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함은 그녀의 모든 존재에 스며들어 있었다. 완벽한 아름다움이란 이런 것이다." - 이브 생 로랑
신이 질투할 정도로 아름답게 생긴 프랑스 최고 여배우 카트린 드뇌브는 특유의 지적인 퇴폐미와 고혹적인 매력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은 배우다. 시대의 가장 아름답고 우아하고 품격 있는 여배우로 평가받는 그녀는 미모에 재능까지 겸비하여 100여 편에 가까운 영화를 찍었다. 영화뿐만 아니라 1970년대에는 샤넬의 향수 모델로, 그리고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의 영원한 뮤즈로 영화와 패션계에 미친 영향력은 가히 대단했다.
나이에 걸맞게 늙어가면서도 시대를 초월한 아름다움과 뛰어난 연기력으로 대중을 사로잡은 우아함의 정석 카트린 드뇌브. 그녀의 매력에 빠져보지 않은 이가 있을까?
1943년 10월 22일 프랑스 파리에서 네 자녀 중 셋째로 태어난 카트린 드뇌브의 부모님은 둘 다 유명한 연극배우였다. 그녀 역시 연기자가 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성장했다. 카트린은 13세에 아역 배우로 데뷔하여 초기에는 주로 작은 역할을 맡았다. 그녀를 세계적인 스타로 만든 작품은 1964년 그녀가 스무 살에 찍은 영화 '쉘부르의 우산'이다. 이 영화에서 그녀는 알제리 전쟁으로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져야 하는 18세의 임신한 소녀 역을 맡았다. 자크 드미 감독의 이 뮤지컬 영화는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그녀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렸다.
실제로 카트린 드뇌브는 19세의 나이에 아이를 낳았다. 아이의 아버지는 바로 브리지트 바르도의 첫사랑이자 첫 남편이던 로저 바딤이었다. 그녀는 '쉘부르의 우산'으로 뜨기 바로 직전인 1963년 로저 바딤의 영화에 출연한 이후 주목을 받았고 이내 바딤과 사랑에 빠졌다. 카트린은 이미 두 번의 이혼 경험이 있는 바딤 사이에서 아들 크리스티앙을 낳았다.
1964년 바딤과 헤어진 후, 1965년에는 바딤보다 더 바람둥이로 악명이 높았던 영국 포토그래퍼 데이비드 베일리와 결혼했다. 베일리는 이미 22살에 유부남 신분이었음에도 17살의 패션모델 진 슈림프턴과 사랑에 빠져 이혼까지 하고 그녀와 4년간 교제하여 화제가 된 인물이었다. 뒤를 이어 진 슈림프턴과 상당히 비슷한 이미지의 카트린 드뇌브와 사랑에 빠져 결혼한 것이다. 서로 너무 바빠 몸이 멀어지니 마음도 멀어져 자연스럽게 헤어졌다고는 하지만, 베일리는 프랑스어를 하지 못했고 카트린 드뇌브는 영어가 능숙하지 않아 둘 사이에 가장 큰 장벽은 언어였다. 언어도 통하지 않으면서 사랑해서 결혼까지 한 것도 이상하게 들리지만, 이 커플은 7년 후인 1972년에 이혼했다. 이것이 공식적으로 카트린 드뇌브의 처음이자 마지막 결혼이었다.
남들보다 일찍 아이도 낳고 결혼도 하는 등 파격적인 사생활을 보여줬지만, 그녀의 연기 경력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오히려 더욱 매력적인 배우로 성장해 갔다.
1967년 루이스 부뉴엘 감독의 '벨 드 주르' 영화에서 카트린 드뇌브는 전설적인 스타일 아이콘으로 등극했다. 부유한 여성이 낮에는 고급 창녀로 이중생활을 하는 과정을 에로틱하면서도 매우 매력적으로 연기하여 치명적인 매력을 보여줬다. 이 영화에서 그녀의 의상은 전부 이브 생 로랑이 디자인했고, 이를 계기로 입생로랑과 카트린 드뇌브 모두 세계적으로 유명한 셀럽이 되었다. 지금도 '벨 드 주르' 속 카트린의 패션은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으며, 이 영화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유명한 백도 있다. 패션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이 영화를 꼭 봐야 할 것이다. 또한, 카트린 드뇌브는 배우로서의 업적뿐만 아니라 70년대에는 샤넬 향수 광고 모델로 활약하며 신비롭고 우아한 매력을 보여줘 미국 대중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절제되고 감각적인 매력의 소유자로, 자신을 성상품화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최상의 배우로 고결함을 유지한 카트린 드뇌브는 영화 속 연기력이나 외모 모든 면에서 흠잡을 데가 없었다. 그녀의 사생활은 브리지트 바르도만큼이나 파란만장했지만, 바르도가 '박리다매'로 남자를 만난 것에 비하면 카트린 드뇌브는 나름 '핵심적인 인물'만 만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랑스 여성들은 그 어떤 나라 여성들보다 자기 관리를 잘하는 미인이 많은 편이다. 그만큼 이성적으로 어필하는 매력을 지닌 것을 여성으로서 큰 자부심으로 느끼는 것 같다. 브리지트 바르도도 남성의 시선이 즐겁다고 했던 것처럼, 카트린 드뇌브도 세계적으로 미투 붐이 발발할 무렵에 반대 의사를 표하며 이런 식의 페미니즘에는 동의하지 않으며 남성은 여성에게 추파를 던질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과한 것은 문제가 되지만 지나친 금욕주의로 변질된 현상을 우려한 측면에서 발언한 것으로 보인다.
