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미인 saga

프랑스가 사랑한 영국 소녀, 제인 버킨의 삶과 유산

by 무체

영국에서 태어났지만 프랑스의 심장을 사로잡은 제인 버킨. 수줍은 미소와 헝클어진 앞머리, 무심한 듯 자연스러운 스타일로 '프렌치 시크'를 상징했던 그녀가 2023년 7월, 76세의 나이로 우리 곁을 떠났다. 단순히 명품 가방의 이름이 아닌, 예술과 자유, 그리고 우아한 반항의 상징이었던 그녀의 삶을 되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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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런던의 예술적 가정에서 태어난 제인 버킨은 어릴 적부터 남다른 외모로 주목받았다. 중성적인 얼굴과 슬림한 체형은 학창 시절 그녀에게 상처를 주었지만, 훗날 그녀만의 독특한 매력이 되었다. 어머니를 닮아 연기에 관심이 있었던 그녀는 10대에 모델과 배우로 경력을 시작했다.

그녀는 20세 되기 전 영국 작곡가 존 배리와 결혼해 첫 딸 케이트를 낳았지만, 임신 직후 배리는 그녀를 떠났다. 이 짧고 불행했던 결혼의 상처를 안고 있던 1969년, 영화 '슬로건' 촬영 중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완전히 바꿀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프랑스의 천재 예술가 세르주 갱스부르와의 만남은 제인의 삶에 강렬한 전환점이 되었다. 이미 두 번의 이혼 경력이 있고 그녀보다 20살 이상 연상이었지만, 그들의 사랑은 창작적 파트너십으로 확장되었다. 함께 노래하고, 영화를 만들고, 사진을 찍으며 그들은 예술적으로 서로에게 영감을 주었다. 연애 초기 그들은 선정적인 노래 '제 테임(Je t'aime... moi non plus)'을 발표해 바티칸을 들썩이게 할 정도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금지곡이 된 이 노래로 인해 제인은 후에 "이상한 방법으로 유명해졌다"라고 말했다.

12년간의 열정적인 관계에서 딸 샤를로트를 낳았지만, 갱스부르의 방탕한 생활과 약물 중독은 그녀를 지치게 했다. 결국 그녀는 영화감독 자크 두아용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임신한 채 갱스부르를 떠났다. 그럼에도 그들은 헤어진 후에도 예술적 교류와 깊은 우정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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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버킨은 뛰어난 미모나 완벽한 몸매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프랑스에서 가장 패셔너블한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흰 티셔츠와 청바지, 헝클어진 뱅헤어, 그리고 항상 들고 다니던 라탄 바구니는 그녀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그녀의 '무심한 시크' 스타일은 복잡한 패션 세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었다. 영어의 어눌한 프랑스어 발음조차 프랑스인들에게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노래를 잘하지 못했지만 그녀의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는 많은 이들을 매료시켰다. 그녀는 갱스부르의 그림자에 머물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과 지성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1981년, 런던행 비행기에서 그녀의 라탄 바구니가 엎어져 내용물이 바닥에 쏟아졌다. 이를 도와준 사람이 바로 에르메스의 회장이었다. 그는 그녀에게 무엇이든 넣을 수 있는 가방을 만들어주겠다고 제안했고, 3년 후 최초의 '버킨백'이 탄생했다. 버킨백은 세계에서 가장 비싸고 탐나는 핸드백 중 하나가 되었지만, 제인 자신은 오직 검은색 한 가지만 사용했으며, 열쇠와 장식품들로 자신만의 스타일로 꾸며 들고 다녔다. 2015년에는 동물 보호를 위해 악어가죽 사용에 항의하며 자신의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다가 나중에 철회하기도 했다.

2013년에는 한국 감독 홍상수의 영화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에 출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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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의 삶에는 아픔도 있었다. 2002년 백혈병 진단을 받았지만 완치했고, 2021년에는 뇌졸중을 겪었다. 더 큰 비극은 2013년, 첫째 딸 케이트가 46세의 나이로 자살로 추정되는 죽음을 맞이한 것이었다. 패션 사진작가로 활동했던 케이트는 어릴 때부터 약물과 알코올 중독으로 고통받았고, 유명한 어머니와 자매들의 그림자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투쟁했다. 제인은 케이트의 죽음 후 "내가 만든 것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며 항상 그녀의 12살 시절을 그리워한다고 말했다.


2023년 7월 16일, 제인 버킨은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단순한 연예인이 아닌, 시대를 초월한 스타일과 예술적 공헌, 그리고 인도주의적 노력으로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녀의 감각적인 스타일은 둘째 딸 샤를로트 갱스부르에게 이어져, 오늘날 샤를로트 역시 훌륭한 패션 아이콘으로 사랑받고 있다.

제인 버킨은 떠났지만, 그녀의 무심한 듯 자연스러운 아름다움과 독창적인 예술 세계는 우리 곁에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다. 프랑스가 사랑한 영국 소녀, 제인 버킨의 자유로운 영혼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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