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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fashion story

유목민 스타일의 미묘한 차이와 변천사

집시룩과 보헤미안룩, 히피룩의 차이

by 무체


자유, 융합, 방랑을 상징한 유목민 스타일은 시대를 초월해 꾸준한 사랑을 받는 패션룩이다. 일반적으로는 보호시크룩 또는 보헤미안룩으로 많이 불리지만 미묘하게 차이가 있다. 그중에서 집시룩은 노매드 룩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유럽 전역을 떠돌며 살던 로마니족은 집시를 가리킨다. 그러니까 집시룩은 이 로마니족이 입던 스타일을 의미한다. 코카서스 인종에 속하는 이들은 흑발·흑안의 유랑 민족이다. 약 천 년 전 인도 북서부, 정확히는 라자스탄, 마하라슈트라 등에 사는 유목 상인 부족 반자라 족에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중동, 페르시아는 물론 유럽 등으로 방랑 생활을 이어갔다.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민족이다 보니 날씬한 사람들이 주를 이루었고 주로 곱슬머리에 올리브색 피부가 특징이어서 이들 스타일이 유달리 동서양 막론하고 잘 어울리는 편이다. 현재까지도 이들은 전 세계에 약 천만명 이상이 살고 있다고 한다. 동유럽에 가장 많고 서유럽에서 미국은 물론 남미, 브라질까지 뻗어 살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집시라는 차별적 단어보다는 로마 또는 로마니로 불리길 원한다고 한다. 여기서 로마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고 그들의 언어로 로마니는 사람들, 우리들을 뜻한다. 그러면 왜 집시라고 불렸던 것인가 했더니 집시(Gypsy)는 원래 이집트인(Egyptian0에서 온 말이다. 유럽 사람들 입장에선 로마니족을 처음 봤을 때 피부색이 어둡고 낯선 문화라서 이집트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오해한 것이 정착된 거다. 그래서 이들은 집시라고 불리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서 요즘에는 로마니라고 쓰고 있다고 한다. 패션계에 집시룩보다는 보헤미안 룩이나 보호 시크 룩 같은 표현을 더 많이 쓰는 이유다.


집시라 불린 로마니족은 오랫동안 부정적이고 혐오적 이미지로 낙인찍힌 존재였다. 떠돌이 생활을 하는 낯선 이들에 대한 공포와 범죄 집단이라는 편견이 지배적이었다. 게다가 음악과 예술 그리고 영적 능력으로 생계를 이어갔기 때문에 부도덕한 존재로 보았으며 특히 로마니 여성들의 화려한 의상과 춤 실력 등으로 이성을 유혹하는 문란하고 요망한 악녀로 매혹과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이들은 어딜 가든 추방, 격리, 학살을 많이 당했다. 특히 나치 시대에 유대인이 홀로코스트로 600만 명이 학살당했다면 로마니족은 포라이모스로 불리며 약 50만 명이 학살당했다. 상대적으로 홀로코스트보다 포라이모스는 덜 알려졌다. 사람들이 이들의 상처보다는 패션에 더 비중을 두었기 때문이리라 본다.


여러 곳을 떠돌며 노래와 춤 각종 희귀템을 팔면서 연명하던 이들은 위험하면서 치명적인 매력이 있는 재능꾼들이었다. 특히 여성들은 펄럭이면서 알록달록한 문양의 스커트에 검고 찰랑거리는 머리카락, 그리고 치렁치렁하고 주렁주렁 현란한 이미지의 액세서리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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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시룩이 인도에서 탄생했다면 보헤미안 룩의 고향은 프랑스다. 19세기 프랑스에서 자유로운 예술가들이 방랑자 생활을 하며 살던 방식을 두고 보헤미안이라고 부르면서 붙여졌다. 엄밀히 말하면 보헤미아 출신의 집시들이다. 보헤미아는 현재의 체코 지역인데 집시들이 이 지역을 통해 프랑스로 들어왔다고 또 오해를 하였다. 그래서 보헤미아에서 온 떠돌이들이란 의미로 보헤미안이라고 비하해서 말했고 가난한 예술가들이 정처 없이 떠돌며 싸구려 옷을 입고 자유롭게 다니는 것을 보고 보헤미안이라고 부르게 된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보헤미아를 거쳐 프랑스로 온 집시들을 보헤미안이라고 불렀고 그들처럼 사는 프랑스 예술가들도 보헤미안으로 불렸다. 정신적 계승자들이 늘었다고 보면 된다. 이후로 보헤미안이라고 하면 규범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사는, 소위 자유로운 영혼을 일컫게 된다. 그러면서 이들이 입는 스타일은 보헤미안룩에서 보호룩 그리고 보호시크룩으로 진화하였다.


보헤미안 스타일은 집시 스타일과 마찬가지로 길게 늘어지며 층이 있는 스커트와 튜닉 스타일 블라우스 그리고 각종 비즈가 달린 장신구 및 가방 등을 비롯해서 샌들 혹은 발목 부츠가 특징이다. 현란하고 섹시미를 강조한 집시룩에 비해 보헤미안 룩은 보다 창의적이며 자유로우며 싸구려로 멋을 낸 티가 난다. 유행이 지난 낡은 장신구들을 너저분하게 치장하였음에도 감각적으로 연출을 잘하니 환상적인 룩으로 인정받은 거다.


집시룩과 비교해서 보헤미안룩의 가장 큰 차이점은 민속적 스타일에서 프랑스 예술가들의 자유로운 스타일이 반영된 점이다. 강렬하고 화려한 색채의 집시룩에 비해 보헤미안룩은 편안하고 자연스러우면서 감각적이다. 원색적인 색감의 집시룩과 다르게 보헤미안룩은 베이지나 브라운 카키 등으로 자연에서 주는 색감으로 가을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핏이나 소재 그리고 전반적인 분위기가 집시룩은 민속적이고 원초적이며 이국적이라면 보헤미안룩은 보다 실용적이며 루즈핏에 자연스럽고 친근한 분위기로 매력을 더한다. 강렬한 방랑자 이미지가 강한 집시룩에 비해 보헤미안 룩은 편안하고 자연스러우니 현대적 감성에 더 잘 맞는 이유다.


집시룩과 보헤미안 룩의 배경이 비슷하다고 보았을 때 히피는 조금 이단아 같다. 패션보다 사상이 먼저 탄생한 후에 패션을 입었기 때문이다. 1960년대 미국 젊은 층 사이에서 히피 사상이 대두되면서 이들은 사상을 뒷받침할 집시룩과 보헤미안 룩을 차용하게 된다. 그러니까 자신들의 사상을 패션으로 어필한 셈이다. 이러한 반전 평화 운동에서 시작한 저항적 삶을 의상으로 표현하다 보니 강렬하고 원색적인 인상을 받는다. 하지만 이제는 패션의 흐름이 섞이고 사상이고 이념도 무색해지면서 히피룩이 보헤미안룩과 결합해 더욱 현대적인 스타일로 자리 잡았다. 결론적으로, 히피룩은 집시룩과 보헤미안 룩의 요소를 결합해 현대적이고 세련된 스타일로 재탄생했다. 그러면서도 반체제적 메시지는 사라지고 자유로운 감성과 자연스러운 스타일을 강조하는 트렌드로 변화했다. 이제는 페스티벌 히피룩, 보헤미안 히피룩 같은 변형된 스타일이 등장하며, 감각적인 스타일링을 대표하는 룩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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