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영화사의 한 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한 배우가 있다. 단정한 미모가 아닌, 독특한 얼굴과 내면의 깊이로 세계를 매혹시킨 여인. 그녀의 이름은 잔느 모로(Jeanne Moreau). 그녀는 자신의 인생관을 "인생은 산이고, 당신은 올라가서 내려오면 된다"라고 표현했다. 그녀는 그 산을 정열적으로 오르내리며 프랑스 영화사에 지울 수 없는 발자취를 남겼다. 그녀는 비전통적 미의 기준을 깨고, 여성의 자유와 독립을 체현하며, 영화 예술의 혁신을 이끈 배우이다. 그녀는 단순한 영화 속 인물이 아닌, 시대를 앞서간 자유로운 영혼으로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영감을 준다.
전통적인 미의 기준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매력을 지닌 잔느 모로. 뾰루지가 난 피부, 겁에 질린 듯한 큰 눈, 눈 밑의 두툼한 그늘, 양끝이 처진 입술, 나른한 음성으로 프랑스 영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었다. 화장기 없는 그녀의 자연스러운 모습은 영화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당시로서는 매우 도발적인 클로즈업 촬영으로 담아낸 그녀의 표정은 프랑스 영화의 혁명을 일으켰다.
1928년 1월 23일 파리에서 프랑스인 아버지와 영국인 무용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잔느 모로는 16세에 파리예술학교에 입학하여 1947년 연극으로 데뷔했다. 20세에 프랑스 국립극단의 최연소 정식 단원으로 합류하며 일찍이 연극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연극 무대에서 경력을 쌓던 그녀의 영화 인생은 1958년 대표작 <사형대의 엘리베이터>로 본격화되었다. 루이 말 감독의 데뷔작인 이 영화에서 그녀는 남편을 살해하고 연인(모리스 로네)과 도주하려는 계획이 엘리베이터의 고장으로 엇갈리면서 파리의 밤거리를 배회하는 여인을 연기했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즉흥 재즈 선율과 어우러진 그녀의 표정 연기는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을 탄생시켰다. 이어 1961년 <연인들>을 통해 유럽 각지에 파문을 일으켰고,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1962년작 '줄 앤 짐'에서 줄(오스카 베르너), 짐(앙리 세르)과 3각 관계에 빠진 여성 카트린느를 연기해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이 작품을 통해 그녀는 '누벨바그의 여신'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프랑스의 누벨바그를 이야기할 때 잔느 모로는 빠질 수 없는 하나의 아이콘이다. 그녀의 이미지는 기존의 영화 관습과 문법에 일대 혁신을 일으킨 누벨바그의 지향성과 완벽히 일치했다. <쥴 앤 짐>에서 삼각연애의 핵심에 선 그녀의 일탈은 1960년대 상황에선 매우 과감했지만, 구구한 변명이 필요 없었다. 그녀의 자유로움은 그 자체로 모든 이에게 설득력을 지녔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비전문 배우를 선호하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스타 이미지에 압도당하고 싶지 않았던 누벨바그 감독들은 트뤼포를 제외하고는 그녀를 거의 캐스팅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오슨 웰스, 루이 브뉘엘 등 세계적 거장들과 작업하며 국제적인 배우로 명성을 떨쳤다.
그녀는 <빛>(1976년)과 <청춘>(1978년) 등을 직접 연출하기도 했다. 첫 감독 연출작인 <뤼미에르>는 마흔을 넘긴 잔느 모로의 자전적 이야기였고, 이후 그녀는 <유년기>를 거쳐 무성영화의 전설적 스타에 관한 <릴리 기쉬의 초상>을 감독했다. 이는 그녀가 단순한 배우가 아닌 영화 예술 전반에 대한 깊은 이해와 열정을 가진 창작자였음을 보여준다.
세 번의 결혼과 여러 연인 관계로 사랑의 자유를 실천한 그녀는 어떤 남자도 완전히 소유할 수 없는 존재였다. 일찍이 <쥴 앤 짐>에서 여자의 정숙함과 법에 대해서 말하자 "그럼 저항을 해야죠"라고 말한 뒤, 강물에 풍덩 뛰어들던 그녀의 모습은 그녀의 자유로운 영혼을 상징한다.
1949년 배우 장 루이 리샤르와 결혼하여 아들 제롬을 낳았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헤어졌고, 1977년에는 <프렌치 커넥션>의 감독 윌리엄 프리드킨과 결혼하여 3년간 함께했다. 그러나 어떤 결혼도 그녀의 자유로운 영혼을 가두지는 못했다.
잔느 모로의 매력은 전통적인 미인의 기준과는 거리가 멀었다. 완벽한 균형의 얼굴이 아닌, 개성 있는 비대칭의 매력이 그녀를 특별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단순히 아름다움이 아닌, 지성과 깊이 있는 감성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페미니스트의 아이콘이기도 했던 그녀는 육체적 아름다움을 수치스러운 것으로 여기기보다는, 내면의 자유와 지성을 중시했다. 그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여성의 새로운 이미지를 구축했다.
잔느모로는 2017년 7월 31일, 8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그녀의 삶을 "영화"에 비유하며 "항상 기존 질서에 저항하는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였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