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러스걸에서 최고의 배우가 된, 바바라 스탠윅
바바라 스탠윅은 20세기 미국 영화계의 가장 뛰어난 여배우 중 한 명으로, 60여 년의 연기 인생 동안 80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하며 강인하고 독립적인 여성 캐릭터를 대표했다. 불우한 어린 시절부터 할리우드의 전성기, 그리고 텔레비전으로 성공적으로 활동 영역을 옮긴 그녀의 인생은 그녀가 연기했던 캐릭터만큼이나 강렬하고 복잡했다. 또한, 바바라 스탠윅은 아카데미상을 수상하지 못한 가장 뛰어난 배우로 자주 언급된다. 그녀의 연기 스펙트럼은 코미디에서 필름 누아르까지, 멜로드라마에서 웨스턴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었다. 무엇보다 그녀는 당대 여성 배우들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깨고, 강인하고 독립적인 여성상을 구축했다는 점에서 영화사에 중요한 족적을 남겼다.
바바라 스탠윅은 단순히 아름다움의 기준을 따르기보다, 자신만의 독특한 매력을 창조한 여성이었다. 그녀의 뷰티 철학은 완벽한 외모보다 자신감과 개성을 중시하는 현대 여성들에게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를 전한다.
1907년 7월 16일, 미국 브루클린에서 루비 캐서린 스티븐스(Ruby Catherine Stevens)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바바라 스탠윅의 인생은 일찍부터 역경으로 가득했다. 단 4세의 나이에 어머니가 전차 사고로 사망했고, 이후 슬픔을 이기지 못한 아버지마저 다섯 명의 자녀를 남겨둔 채 사라져 버렸다.
고아원에서 자란 바바라는 일찍부터 삶의 쓴맛을 경험했다. 그녀의 언니가 쇼걸로 독립했지만 어린 동생을 돌볼 여유나 능력이 없었기에, 바바라는 스스로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9세라는 어린 나이에 흡연을 시작하는 등 또래보다 조숙하게 성장했다.
15세에 학교를 중퇴한 바바라는 언니의 발자취를 따라 브로드웨이에서 코러스 걸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1926년, 그녀는 카바레에서 댄서로 데뷔하면서 '바바라 스탠윅'이라는 예명을 채택했다. 이는 그녀의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1927년, 코미디언 프랭크와 결혼한 바바라는 2년 후 본격적인 배우 경력을 위해 할리우드로 이주했다. 그녀의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15세 때부터 잦은 낙태로 인해 영구 불임 판정을 받은 그녀는 1932년 한 달 된 남자아이 앤서니를 입양했으나, 남편의 알코올 문제로 1935년 이혼하게 되었다.
바바라 스탠윅은 특출 난 미모보다는 강렬한 캐릭터 연기로 주목받았다. 당대 최고의 여배우 베티 데이비스, 조안 크로포드와 더불어 대중의 사랑을 받은 이유는 그녀의 다양한 역할 소화 능력에 있었다. 1930-40년대 할리우드에서 여배우들이 주로 내조하는 주부나 순종적인 여성 역할을 맡을 때, 바바라는 억척스럽고 와일드한 여성 캐릭터를 완벽하게 구현해 냈다. 이러한 그녀의 독보적인 연기력은 1937년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르면서 인정받았고, 이후 세 차례 더 후보에 올랐으나 안타깝게도 수상에는 이르지 못했다. 결국 1982년에야 명예 오스카상을 받게 되었다.
1939년, 바바라는 당시 '세기의 미남'으로 불리던 배우 로버트 테일러와 결혼했다. 이들은 영화 '이것이 불륜이다(This Is My Affair)'에서 만난 후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경력의 정점에 있던 바바라와 신예 배우 로버트는 라이프스타일부터 정치 성향, 유머 코드까지 잘 맞았다. 두 사람은 구입한 목장에서 바바라의 입양아 앤서니와 함께 동거하게 되었는데, 당시 미국 사회에서 결혼 전 동거는 금기시되었다. 결국 언론에 관계가 노출되면서 마지못해 결혼식을 올렸다고 한다. 이들의 관계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더라면 더 오래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낸 바바라는 모성애를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입양한 아들 앤서니가 자라면서 갈등이 잦아졌고, 결국 그를 기숙학교로 보내버렸다. 이후 그들은 재회하지 못했다고 한다. 당시 할리우드 배우들이 아이를 반려동물처럼 입양했다가 파양 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는 점은 씁쓸한 현실이다. 모순적이게도 바바라는 영화 현장에서는 스태프들의 이름을 모두 외울 정도로 친절하고 성격 좋은 배우로 알려져 있었다. 이러한 대조적인 모습은 그녀 내면의 복잡한 심리를 엿보게 한다.
바바라와 로버트의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로버트가 항공교관으로 자원입대한 이후 두 사람의 갈등은 심화되었다. 로버트는 지속적으로 이혼을 요구했고, 바바라는 감정적으로 대응했다고 한다.
상황을 악화시킨 것은 로버트의 외도였다. 그는 영화 속 상대역 라나 터너와 바람을 피웠고, 이에 바바라가 자살을 시도하는 등 심각한 갈등으로 이어졌다. 로버트의 스타덤이 바바라를 능가하기 시작한 것도 관계에 영향을 미쳤다. 결정적으로 로버트가 영화 '쿠오바디스' 촬영 중 이탈리아 여배우와 불륜을 저질렀고, 이에 분노한 바바라가 이혼을 요구하면서 두 사람의 10년 결혼 생활은 막을 내렸다.
이혼 후에도 바바라는 로버트 수입의 15%를 받으며 생활했다. 그녀는 재혼하지 않고 홀로 지냈다. 그녀의 로버트에 대한 사랑은 깊었던 듯하다. 1969년, 로버트가 두 번째 결혼 생활 중 폐암으로 58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을 때, 바바라는 장례식장에서 대성통곡했다고 한다.
전성기를 지나 노년에 접어든 바바라는 텔레비전으로 활동 무대를 옮겨 새로운 전성기를 맞았다. 1983년에는 강인한 할머니 역할로 골든글로브상과 에미상을 수상하며 노년의 연기력도 인정받았다.
1990년, 바바라 스탠윅은 울혈성 심부전으로 82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요청으로 장례식이나 추도식은 열리지 않았다. 1951년 이후 관계가 단절된 입양아 앤서니에게는 그녀의 사생활을 밝히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약간의 유산을 남겼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