그녀의 이런 주장은 많은 페미니스트들에게 직격탄을 맞았고, 결국 5일 만에 항복하고 사과했다. 카트린 드뇌브는 전적으로 여자의 편에서 얘기했지만 예쁜 여자가 그렇게 말하니 문제가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미디어의 조작과 광기가 너무 무섭다며 더는 이에 관해 말하지 않기로 했다.
연기 천재 말론 브란도가 "연기는 너무 쉽고 배우는 하찮은 직업"이라고 한 것처럼, 카트린 드뇌브는 "재능보다 외모가 더 중요하다"라고 말하면서 "불공평하지만 그게 인생"이라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더 불공평하게도 카트린 드뇌브는 외모는 물론 연기의 재능까지 부여받았으니, 타고나고 탁월하고 운도 좋은 최고로 축복받은 배우가 아닐까 싶다.
카트린 드뇌브는 1972년 베일리와 이혼했지만, 그전에도 여러 남자들과 염문이 적지 않게 떠돌았다. 1966년에는 잠시 클린트 이스트우드와도 교제했으며, 1971년에는 이탈리아의 국민 배우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와 사랑에 빠져 이듬해 딸 키아라를 낳고 1975년에 헤어졌다. 그 밖에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과 제인 버킨의 남자로도 유명한 세르쥬 갱스부르, 그리고 제라르 드빠르디유 등 수많은 남자들과 스캔들이 있었다. 1970년대 말에는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과도 교제했다. 하지만 이브 생 로랑과는 연인 관계보다는 절친한 친구 사이로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엄마를 닮아 아들도 일찍 이성에 눈을 뜬 것인지, 카트린 드뇌브는 1987년 43세의 나이에 손주를 둔 할머니가 되었다.
카트린 드뇌브는 우아하고 고요하게 생긴 외모와는 다르게, 언제 어디서나 할 말을 하면서 자기 생각이 확고한 배우로도 알려져 있다. 몇 가지 일례를 들자면, 지독한 골초로 알려진 그녀는 어떤 호텔 기자회견장에서 실내 흡연을 금지하자 "그냥 벌금을 내고 말겠다, 개인이 담배를 피우는데 끄라마라고 하는 것은 지나친 간섭"이라고 항의했다고 한다.
매사 솔직하고 자기주장이 강한 카트린은 2014년에 소피 마르소와 언쟁한 적도 있다. 당시 올랑드 대통령이 스캔들이 난 배우와 헤어진 사실을 두고 마르소가 "비열한 겁쟁이"라고 하자, 카트린 드뇌브는 "아무리 지지를 하든 안 하든 대통령에게 '비열하다'라고 하는 것은 옳지 못한 표현"이라고 말했다. 특별히 정치색을 띠지 않음에도, 당시 대통령 지지율이 17%까지 떨어져 전 국민의 공분을 산 상황에서도 카트린의 소신 발언은 인상적이었다.
카트린 드뇌브는 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도 나이가 들수록 우아한 매력을 고수했다. 사람들이 그녀의 미모 유지 비결을 물으면 "충분한 휴식을 취하며 잠을 많이 자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일은 쉬지 않고 왕성하게 하여 은퇴설을 일축했다. 그렇게 지속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해오던 카트린 드뇌브는 2019년 영화 촬영 중 뇌졸중으로 인해 촬영을 중단하고 휴식을 취했다. 그러나 그 후 회복하여 2022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평생 공로상인 골든 라이언을 수상했으며, 2023년에는 영화 '베르나데트'에서 전 프랑스 대통령 자크 시라크의 부인 역을 맡아 화제를 모았다. 2024년에는 딸 키아라와 함께 '마르첼로 미오'에 출연하여 여전히 현역으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이렇듯 카트린 드뇌브는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막강한 매력을 과시하며 영화계에 엄청난 족적을 남겼다. 그녀가 오랫동안 사랑받은 비결 중에는 단지 아름다운 외모에 그치지 않고 뛰어난 연기력과 남다른 패션 감각이 있었다. 수많은 아름다운 스타들이 있지만, 그녀처럼 지성과 외모, 연기, 스타일 모든 면에서 흠잡을 데 없는 매력을 유지하는 배우는 극히 드물다. 그렇기에 카트린 드뇌브는 오랫동안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시대를 초월한 프랑스 영화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