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rogynous fashion look
앤드로지너스룩은 여성이나 남성이 성별이 모호하게 입는 소위 양성애적인 경향의 패션 스타일을 의미합니다. 이는 중성적인 스타일과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중성적인 스타일이 남성 옷인지 여성 옷인지 구별이 어려워 보인다면 앤드로지너스룩은 성적인 경계를 넘나드는 패션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는 성정체성과는 무관하게 하나의 패션 룩 종류의 하나로 보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성이 남성성을 강조한 패션 스타일은 비교적 섹시해 보이는 반면 남성이 여성성을 강조한 패션 스타일로 입으면 다소 이상해 보인다는 것은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뭐랄까 여자가 바지를 입는 것은 자연스러운데 남자가 펄럭이는 치마를 입는다는 것은 좀 그래 보이니까요.
다시 정리하자면, 앤드로지너스 룩은 80년대 유행한 유니섹스 스타일과 맥을 같게 보기도 하지만 유니섹스는 성 중립적인 그러니까 남녀가 같이 입을 수 있는 영역으로 본다면 앤드로지너스 룩은 서로의 성적 영역을 침범한 패션 룩으로 봐야 한다는 겁니다.
유니섹스와 앤드로지너스가 헷갈리는 이유는 유니섹스 등장 이전에 앤드로지너스로 통칭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유니섹스란 단어는 1968년 뉴욕타임스에서 처음 썼다고 합니다. 성 중립적인 패션, 성의 영역 없는 패션, 양성평등적인 패션이란 의미로 쓰였다고 하니 양성애적인 앤드로지너스 룩과는 헷갈릴 수도 있으면서 차이가 있는 거죠.
앤드로지너스는 앤드로기너스라고 하기도 하지만 한국에서 통용되는 발음으로 적겠습니다. 이 단어는 라틴어 안드로긴에서 비롯됐다고 합니다. 그리스 단어에서 남자를 뜻하는 안드리스와 여자를 의미하는 구네가 합쳐진 단어입니다. 즉 남성과 여성의 신체적 특징을 혼합한 의미인데 이것이 자웅동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이러한 앤드로지너스룩은 영국과 프랑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반항적이고 남성적인 의상 위에 시각적으로 귀족 계급을 더욱 돋보이게 과장된 미적 장치를 활용한 것이지요. 흰색 스타킹이라던가 목 끝까지 차오른 러플 등을 연상하면 되려나요? 남성 전용 컬러로 시작한 핑크도 큰 부분을 차지했을 것 같고요.
또한, 그러면서 1800년대 산업혁명과 그와 함께 대량 생산된 기성복이 등장하면서 남성과 여성 의상에 통일성이 자리 잡기 시작합니다.
앤드로지너스 패션 선구자들
시대가 바뀌면서 여성들이 그들의 옷차림이 일상적인 활동에 제한을 받는다고 느끼자 양성애 패션은 활기를 띠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처음에는 페미니스트들이 남성복을 입는 것으로 출발합니다.
여성운동가로 알려진 푸에르티코 태생의 루이사 카페티요(Luisa Capetillo)는 남성복과 넥타이를 착용한 최초의 여성으로도 유명합니다.
코코 샤넬도 그녀가 꼭 페니미스트였다고 볼 수는 없지만 실용과 멋을 강조한 차원에서 남성복에서 착안한 앤드로지너스 패션을 최초에 가깝게 선보였습니다. 그러나 현대 기준으로 그녀의 의상 스타일은 댄디한 매니시룩에 가깝죠.
1930년대를 풍미한 여배우 캐서린 헵번이나 마를렌 디트리히도 앤드로지너스 룩을 추구한 배우들입니다. 캐서린 헵번은 할리우드 최초의 페미니스트였으며 마를린 디트리히는 실제로 양성애자였다는 소문이 무성한 것을 보면 페미니스트와 양성애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처럼 보입니다.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앤드로지너스 룩을 멋지게 잘 입으면 적어도 특정 계층에게선 열렬한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성적으로 양성애자라던가 동성애자라고 이러한 앤드로지너스 룩을 추구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봅니다만, 과거 할리우드 유명 여배우들은 종종 이러한 차림으로 간접적인 커밍아웃을 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당시 시대상은 그런 거 밝히면 매장 분위기였거든요. 그냥 알게 모르게 혹시 너도? 하는 시그널을 준 게 아닌가 합니다.
