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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체 May 01. 2024

편견


그가 고양이 사진을 보여주었다.

나는 내 새끼만 예쁠 뿐이라고 시큰둥한 어조로 답했다.

그는 개의치 않고 계속 사진을 보여 주었다.

나는 일부러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강아지를 키우고 있다. 내 뱃속으로 낳은 자식처럼 애지중지.

그가 개가 아닌 고양이를 키우고 그런 고양이를 예뻐하는 게 못마땅해서

그런 게 아니다.

그는 얼마 전까지 내게 사람 먹기 살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그깟 개새끼는 키워서 뭐 하냐고 했던 위인이다.

나는 반려동물을 집에 두고 나오는 것도 일종의 유기라며 홀로 캠페인을 벌이는 중이었다.

지금은 잠시 중단했지만

그때는

내가 정한 행동 강령으로 강아지를 가방에 넣고 어디든 데리고 다녔고.

그랬더니 갖은 고초를 겪었다.

그러니까 내가 들어갈 수 없는 곳이 너무 많았다.

그런 수모를 예상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택시는커녕 버스조차도 쉽게 타지 못했다.

만남에 제약도 많았다. 아이를 데려온 친구들 근처는 가지도 못했다. 무턱대고 재채기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가족도 나에게 그러면 안 된다고 나무랐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게 하면 안 된다고. 나는 반려동물 키우는 가족이 천만이 넘어섰다고 대들어 보았으나 소용없는 일 같았다.

그건 그거고.

아빠는 나더러 우리라고 개를 안 예뻐해서 안 데리고 다니는 줄 아느냐며 제발 남한테 피해 주는 일은 하지 말라고 나무랐다.


적어도 그는 이런 나를 이해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평소에 동물을 좋아한다고 떠벌리고 다녔던 놈이니까.

나는 그에게 유기된 동물보호 캠페인에 치우치는 현실보다 동물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캠페인이 더 필요할 것 같다고 말할 참이었다.

그런데

그런 말은 꺼내보지도 못하고 물벼락을 맞은 것처럼 수모를 당했다.

그런 비슷한 수모는

전날도

그 전날도

비슷하게 당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수모가 잔뜩 누적된 상태였다.


오랜만에 만난 그는 내게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고 자랑이었다.

자기가 했던 말은 까맣게 잊은 양.

더불어 실업 급여를 받고 있다고 했다. 하는 일은 없고 실업 급여를 받고 있자니 귀찮은 일을 하고 싶었던 건가.

궁색 떠는 것도 여전했다.

명색이 아티스트랍시고 깝죽거리고 다니던 놈이 생계에 목을 매며 안달을 떠는 모습이 조금 역겨웠다.


우린 알고 지낸 지 칠 년이 넘었다. 몇 달에 한 번씩 만나 밥이나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사이다. 남녀 간의 화학적 반응이라고는 있을 턱이 없다. 그는 가장 작고 가벼운 원소 같은 남자. 그래서 친구가 되기 좋은 남자였다.

그가 일하던 회사에서의 직책은 크리에이티브 디자이너였다. 아트 디렉터라고 불리기도 했고. 그 말이 그 말인 그래서 다분히 장난 같은 느낌이 들었다. 광고 특성에 맞춰 아이디어를 고안하고 어울리게 꾸미고 배치하고 정리하는 직업이라는데 예술도 아닌 것 같고 창조도 아닌 것 같은 나와 비슷한 종류의 일을 하는 변종 직업군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와 급격하게 친해지게 된 시점이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다.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는 게 그의 취미였으니....


그의 이름은 기윤이다.

이름이 예쁘다.

이름만 예쁘다.

남자가 기윤이란 이름을 가졌다는 게 부모에게 칭찬해 주고 싶을 정도로 잘 지은 것 같다. 여자 이름을 기윤으로 지어도 나쁘지 않을 테지만 남자 이름으로도 세련되고 좋은 이름이다. 한자의 의미 따위야 알 필요도 없고.

