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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체 Oct 18. 2024

다차원 공간으로 사라진 성냥팔이 소녀

향로는 주로 금속 재질의 그릇 형태로 향을 피우는 도구이다. 성경을 읽다 보면 하나님이 유독 향에 민감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분은 항상 좋은 기름과 좋은 향을 추구하며 예배 혹은 기도를 드릴 때 향로를 사용하라고 규정하였다. 그만큼 기독교에서는 상징적인 도구로 이용되는 향로이지만 내겐 어쩐지 제사 지내는 도구로 더 익숙하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이 향을 피우는 의식 자체가 마치 다차원 공간 그러니까 틈 사이 어딘가에 계신 하나님을 유인하는 방법 같은 게 아니었을까?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반에는 심령술사와 물리학자들이 콜라보를 이루며 사후세계를 찾아 헤맨 적도 있다고 하던데 이들이 혹시 향로 등을 통해 연기의 이동 방향으로 다른 세계를 짐작한 것은 아니었던가? 그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으려나.


향로의 연기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아론의 아들도 하나님이 허락지 않은 값싼 기름을 태웠다가 순식간에 불에 타 죽었던 것 같은데 그런 냄새를 대체 어디서 어떻게 맡았느냐는 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님은 연기가 새어 나가는 미세한 틈 사이 공간 어디쯤에 살고 있는 존재가 아닌가 싶다. 이런 상상의 나래를 펴고 보니 그러면 귀신과 하나님이 뭐가 다른가 싶은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 죽은 조상을 기리며 향로를 피우며 제사를 지내는 것과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절차, 그것도 향로를 피우는 행위가 대체 무슨 차이가 있는 걸까? 죽은 조상을 위해 향을 피우면 우상 숭배가 되는 것이고 하나님을 위해 향을 피우는 것은 찬양과 경배가 되는 것인가? 


하나님이란 분은 반드시 존재하며 인간사를 꿰뚫어 본다는 전제하에 그렇다면 필시 어딘가에 계실 텐데 그곳이 멀고 공허하기 짝이 없는 궁창이 아닌 연기가 흐르는 틈 사이 다른 공간에 계신다는 게 더 그럴듯하게 느껴져서 말이다. 물론 기독교보다 먼저 생긴 조로아스터교나 신화 등에도 이와 비슷하게 향을 피우는 의식 등은 적지 않게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기독교도 이를 차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누가 먼저이든 간에 대체 향로를 피우는 의식은 누가 가르쳐 준 것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오래전부터 불과 연기 그리고 향 같은 것이 보이지 않는 세계를 연결하는 매개체로 쓰인 흔적은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차원의 공간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해서 향로의 용도는 서양에서는 절대자에게 경배의 의미로 활용된 것이고 동양에서는 죽은 영혼을 불러내는 도구로 이용한 것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더군다나 고대인들은 향을 피워서 하나님과 만날 수 있다고 보았다는 데 이 역시 다르게 해석하면 다차원 공간에 계신 하나님을 연기를 통해 유인하는 것으로 봐도 될 것 같다.



기독교인들이 향을 피워 하나님께 신성한 의식을 올린다고 여기는 것에 반해 한국 전통에서는 죽은 조상을 위해 향을 피우는, 보다 구체적으로는 죽은 조상을 부르기 위한 의식으로 사용된다는 것에 무척이나 발끈할 노릇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차이점을 모르겠다. 향을 피워 놓고 하나님을 찾는 것과 죽은 영혼을 찾는 것이 무슨 차이란 말인가. 게다가 성경에는 죽은 자와의 교류를 금지하는 내용도 나온다. 교류는 물론 점술이나 주술을 금지하는데 그게 가능하기 때문에 금지한 것 아니었나? 이것 역시 반증하면 향을 통해 죽은 자를 부를 수 있다는 게 된다. 심지어 고대 이집트부터 메소포타미아 인도 중국 할 것 없이 향을 피우는 의식은 널리 퍼져 있었다. 이런 것을 감안할 때 고대부터 향을 통해 어떤 보이지 않는 세계로 이동하거나 교류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향으로 신도 만나고, 죽은 자도 부르고 다른 차원도 경험하고 차원 간의 경계를 넘나들며 공간 이동이 가능했던 것은 아닐까?  그러고 보니 성냥팔이 소녀도 성냥을 다 피우고 죽은 게 아닌 다른 차원으로 이동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러니까 소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다차원 공간으로 사라졌다는 것이 조금 더 그럴듯한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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