매운 연기가 스멀스멀 올라왔고 눈가가 매웠지만, 정화의 지치고 고단한 눈을 깨우지는 못했다. 정화는 석유통을 찾느라 주위를 둘러보았다. 한창 겨울일 때도 벽난로에 불이 잘 안 붙어 석유를 조금씩 부어서 때웠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익숙한 지핌이었는데 갑자기 불어닥친 동풍이 그 자리를 휩쓸며 순식간에 불이 붙고 말았다. 화가 잔뜩 난 불길은 정화의 얼굴을 세차게 훑고 지나갔다. 곧이어 불길은 삽시에 집안 전체로 퍼졌고 따닥따닥 곳곳에 기생하려는 조짐을 보였다. 정화는 부랴부랴 전화기를 찾아 119에 신고했고 놀라서 말문조차 막혀버린 동수를 휠체어에 태우고 온 힘을 다해 밖으로 대피시켰다. 얼마 후 동수의 두려움에 질린 성화가 시작되었지만, 정화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정화는 붉게 타버린 자신의 얼굴을 볼 겨를도 없이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동수의 울부짖는 소리가 밖에서 들렸지만, 집안을 한적한 소각장이 되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정화는 병적으로 집기들을 빼 오려 애썼다. 연주와 연석을 위해 준비한 선물을 급하게 찾았지만, 그것들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눈앞의 파멸을 경험하며 불길이 맞닿은 찰나에 정화는 점차 공포가 밀려왔다.



두 살 때 어렴풋이 보았던 환영 같았던.… 뜨겁게 타오르는 하루를 보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쏟아지는 절망에 절규하는 환청이 들리는 듯했고 쓰러지기 일보 직전 구조대원이 와서 정화를 끌어냈다.

정화는 정수리부터 얼굴 전체를 불에 맞았다. 정화는 극심한 쓰라림 속에서도 눈물을 콸콸 쏟으며 좌절했다. 구급차에 실리며 구급 대원의 응급 치료를 받았지만 불을 재워둔 듯 쓰라린 통증이 깊숙이 파고들었다. 긴박하게 근처 병원에 도착했으나 서울에 있는 화상 전문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고 했다. 구급차는 그 길로 영등포로 내달렸다. 상처가 박힌 사이 다행히 눈은 다치지 않았다. 붕대로 얼굴 전체가 칭칭 침울하게 감겨 있는 정화는 문병을 원치 않았지만 싫다 할 기색을 내비치기에도 지친 상태였다.


가족들은 정화를 찾아갔다. 그나마 괜찮다는 말을 들은 탓인지 연석은 갓 입사한 회사 일을 핑계로 곧바로 오지 않았고, 연주는 임신 초기라 조심해야 한다며 병원에 오길 꺼려서 대신 사위가 왔다. 정화는 눈만 뚫린 상태로 붕대가 감겨 있었는데 눈 주위에는 진물이 나와 거즈로 그곳을 계속 누르고 있었다. 돌봐 줄 사람이 없던 동수는 집 근처에 있는 요양 병원에 강제 입원을 해두었다. 정화는 할 말을 잃은 듯 연신 앓는 소리만 내었다. 그 와중에도 사위는 유별나게 챙겼다.


“윤 박사 여기로 앉아. 왜 다리 아프게 서 있어?"


정남은 앉던 자리를 조카사위에게 내줬다. 그는 괜찮다며 거부했지만, 정남은 정화의 불편한 시선에 더는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소식을 들은 외종질들은 시차를 두고 방문하여 정화를 걱정했다.


며칠 후 병실에 홀로 누워있던 정화는 일종의 증상처럼 안절부절못하더니 붕대를 싸맨 채 외출 허가를 받고 집으로 돌아갔다. 까맣게 재 덩어리로 변한 집 주변을 보며 정화는 털썩 주저앉아 유아적 울던 모습으로 오열했다. 정순을 비롯한 다른 자매들은 정화의 요청에 서울에서 가평까지 내달렸다. 건물 청소에 식당 설거지에 보험 회사에 다니며 다들 고단한 몸을 이끌고 가는 거였다. 그럼에도 그들은 정화가 아픈 것에만 걱정이 한가득하였다. 자매들이 도착하자 정화는 얼굴에 붕대를 감은 채 그들에게 장갑을 나눠주며 청소를 강요했다. 정순이 조심스럽게 정화에게 물었다.