내가 그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 본 적이나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끼리는 늘 야, 로 통했으니까.  

그러고 보니 그룹마다 호칭을 다르게 부르는 것이 새삼스럽긴 하다.

어떤 그룹에서는 서로를 유,라고 불렀다.

유가 그랬잖아. 유는 어땠어?

그리고 그들이랑 있을 때 제삼자는 그녀로 지칭한다.

그녀가 말하길. 그녀는 이렇게 말했어, 따위로.

지금도 그 그룹에선 그렇게 쓰고 있다.

일종의 병신체를 구사하고 있는 셈인데. 주로 패션지 기자들이나 허세 돋는 직종에서 자주 사용하였다.

또 다른 그룹에선 주로 년으로 불렸다. 이년 저년 썅년 등.

그 그룹이 나름대로 친근감 있고 좋긴 했는데 개년들이 개를 너무 싫어해서 인연을 끊었다. 지 자식들만 중요한 년들이라서....

또 다른 그룹에선 님, 이라고 불렸다.

무슨 님 무슨 님 하는데 오글거림 때문에 정신이 혼몽할 정도다. 어쩌다 실수로 씨,라는 말이 나오면 허둥지둥 입을 때리고 님, 이라고 정정해서 불러야 했다. 씨는 그곳에서 상당히 예의 없는 호칭에 해당했다.

그곳은 누가 뭐라 한 사람도 없는데 괜히 주눅 들던 곳이었다.

대체로 인터넷 합평 모임이나 학문 연구소 같은 부류가 그랬다.

화기 돋게 웃다가 갑자기 아무렇지도 않게 침묵하는 것을 변태처럼 즐기는 무리로 기억한다.

그대라고 부르는 그룹도 있었다. 나는 그분들께 한 번도 그대란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항상 나를 그대라고 불렀다. 그들은 사슴피 먹는 곳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어쨌든 나를 야, 로 부르는 기윤이

그날은

머리에 흑채를 교묘하게 뿌리고 나왔다.

자기 딴에는 벗겨지기 시작한 이마 헤어라인 부근에 처발랐는데 마치 시커먼 거미줄이 얼기설기 뭉텅이 진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본 내가 피식하며 헛웃음을 흘렸다. 물론 그는 눈치 못 챘고 수시로 유리창에 비친 제 모습을 흘끗거릴 뿐이었다.

나는 그의 완벽한 이마라인을 보고 웃음을 참지 못했다. 저, 각을 떠 놓은 듯한 반듯한 헤어라인을 다듬느라 밤을 지새운 건 아닌지. 한때 영국에서는 캐주얼한 셔츠 앤 블라우스의 팔 길이를 다소 짧게 그리고 주름이 간 것처럼 입는 게 유행이었다고는 해도 기윤의 헤어라인은 영웅 슈퍼맨도 웃고 갈, 얼굴에 반사광이 보일 정도였다.

제멋에 사는 인간이니 뭐라 할 일은 아니다만. 저렇게 누가 봐도 티가 나는데 본인만 티가 안 난다고 자부하는 스타일에 넌지시 얘기라도 해줘야 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물론 그가 묻기 전에는 절대 해선 안 될 말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 일 년 전에도 가로수 길을 지나가다 우연히 그와 마주쳤는데 눈썹 문신한 모습을 보고 혹시나 해서 물어봤던 적이 있다. 그때 그가 나를 구석으로 몰고 가더니 일행들 앞에서 창피하게 무안을 줬다며, 저들은 알지도 못한다면서 광기를 부렸었다. 그러더니 돌아서 가는 등 뒤로 묻는 소리가 들렸다.

“티나?”

“그걸 말이라고.”

“어머, 어떡해. 제일 자연스럽다고 했는데. 계집애 누가 메이크업하는 애 아니랄까 봐 눈썰미 하고는. 그래도 다른 사람은 모를 거야.”

