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할리우드를 지배했던 무성영화의 여왕, 글로리아 스완슨. 그녀의 이름은 화려함, 사치, 그리고 패션의 대명사로 불린다. 모든 아이콘에게는 독특한 이야기가 있는 법이다. 특히 독특한 귀로 인생이 바뀐 할리우드 스타 글로리아 스완슨에 관해 알아보자.
1899년 3월 27일 시카고에서 태어난 글로리아는 아름답고 재능 넘치는 소녀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미군 수송 부대 민간 관리직으로 일했기 때문에 가족은 자주 이사를 다녔다. 어머니는 늘 딸을 위해 예쁜 옷을 만들어 입혔고, 그녀의 어머니에게는 한 가지 고민이 있었다. 바로 글로리아의 귀가 너무 크다고 생각하여 항상 그것을 가리기 위한 특별한 귀마개와 모자를 만들어 주었다. 이러한 경험은 후에 스완슨의 패션 감각과 독특한 헤드웨어 스타일 발달에 영향을 미치고도 남았다.
15세 무렵 시카고로 돌아온 그녀는, 영화 스튜디오를 처음 방문했을 때 제작 과정에는 관심이 있었지만 당시 유행하던 슬랩스틱 코미디는 조잡하고 저속하다고 여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계에 발을 들인 그녀는 1914년 'The Song of Soul'에서 단역으로 데뷔했다. 세실 B. 드밀 감독과의 만남은 그녀의 커리어에 전환점이 되었다. 1919년 'Don't Change Your Husband'와 'Male and Female', 1920년 'Something to Think About', 1921년 'The Affairs of Anatol' 등의 작품들로 스완슨은 영화계의 아이돌로 급부상했다. 관객들은 단순히 그녀의 외모가 아닌, 그녀만의 독특한 패션 감각에 열광했다. 그녀의 의상, 헤어스타일, 액세서리는 당시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특히 스완슨은 독특한 헤드피스와 정교한 헤어스타일로 자신만의 시그니처 룩을 완성했다.
글로리아의 진정한 매력은 그녀의 외적 아름다움을 넘어섰다. 1926년, 그녀는 보스턴의 금융 재벌 조셉 P. 케네디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제작사를 설립했다. 여배우가 단순히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이 아니라, 제작과 경영에 뛰어들었다는 건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일이었다. 사치와 낭비로 유명했던 스완슨은 1918년부터 1929년까지 약 8백만 달러를 벌었고, 그 많은 돈의 상당 부분을 사용했다. 그녀는 성공적인 영화 경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사업 영역으로 확장을 시도했는데, 이는 당시 여배우로서는 드문 행보였다.
놀랍게도, 글로리아 스완슨은 현대의 웰니스 트렌드를 선도했다. 그녀는 건강식품의 열렬한 옹호자로, 인공 첨가물과 과도한 설탕 섭취를 경계했으며, 환경 보호에도 관심을 가졌다. 이러한 건강과 환경에 대한 인식은 오늘날의 유기농 운동과 환경 보호 캠페인과도 맞닿아 있다.
16년간의 영화계 공백기 후, 1950년 빌리 와일더 감독의 '선셋 대로'에서 그녀는 잊힌 무성영화 스타 노마 데스몬드 역을 맡아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고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다. 이 역할은 마치 그녀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듯했다.
1970년대에 들어서도 그녀의 창의성은 멈추지 않았다. 다양한 예술 활동에 참여했으며, 1980년 출간된 자서전은 그녀의 영화 경력과 개인적 고뇌를 다룬 책으로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이 책에서 케네디와의 관계 등 그녀의 사생활도 솔직하게 다루었다.
이처럼 글로리아 스완슨의 삶은 '전형적인 미인'이라는 틀을 벗어난 이야기다. 그녀는 긴 턱과 강직한 이목구비를 가졌지만, 이러한 독특한 외모가 오히려 그녀만의 개성 있는 스타일을 완성했다. 그녀는 1920년대를 평정한 배우들 중에서도 특별히 스마트하고 독립적이며 스타일리시한 배우로 기억된다. 그녀는 1983년 4월 4일, 84세의 나이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녀가 남긴 영향력은 여전히 유효하다. 진정한 매력은 완벽함이 아닌, 자신만의 독특함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강점으로 승화시키는 데 있다는 것. 오늘날 획일화된 아름다움의 기준에 지친 우리에게, 글로리아 스완슨의 이야기는 신선한 영감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