미국의 유명 코미디언이자 진행자 엘렌 드제너러스도 한창 잘 나가던 1997년에 커밍아웃을 하면서 성소수자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항상 앤드로지너스 룩만 고수하는 걸로도 유명하죠.
1980년대 가수이자 모델로 활약한 그레이스 존스는 남성인지 여성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강렬한 외모와 스타일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성에 대한 전통적인 이분법적인 개념에 집착하는 것을 거부하고 양성애적인 옷으로 새로운 트렌드에 일조한 인물입니다. 그 시절 보다 하드 코어적인 장 폴 고티에 의상과 점잖고 우아한 매니시룩의 진수를 보여준 조르자오 아르마니의 사랑을 받았다는 것은 눈여겨볼 대목이라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그레이스 존스는 LGBTQ의 최초 아이콘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남성들에게는 섹시하다는 평을 받았고 여성들은 그녀에게 이성적 매력을 느꼈으며 게이들 사이에선 그녀를 드랙 퀸으로 추앙했다고 합니다.
물론 여성만 앤드로지너스를 과하게 표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1970년대의 데이비드 보위는 앤드로지너스 패션의 전설이라 불릴 정도이며 실제는 지독한 이성애자이면서 양성애자 코스프레를 한 적이 있었죠. 뭐랄까 역시 여성이 남성처럼 입는 것은 그럴듯해 보여도 남성이 여성처럼 입는 것은 좋게 보면 아티스틱해 보이지만 대체로 정신 줄이 나간 것처럼 보이긴 합니다.
드라마 속 앤드로지너스 룩 살펴보기
앞서 얘기했듯, 남성이 여성성이 강한 의상을 입으면 조금 이상해 보이지만 여성이 남성처럼 옷을 입는 것은 꽤 근사해 보입니다. 드라마 등에서도 주로 박력 있고 활동적이고 전문직종의 캐릭터 이미지를 강화할 때 매니시한 정장룩이 자주 등장하는데 제법 잘 어울렸던 여배우 이미지를 올려봅니다.
하이에나 정금자 역의 김혜수 패션
여성 법조인만큼 앤드로지너스 룩이 잘 어울리는 스타일이 또 있을까 싶을 만큼 커리어 우먼의 정수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상적인 여성 직업이 승무원이었다면 현대는 완전히 의사나 변호사로 이전한 것 같죠? 그중에서도 가운이 아닌 정장을 입어야 신뢰감 돋는 변호사룩은 멋스럽고 편해 보이면서 아주 바람직해 보입니다. 하이에나 속 정금자 패션은 일상룩으로는 다소 부담스럽지만 복고풍의 매니시룩으로 아주 잘 연출한 것처럼 보입니다.
마녀의 법정 마이듬 역의 정려원 패션
마녀의 법정에서 검사 마이듬 역을 맡은 정려원은, 평소에도 옷을 잘 입기로 정평이 나있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앤드로지너스 룩의 끝판왕처럼 보입니다. 여성미를 잃지 않으면서 세련되고, 과장되지 않고 자연스럽고 그야말로 멋스러운 스타일을 완벽하게 소화하였습니다.
천 원짜리 변호사 백 마리 역의 김지은 패션
변호사 실무 수습 기간을 맡은 김지은은 화려한 컬러 일색의 앤드로지너스 룩을 선보였습니다. 하이에나의 김혜수가 노련하고 원숙한 이미지의 덜톤 컬러를 활용한 스타일에 주력했다면 신참 김지은에게는 발랄한 비비드톤 컬러를 활용해 상큼함을 잘 살린 것으로 보입니다. 의복은 상당히 중성적이면서 헤어 스타일은 지극히 여성스럽고 프로페셔널한 칼단발 이미지로 연출하여 배우 매력이 한층 더 살아난 것 같습니다.
무법 변호사 하재이 역의 서예지 패션
무법 변호사에서 하재이 역할을 맡은 서예지는 상당히 편안하면서 근사해 보입니다. 프로페셔널해 보이는 것보다는 실용을 중시한 앤드로지너스 룩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현대 사회는 거의 대부분의 패션템이 성별이 없는 유니섹스 모드로 넘치고 있는데요. 앤드로지너스 룩은 비교적 성별의 구별이 있어 보이는 전제 속에 여성을 보다 강인하면서 독립적이면서 멋스럽게 만드는데 일조하는 스타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