이 지랄.

사람들이 모를 리가 있나.

그냥 모른 척하는 것이지. 나는 그 말을 직접 하지는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그의 자존심을 일부러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난

적당히 남의 체면도 생각하며 지켜줄 줄 아는 사람인데

그는 나에게 성전환 한 여자 같다는 소리를 씨부리고 있었다.

덩치 큰 여자가 밥을 두 공기씩 먹는다는 이유만으로. 남들이 그렇게 볼지도 모르겠다고 하는 거였다.

그는 실업 급여로 그새 필러라도 맞았는지 코도 이상하게 높이 솟아 있었다. 그런데도 난 한마디도 아는 척하지 않았다. 아마 내가 그의 외모에 관해 조금이라도 말했다면 그는 칠색팔색을 하며 난리를 쳤을 거다. 니가 뭔데 남의 얼굴 가지고 참견이냐. 남이야 문신을 하든 화장을 하든 이라며.

그의 외모에 대해 까고 싶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님에도 모른 척 잠자코 있으면 고마운 줄 알 것이지 감히 내게 성전환 한 여자 같다는 소릴 하다니. 그때 난 그에게 이렇게 말하려는 걸 간신히 입속에 밥을 욱여넣으며 꾹꾹 참고 있었다.

'사람들이 너더러 뭐 같다고 하는 줄 알아? 홍석천 이래.'

그 점이 그를 만난 모든 사람들이

그를

게이로 착각하게 하는 이유였다.

그의 인상착의를 설명할 때,

누군가 그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기 힘들 때면

홍석천 이름만 얘기하면 될 정도였다.

아! 그 친구!

그러나 누구도 그에게 직접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을 거다. 그런 말을 했다면 여태 그 말투를 못 고칠 이유가 없지.

기윤은 홍석천과 목소리도 똑같고 말투도 똑같았다.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똑같은 목소리를 낼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로 똑같았다.

그래서 그는 게이란 오해를 종종 받았다.

그가 게이건 아니건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게이가 아니래도 그는 게이보다 더한 새침데기라서 말이다.

살다 살다 그렇게 속 좁고 소심한 녀석도 처음 본다. 그토록 외모에 관심이 많은 놈도 처음이고 말이다. 그런 성격으로 여자를 좋아할 것 같지도 않고 그런 성격을 받아 줄 여자도 없을 것 같다. 게다가 왜 그렇게 국가에 대한 불만은 많은지. 그렇다고 국가의 혜택을 못 받고 사는 것도 아니면서. 단언컨대 그는 게이가 아니더라도 여자는 단 한 번도 사귀어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 누구도, 그 어떤 여자도 그를 좋아할 순 없다는 것에 한 표.


그날도 그는 울면서 집으로 달아났다.

앙탈도 그런 앙탈은 눈 달리고 처음 봤다.

청바지는 유행한답시고 밑단을 한 뼘이나 접어 입고선.

그런 남자가

발을 동동 구르며

손을 저어가면서

그만, 그만하면서 울며 뛰쳐나가는 모습은

다시 생각해도

기가 막힌다.

나오는 건 허탈한 웃음뿐.

심지어 내가 미안하다고 사과까지 했다.

내가 그에게 너무 심하게 말을 했나.

나는 미처 그가 약간 미쳤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거다.

그는 돈이 없어서 병원에만 못 간 것일 뿐 인격에 장애가 생긴 것만은 틀림없었다. 실제 얼마 전부터 사설 치료소 같은 데서, 그러니까 무슨 단체 같은 곳에서 봉사 차원으로 진행하는 테스트에 심각한 문제점이 발견되어 지속적인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었다. 그는 입원해야 할 정도로 중증은 아니었지만, 가슴속에 맺힌 게 많은, 일종의 화가 쌓이고 억압되고 제때 분출하지 못하는 강박증적 증상이 있다고 했다. 그런 사람에게 내가 기름을 부은 격이니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긴 했다. 그러나 사람이 미쳤다고 다 용서를 할 순 없지 않은가. 그 큰 덩치로 울며불며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왜, 내 주위엔 저런 인간들뿐인가.