“연석이는 어디 갔어?”


그러자 정화는 발끈하며 대답했다.


“걘 회사 다니느라 피곤한 애를 왜 불러.”


자매들은 별말 없이 청소하기에 바빴다. 집기들을 끌어내며 간혹 타지 않은 물품이 나오면 식탐을 부리듯 기뻐했다.


“귀걸이 한 쌍 주웠다. 하나도 안 타고 상자 안에 있어. 새것 그대로네. 셋째 언니 몰래 가져가야지.”


정미가 득템한 표정으로 말했다.


“얼른 감춰라. 저 욕심쟁이 보면 득달같이 뺏을 거다. 어휴, 욕심. 욕심. 진작 좀 나눠 주고 살 일이지. 결국엔 다 이렇게 재 덩이가 되는 것을. 아니 왜 사람을 안 쓰고 바쁜 우리를 불러내서 일을 시키고 지랄이래.”


정남이 정미를 보며 말했다.


 “죄받은 거여. 화상이 따로 없지.”


 정순도 거들었다.


 “조용히 해 듣겠어.”


 정미는 정화의 눈치를 보며 입단속을 하였다.


집이 홀랑 다 타버린 이유를 동수에게 돌리며 원망하던 정화는 퇴원 후에도 동수가 입원한 병원에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다. 연주, 연석은 병문안도 손님처럼 한두 번 비쳤을 뿐 좀처럼 정화를 보러 가지 않았다. 정화 자매들은 동수를 번갈아 가며 방문하기 바빴고. 동수는 정화의 안부를 궁금해하면서 요양원 생활의 불편함을 호소했다.


“빨리 집사람이 데리고 가줬으면 좋겠어. 아무런 불평도 안 할 테니 집에만 데리고 가줬으면....”


화상 치료 후에 정화는 급격한 우울증 증세를 보였다. 그런 것도 모른 채 동수는 계속 정화를 찾았다.


퇴원 후 정화는 홀로 이사했다.



“그 성격이 어디 가겠니. 힘들어 죽겠는데 애써 가주면 고맙다는 말 한마디는커녕 똥 폼 잡지 말고 일이나 거들라고 하더라. 사위가 카이스트 나온 박사면 뭐 해. 그깟 백수 자식을 윤 박사 윤 박사 이러면서 신줏단지 모시듯 하고. 퇴원 절차도 너희 오빠가 해줬잖니. 제 자식 놔두고 왜 남의 자식을 못 부려 먹어서 안달이라니. 난 이제 걔 시다발이 더는 못 해 먹겠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인생이랑 퇴직해서 연금 타 먹은 인생이 같니. 뼈 빠지게 중노동 하고 쉬는 날 네 집까지 가서 청소하고 뒤치다꺼리를 해줘야겠느냐고. 그러면서 하나 좋은 소리 못 듣고 아무리 제 팔자가 그래도 그렇지. 내 더는 못 참겠다. 저 화상 덩어리 죽든 말든 내 알 바 아니다. 이젠.”


정남은 딸 선화에게 하소연하였다. 비로소 정화의 속박에서 벗어난 듯 보였다. 무겁게 짓누르던 괜한 죄책감도 탈피했고 상관 안 하면 될 일이라고 말했다. 정남은 그렇게 결심하고 나니 막힌 체증이 내려간 것 같다고 했다.


