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 유행했던 패션룩과 아이템 회상
2000년대는 자유 분방함과 믹스 앤 매치가 어느 때보다 발달한 시대였다. 뭐랄까 디자인보다 코디네이션을 강조하는 트렌드로 치우친 현상을 느낄 수 있었다. 같은 명품 백을 들어도 누가 어떻게 코디하느냐에 따라서 확연히 달라 보였다. 또한, 2000년대는 다양한 분야의 패션 리더들이 활동했으며, 이들의 직업과 명성 덕분에 일상 패션이 큰 관심을 받았다. 그 영향력은 21세기가 된 현재까지도 이어져, 여전히 이들의 스타일을 모방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그러니까 90년대는 영화나 텔레비전 및 잡지 등을 통해서 패션을 배웠다면 2000년대 이후부터는 무대 밖, 미디어 밖의 셀럽들 스타일에 주목하였다. 물론 이와 같은 현상은 1960년대 재클린 여사, 80년대 프린세스 다이애나 같은 명사들의 패션을 흠모하면서 나타난 현상이기도 하지만 이들은 특수한 계층의 공식석상에서의 스타일을 일반 대중이 동경한 것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다가 점점 더 명사들의 일상 스타일이 파파라치에 의해 목격되면서 대중들이 따라 하기 시작하고 2000년대 고착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2000년대는 브리트니 스피어스 스타일부터 재벌이 최고의 스펙이 된 모델 패리스 힐튼의 패션, 특히 그녀의 핑크핑크한 스포티 스타일은 전 세계적으로 유행이 되었다. 시대 초월 패션 천재 케이트 모스 스타일을 노멀 하게 벤치 마킹한 시에나 밀러의 보헤미안 룩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커플룩도 남다른 관심을 받았는데 그중 빅토리아 베컴 커플의 슬림하고 간지 나는 룩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2000년대 가장 열광한 패션 스타일이었다.
보다 디테일하게 유행했던 패션 아이템을 떠올려보자면, 2000년대 초반 느슨한 질감의 스포티한 콘셉트로 나온 아메리칸 어패럴이 패션 좀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사랑을 많이 받았다. 아마 요즘 유행하는 요가 브랜드의 조상 격으로 보이는데 이 브랜드에서 나온 레깅스와 바디컨 원피스는 편안하면서 감각적인 핏으로 특히 날씬한 여성들의 많은 선택을 받았다.
그러나 요즘처럼 Y자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입고 다니면 민망의 도를 넘어서 수치스럽게 느끼고 여길 정도였다. 노출은 그 어느 때보다 수위가 높았지만 속옷이 노출되거나 은밀한 부위의 적나라한 자국은 매너 없고 무례한 패션이라는 지적을 받던 시대였다. 그래서 발목에서 칠부 정도 길이의 레깅스 위에 카울 원피스 같은 하늘거리고 넉넉한 품의 상의를 입는 스타일이 보편적이었다. 당시 멋을 좀 내는 여성이라면 딱 붙는 레깅스 위에 찢어진 미니 청스커트를 입고 웨지힐을 신거나 레깅스 위에 원피스를 입고 플랫 슈즈를 신는 스타일이 국룰이었고 전 세계적으로 젊은 층이 선호했다.
당시 유행한 패션 아이템 중 본더치 햇을 빼면 서운할 일이다. 젊은 남녀 모두에게 인기 있던 모자 브랜드인데 야구모자 스타일이 인기가 있던 가운데 본더치 햇은 끼 부리기 좋은 패션 아이템으로 사랑받았다. 지금은 줘도 안 가진다는 본더치 햇인데 보편화에 걸려버리니 한때 유행했고 값나가는 제품도 금방 가치를 상실했다.
2000년대 초반 유행한 아이템 중 어그 부츠하면 카메론 디아즈가 생각날 정도로 그녀가 자주 신고 다니던 부츠이다. 국내서도 2004년 드라마에서 임수정이 신고 나온 뒤로 엄청 많이들 신고 다녔다. 당시 어그부츠는 정말로 유행이 식을 줄 모르게 상당한 기간 동안 유행했는데 더운 나라로 여행 갈 때도 신고 싶어서 가지고 간 기억이 난다. 어그 부츠가 따뜻하기도 하지만 편안함 때문에 한번 신기 시작하면 마르고 닳을 때까지 신게 되는데 오리지널 브랜드보다 값싼 보세 부츠가 많아지면서 이 신발도 결국 유행에 뒤처진 패션으로 전락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어그 덕후는 적지 않게 보인다. 겨울이면 결국 패딩이듯 어그만큼 따뜻하고 편한 슈즈도 없으니.
패리스 힐튼이 유행시킨 트레이닝 복은 갈수록 사치를 더했고 그중에서 주시 쿠튀르의 벨벳 소재 트레이닝 복은 강남 성형 미인들의 상징 같은 의상으로 자리 잡았다. 논현동 선수촌의 언니들이 일 나가기 전 이 복장으로 강아지를 안고 미용실에서 화장하고 머리 하느라 돌아다닌 모습들이 멋져 보였던가. 연예인도 따라 하고 일반인도 따라 하면서 힙한 패션으로 자리 잡았다.
아마도 주시 쿠튀르 이전에 아디다스 트랙 슈트가 먼저 유행이었던 것 같은데 국내선 여성보단 남성들이 더 즐겨 입던 스타일이다. 당시 아디다스 운동화에 본더치 햇 3종 세트로 멋을 부리고 다니던 사람들의 모습들이 아른거린다.
노동자 패션으로 시작해서 명품으로 지위가 격상해서 가장 찬란한 시기를 누렸던 2000대의 청바지도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다. 트루 릴리전은 남녀 모두에게 인기가 있었으며 훗날 그 명성은 몽클레어가 물려받게 된다. 트루 릴리전은 스티치 박음질도 인상적이지만 브랜드 로고가 농협을 연상케 하여서 일명 농협 바지로 불리기 시작하면서 점차 양아치 전용 이미지로 굳히기 작전 들어간다. 1990년대 리바이스 501의 일자 청바지에서 2000년대 부츠컷의 인기는 이후 시들해졌다.
마이크로 데님 스커트도 빠지면 섭섭하다. 극도로 짧은 길이에 찢어진 끝단은 덤으로 어그 부츠나, 샌들 혹은 라이더 부츠에서 스트랩슈즈까지 다양하게 코디해서 입던 멋쟁이들 필수 아이템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