그는 내게 오늘은 웬일로 개를 안 데리고 왔느냐고 물었다. 그때 그토록 구박해 놓고선 내가 데리고 나오길 바란 건가.

“날이 더워져서 가방에 넣고 다니면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그래. 제발 데리고 다니지 좀 마. 그것도 민폐야.”

“아니, 짖기를 해, 냄새가 나기를 해, 털이 날리길 해. 죽은 듯이 가만있는 애가 무슨 민폐야? 애처럼 떠드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잖아. 그런 건 지킬 줄 알아야지. 나도 반려동물 좋아하지만 이런 데 데리고 다니는 건 아니라고 봐.”

우리 강아지가 여기 있는 사람들보다 훨씬 깨끗하고 위생적이야,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인간이 먼저라는 데 같은 인간인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장 자크 루소 님은 이럴 때 어떤 지침을 내리셨을까. 사회 구성원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를 우선시했을까.


기윤이 울며불며 도망친 장소는 경복궁역 근처 디저트 카페에서였다.

우리는 열두 시에 경복궁역에서 만나기로 했었다. 모처럼 몸보신 좀 해야겠다 싶어서 만나려면 거기서 보자고 했다. 토속촌에서 삼계탕을 먹고 근처 골목을 산책할 계획이었다. 우리 둘은 그런 면에서는 코드가 맞았다. 나는 걷기를 좋아했고 기윤은 집 구경하는 것을 좋아했으니까. 둘 다 똑같이 호젓한 분위기도 좋아했고.

거기까지는 좋았다.

토속촌은 사람이 너무 많이 줄을 서는 통에 돌아서서 근처 아무 밥집이나 들어갔다. 생선 백반을 시켜서 나는 밥 두 공기를 먹어 치우고 성전환자 같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고.

밥을 먹고 부른 배를 쓰다듬으며 조금 걷기로 하였다.

효자동 베이커리에 들러서 빵도 하나 샀고 맞은편 커피집에서 커피를 마셨다. 이번에는 내가 낼게,라는 소리 없이 우리는 무엇을 먹든 똑같이 나눠 냈다. 간혹 내가 조금 더 돈을 쓰기도 했다. 그는 종종 사달라는 소리도 하였고, 내가 더 많이 먹으니 더 많이 내란 소리도 하였다. 내가 그 앞에서 돈타령하거나 아쉬운 소리를 한 적이 없는데 가끔 그는 행여 자기한테 돈 꿀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고 하였다. 내가 그렇게 돈이 없게 생겼나.

우리는 동네를 가볍게 걷다가 들어왔던 통인시장으로 다시 나갔다. 출출하다고 느껴 기름 떡볶이를 사 먹었다. 조금 느끼한 맛이 남아 있어서 빙수를 먹으러 가자고 하였다. 그는 나더러 돼지처럼 많이 먹는다며 놀렸지만 싫은 눈치는 아니었다. 내가 먹으러 가자 했으니 내가 살 거라 믿은 탓이다. 남자나 여자나 자기 치장에 유독 공을 들이는 인간들은 남에게는 인색한 법이다. 저런 인간을 한두 번 경험한 게 아니다.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죄다 젊다고 의식하더니 자기만 늙었다고 투정을 부렸다. 나는 들은 척도 안 하고 바삭 빙수와 블루베리 요구르트를 주문했다.  

“날이 덥긴 진짜 덥다. 올해도 장마가 오다 말려나.”

“나라 꼴이 이 모양이니 하늘도 무심한 거지.”

그놈의 나라 꼴 타령은. 니 꼴 관리나 잘해라,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만만한 게 나랏일이니까. 막상 자기도 공무원 시켜주고 국가 일 맡겨주면 독특하게 해낼 인간이면서. 애국심도 충성심도 독특하게 높을 인간이 괜한 부심은.