정화는 인적 드문 산중에 재개발 가능성만 믿고 덩그러니 세워진 아파트에 갇혀 지냈다. 좀처럼 밖에 나갈 일도 없었지만, 어디든 사람 구경이 쉽지 않았다. 화상으로 숭숭 빠져버린 정화의 머리카락은 부쩍 하얗게 새어 있었다. 오랫동안 일그러져있던 왼쪽 얼굴은 붉게 자리 잡기 시작한 새로운 자국들을 제압이라도 하듯 가혹한 흔적을 여실히 드러냈다.

정화는 집에 아무것도 들여놓지 않았다. 정남을 비롯한 다른 자매들도 그 뒤로 찾아가지 않았고 이후 아무도 정화를 찾는 이가 없었다.


                                                 *


정화는 눈이 덮인 산길을 휘청거리며 오르며 센강 변에서 따뜻한 햇볕을 쬐며 여행을 즐기던 때를 생각했다. 그럴 때면 입가에 조금씩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별다른, 구체적인 기억이 떠오르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용서할 수 있는 유일한, 뜨거운 빛이라고 안도했다. 그곳에서 머플러를 목에 두르고 하늘거리는 모자를 눌러쓰고 곳곳에 눌러앉은 비둘기를 쫓으며 구름이 떠 있다 사라졌다 하는 풍경을 보고 있었다. 제법 평탄하게 행복했던 삶이었으니 곁에, 먼저 힘이 빠진 남편을 위로하며 사는 낙으로 살아야겠다고. 가루가 될 때까지 그와 함께 생을 마치겠다고 기도했었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지만, 신이 원하시는 일이 용서라면 그렇게 하겠다고. 정화는 욕실에서 어처구니없게 넘어진 뒤로 돌아가신 말련을 회상했다. 죽는 날까지 말련은 정화를 한 번도 똑바로 바라보질 못했다. 막연히 미안함 때문이란 것을 알면서도 정화는 화가 났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냥. 정화는, 말련만 보면 화가 났다. 그날 밤 정화는 남몰래 오열하며 잠이 들었다. 동수를 땅에 묻고도 이를 꽉 다물며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었다. 응급실에 급하게 실려 왔을 때도, 의사에게 심폐 소생술은 거부하겠다는 말을 했을 때도 신기할 정도로 담담했다. 동수는 앙상하게 뼈만 남은 몸으로 정화 앞에서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린 채 할 말 많은 표정으로 숨을 거뒀다. 정화는 동수의 벌어진 하관을 힘겹게 닫으며 조용히 말했다.


“미안해. 내가 당신이 빨리 가길 바라서 하나님이 보내주신 것 같아. 연주 아빠! 미안해.”


동수가 위급하다는 정화의 다급한 요청에 다른 자매들은 좀처럼 믿지 못하고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을 시키려나 싶어서 핑계를 대었다. 정남마저도 방문을 미루고 할 일 없는 선화가 등 떠밀려 병원에 도착했을 때 동수는 이제 막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 심정지기는 삐~익 소리를 멈추질 않았고 정화는 간신히 동수의 하관을 꾹 다물게 만들어 놓은 후 선화에게 담담한 어조로 얘기했다.


“이모부 돌아가셨다. 너는 어서 연주한테 가봐. 연주 입덧 심해서 아무것도 못 먹고 있단다.”


장례식장에선 많은 말들이 오갔다.


“개가 죽어도 저리 허술하게 묻지는 않을 텐데.


정화는 집이 불탄 자리 외곽에 수목장 하겠다며 그곳에 동수를 묻었다. 비 오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겠다며 사람들은 수군거렸지만, 미망인의 뜻을 거스를 자는 아무도 없었다. 정화가 울지 않았기에 누구도 소리 내어 울 수도 없었다. 정화가 믿는 하나님은 눈물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죽음이 끝이 아니니까.



장례를 주관하는 목사는 동수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확인했다며 설교를 마쳤다. 동수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새로 옮긴 치유 교회의 목사는 흰 목도리에 백구두를 즐겨 신었다. 목사 사모도 동행하였는데 화장을 전혀 하지 않았어도 입술에 지울 수 없는 붉은 문신이 선명하게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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