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에 살고 종교에 죽던 서양 중세 메이크업은 특이하고 암울하다. 그래서 엄숙한 암흑의 시대로 유명하다. 당연히 메이크업 스타일도 발전보다 도태에 무게를 두고 있다. 그런 반면 청결에 관해서는 그 어떤 때보다 신경을 많이 쓴 시대였다. 그래서 보건 위생, 목욕, 식이요법, 마사지 등의 효과를 중시하고 강조했다.
꾸미기는 그렇게 겸연쩍어하던 사람들이 화장품이나 향수 개발 등에 관해서는 어떤 때보다 박차를 가했다. 과학적이고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흔적이 엿보였다는 감탄을 할 정도였다.
중세시대의 메이크업 키워드는 창백하고 하얀 피부였다. 이목구비 상관없이 피부만 하얗다면 미인으로 인정을 받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들은 흰 피부를 강조하기 위해 얼굴의 잔털은 다 제거한 것도 모자라 눈썹은 물론 이마 라인의 잔머리도 다 뽑아 버려서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 화장에 생얼 같은 화장을 강조하여 눈썹은 세밀하고, 뺨의 볼화장은 혈색만 살짝 돌게 화장하였다. 그러니까 청결 중시로 얼굴의 털을 다 밀어 버리고, 화장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생기만 강조하였지만 육체적 아름다움에는 신경을 써서 유독 앞가슴이 노출된 옷을 즐겨 입었다.
고대 이집트가 화장사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면 중세의 주인공은 로마였다. 서로 싸우고 헐뜯고 종교에 미쳐 있던 터에 포로에 인질에 이주에 다양한 문화를 지닌 사람들이 모이고 섞여 살다 보니 그들 특유의 민간요법도 발달하게 되었다. 누가 먼저인지는 모르겠으나 생선 기름과 숯을 석어서 만든 색소를 눈썹에 칠하기도 하였고 맥주 거품으로 세수를 할 줄도 알았다. 점토와 식초를 섞어 얼굴을 하얗게 칠하고 뺨을 붉게 칠하는 것이 보편적인 메이크업 방법이었다는데 가만 생각하니 메이크업을 안 한 게 아니라 지나치게 과장되게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민둥산처럼 얼굴을 만들다 뭔가 허전해서 허옇게 칠하고 그러다 부작용을 감지한 것인지 기독교가 전파된 3세기 이후부터 목욕이나 화장을 죄악시했다.
종교로 인해 정숙한 생활을 하던 여인들은 십자군 전쟁의 영향으로 일대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남성들은 전쟁에 나가 집안에 여성들만 있다 보니 나름 집안에서 군기를 잡으며 방문한 손님을 접대하며 안주인 노릇을 톡톡히 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옷차림부터 화장까지 꾸밈의 비중이 높아지게 되었다. 그리고 중세 말엽부터는 모든 뷰티 앤 패션의 중심지는 이탈리아가 되었다. 중세 엄숙주의가 사라지고 르네상스 시대를 거치며 이탈리아인들은 화장품을 사용하지 못하면 아름다워지지 못한다는 관념이 박혀 있을 정도로 화장을 중시하였고 특히 흰 피부와 갈색 머리카락에 집착하였다. 치아도 하얗게 만드는 데 주력하였다.
신체적인 미의 기준으로 키가 크고 어깨가 넓고 허리가 가는 것을 선호하였고 하얀 피부에 작고 붉은 입술을 강조하였다. 헤어 스타일은 3단 케이크처럼 과장이 끝이 없었는데 이런 스타일은 프랑스와 영국에까지 전해지면서 유럽 전역을 기괴함과 사치가 넘치게 만들었다.
영국에서는 엘리자베스 1세가 유행을 선도하는 역할을 하였는데 그녀를 따라 귀족 여성들의 화장 두께는 1센티미터가 넘을 정도였고 화장을 하면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짙고 두껍게 하는 스타일이 유행하여 당시 셰익스피어는 이들의 화장을 페인팅이라고 표현하였다. 그리하여 메이크업이 색을 칠하는 행위라는 의미의 신조어가 탄생하게 된 거다.
영국에 이어 프랑스는 점입가경으로 얼굴에 점을 붙이는 게 유행하였다. 납성분이 가득한 두꺼운 화장을 한 터라 얼굴의 트러블이 난무하였고 이를 커버하기 위해 점을 붙이기 시작한 거다. 그리고 점을 붙이는 위치마다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하였는데 민망해서 누군가 둘러대다 고착이 된 것 같다. 이와 같은 화장 스타일은 18세기말까지 지속되었다고 하는데 이런 독한 화장으로 미치거나 죽은 사람도 허다했으리라 본다.
죽거나 말거나 프랑스 남녀는 하얗고 짙은 화장을 할수록 품위와 존경심을 보였으며 짙은 화장은 신분을 상징하는 것과 같았기에 귀족 여성들은 모두 죽음에 이르는 화장을 하였다. 이에 더해 귀족을 흉내 내고자 하는 중산층도 이런 화장을 따라 했지만 재료 수급의 어려움으로 짙은 화장은 하지 못한 것이 어찌 보면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