그래도

그런 얘기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줄 알았다.

문제는 그다음부터 발생했다.

그가 또 고양이 사진을 보여주고 난 뒤부터다.

사진을 본 뒤 우리는 이런저런 고양이와 상관없는 얘기를 주고받았다. 그는 사촌 형이 파혼한 얘기를 해주었고 나는 우리가 아는 친구가 파혼한 얘기를 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곁에 있던 한 여자가 우리를 계속 힐끗거리며 쳐다보았다. 카페는 음악이 아주 낮게 들리고 있었고 테이블 좌석이 많지 않은 곳이었다.

낡은 책들이 산적해 있었는데 <3040 여자 심리학>, <고양이의, 고양이에 의한, 고양이를 위한 소설>, <내 마음의 등불>, <연탄 길> 같은 류였고 책들 가장 아래 칸에는 <성문 종합 영어> 책도 있었다.

억지로 고풍스럽게 만들어 둔 가구들은 자세히 보면

어이없지만

가볍게 보면

충분히

그럴듯한 장소로는 보였다.

곳곳에 비치된 생화도 마음에 들었고.

소란한 분위기는 절대 아니었다.

많은 사람이 오는 곳 같지도 않고 수용할 여력도 없어 보였고. 뜨내기보다는 동네 사람들이 더 많이 애용할 것 같은 분위기였고.

문제 될 것은 없었다.

그는 자기가 좋아하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게 기분 나쁘다고 하였다. 그러더니 최근 도자기를 배우고 있다고 하였다.

“나이 먹어도 계속 배워야 해.”

자기가 다니는 도자기 공방 주인은 자꾸 부엉이만 만들고 있다고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 나는 돈 많은 사람이 그걸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런 와중에 옆의 여자는 자꾸 우리를 쳐다보았다. 설마 하니 우리가 잘 어울려 보여서 쳐다보는 건가. 아니면 기윤의 홍석천과 똑같은 목소리 때문이려나. 나의 성전환자 같은 덩치와 목소리 때문이려나.

딱히 시끄럽게 떠든 것도 아니고.

기윤이 워낙 그런 것을 조심하는 편이라서 말이다.

그러나 조금 있으려니 그 여자는 못 참겠다는 표정으로 우리더러 조금 조용히 해달라고 말하였다. 기윤은 나한테는 그리 땍땍거리면서도 그 여자 앞에서는 네네 거리며 정중했다. 기윤의 태도와는 반대로 나는 그녀에게 발끈했다.

“그런데 여기가 독서실은 아니잖아요. 여긴 수다 떠는 카페라고요.”

여자는 순간 할 말을 잃은 표정을 지었다.

그 여자도

그제야 깨달은 것

같았다.

맞다. 여기가 카페였지,라고.

여기저기 드물게 앉아 있는 사람은 우리의 작은 소란을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상하게 카페에 둘이 앉은 사람은 우리밖에 없었다. 평일이라 홀로 무언가를 하려는 사람이 많이 찾는 시간 대였나 보다.

여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열심히 책을 보고 있었다.

이제 다시는 우리의 대화에 방해하지 않겠다는 것처럼 보였다.

기윤이 이번에는 내 말이 옳다 싶었는지 하던 얘기를 마저 하였다. 우리의 화제는 자주 바뀌었고 그가 또 고양이 얘기를 꺼내고 있었다. 내가 지난번에 우리 강아지 사진을 보여줬을 때는 그렇게 거들떠보지도 않더니만. 페북에 올린 사진도 보여주더니 요즘 페북을 통해 배우는 게 많다고 하였다. 괜찮은 정보가 많다고. 나는 어디 정보가 페북뿐이겠냐 싶어서 사건의 발단이 된 그 얘기를 꺼냈다. 순전히 미디어 교육 차원에서 트렌드를 얘기한 것이다. 내가 그에게 꺼낸 얘기는 이 한마디였다.


“혹시 일베도 아니?”


일베를 하느냐고 물은 것도 아니고 아느냐고 물었을 뿐이다. 기윤은 대뜸 인상을 쓰면서 나를 벌레 보듯 대했다.

“일베? 거기 완전 쓰레기 사이트 아니야. 너 그런데 들어가니?”

“아니, 그런 게 아니고. 너 그럼 오유는 알아?”

“오유?”

“여시 같은 카페는 알아?”

“뭐라는 거야. 아 몰라. 됐어. 자고로 근묵자흑이라고 했어. 어딜 그런 전직 대통령 흉이나 보는 사이트를.... 아이 싫어. 생각도 하기 싫어.”

“아니, 내가 일베니 뭐니 그런 걸 한다는 게 아니고.”

“아, 됐다고.”

“요즘 트렌드가 그렇다고.”

“뭐? 뭔 트렌드?”

“젊은 친구들이 각각 군집한 사이트를 중심으로 파벌을 형성하는 트렌드라고. 정보 그런 거 관심 있으면 골고루 들어가서 보고 참조하라고. 미디어 관계자도 많이 들어가는 것 같던데.”

“나 원, 기가 막혀. 정보의 홍수 시대에 살면서 꼭 그런 쓰레기 같은 데를 들어갈 필요가 있어? 거기서 뭘 얻는데?”

기윤의 언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입에서 일베, 오유, 여시, 펨코, 에펨 등이 나올 때마다 출석 체크를 하듯 카페 안의 사람들이 고개를 들어 보였다.

“디시 같은 것에서 파생된 곳이야. 아니, 들어가 보기는 했냐고.”

“들어가고 말 것도 없어.”

정색도 그런 정색은 처음 보았다.


“그러니까, 그런 데가 어떤 곳인 줄은 아냐고. 니가 페북을 통해 얻는다는 그 정보들은 얼마나 믿을 수 있는 건데? 나는 너가 그렇게 편협하게만 보지 말고 좀 더 냉정하게 추세를 파악하고 선택적으로 접근하라고 말해주고 싶은 거야.”

“선택이고 나발이고 니가 뭔데 나더러 편협하다느니 그딴 말을 하는 건데.”

웬만한 여자도 저리 히스테릭할 것 같지는 않은데, 왜 저리 과민하게 구는지 이해가 안 갔다.

카페에는 좀 전에 우리에게 뭐라 했던 여자 빼고는 모두 우리 쪽을 힐긋거렸다. 우리가 꼭 시끄러워서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각자의 소속된 사이트에 대한 변을 늘어놓고 싶은, 일종의 참견 같은 게 하고 싶은 눈치였다.



기윤은 대체 어느 시점에서 기분이 나빠진 걸까.

기윤은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나더니 그만 가야겠다고 하였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진정하라고. 화를 내는 것보다 너랑 토론했으면 좋겠어.”

라고 말했더니 토론은 백 분 토론 같은 데서나 하라고.

“진정 좀 해. 대체 왜 그렇게 화가 나 있는지 이해를 못 하겠네. 니가 지금 믿고 있는 여론 동향도 다 이들이 주도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미디어를 한쪽에만 치우쳐서 신뢰하지 말고 좀 객관적으로 보라고 얘기하는 게 뭐가 그리 잘못한 건데.”

“아. 그만.”

귀를 틀어막고 눈물을 흘리고 난리도 아니더니

“안 되겠다. 도저히 더는 못 앉아 있겠어. 나 먼저 일어날게.”

그리곤 자리에서 일어나 나갔다.

사람들은 좀 전보다 훨씬 노골적인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기윤의 과민한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도 있었고, 뭐 저런 여자가 다 있어하는 표정도 보였고. 그러니까 내가, 내가 뭘 어떻게 해보겠다는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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