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체험-오에겐자부로

by 무체

[개인적인 체험]이 오에겐자부로의 개인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쓴 글이란 걸 해설을 읽으며 알았다. 보통은 해설을 잘 읽지 않는데 이번에는 궁금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물론 해설이 소설의 느낌을 반전시킨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소설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 원래부터 나에게는 아들의 운명의 호전에 대한 기원이 있었고 그것이 작용하여 쓰고 있던 소설의 종막을 밝은 것으로 만들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오에겐자부로의 서적을 많이 읽은 것은 아니다. 이 작가도 꽤 어릴 때 접하던 터라 어렵게 다가왔다. 그래도 문체가 참 좋았다. 잠시 보다는 오랜 시간 동안, 이런 식의 경계적 문체에 특화된 작가인데 이게 너무 매력적으로 와닿아 오에겐자부로의 스토리 텔링적 요소보다는 하나하나의 문체와 단어에 푹 빠진 적이 있다. 보통 아마추어 작가가 그런 식으로 글을 썼다면 곁가지가 너무 많다고 지적을 당했을 텐데 오에겐자부로는 어느 것 하나 버릴 문장이 없다.


[개인적인 체험]은 비정상적인 아이가 태어나 수술을 해도 식물인간이 되거나 온전하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한 진단을 받고 아이가 쇠약사로 죽기를 바라며 일탈을 하는 이야기다. 인간의 나약함과 수치심을 다뤘다고나 할까. 마지막에는 거기에만 국한하는 것이 아닌 한 인간의 변화 및 성장을 표현하였는데 그러한 전환이 매끄럽지 못해서 조금 유감이긴 했다.


낮 동안의 온기의 기억을 무의식의 어둠 속에서 더듬는 듯한 몸짓을 하며 모호한 한숨을 내쉬고 있다.


이런 문장은 죽어도 못 쓸 것 같다. 오에겐자부로의 소설은 까맣게 색칠을 해도 모자를 지경이다.


주인공 버드는 27세의 결혼한 예비 아빠다. 아프리카를 동경한다. 그가 버드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된 것은 열다섯 무렵이었다. 그 후 그는 줄곧 버드다. 장식장 유리의 어두운 먹빛을 한 호수에 어설픈 몸짓의 익사체처럼 떠 있는 현재의 그 역시 여전히 새를 닮았다.... 어쨌든 버드라는 별명은 그에게 잘 어울렸다....


버드는 아내의 출산을 기다리며 온갖 사념에 빠져 있다. 아이를 낳기도 전에 아프리카를 혼자 여행한다는 일이 불가능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졌던 걸까. 이젠 그나마 남아 있는 미약한 자유마저 저당 잡힌 신세라는 불안감에 휩싸였던 것 같다. 버드는 종종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결혼 초엔 알코올에 빠져 지내느라 대학원에 자퇴를 하고 대학 교수인 장인의 소개로 학원 강사 일을 하고 있었다. 거리를 배회하며 자신의 파워를 테스트하는 하찮은 오락 기계를 힘껏 내리쳤으나 생각만큼 파워가 높이 나오지 않았다. 그를 본 젊은 불량 패거리들이 그를 쫓아와 괴롭혔다. 얼마간 힘없이 맞고 있다가 자신의 옛 기질을 되살렸는지 어쨌는지 그들에게 힘껏 저항했다. 그들은 늙다리라며 포기하듯 내뺀다. 이 사건 이후로 버드는 아내의 진통이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지금에서야 생각이 드는 게, 어쩌면 이 작은 사건이 이 책의 주제를 압축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이후 뇌 헤르니아라는 병명의 괴물 같은 아이의 탄생 소식을 듣는다. 그 아이를 받은 의사도 놀라 수치심에 키득거리며 비정상적 행동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장모 또한 수치심을 느끼고 있었다. 장모는 딸에게 아이의 실체를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랬다간 딸이 다시는 아이를 낳지 않으려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마저 느꼈다. 버드는 아이를 큰 병원으로 옮기고 장인을 찾아갔다. 장인에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면도를 말끔하게 하고 간다. 학교 앞에서 자신이 가르치던 모자란 학생이 뒷구멍으로 입학한 것을 천연덕스럽게 얘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 녀석은 나보다는 천 배쯤 오령 있게 현실을 살아 낼 것이다. 적어도 아이를 뇌 헤르니아로 잃어버리거나 하진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건 그렇고 나는 기묘하고 독특한 모럴리스트를 가르치고 있던 셈이로군...


장인에게 그 사실을 보고하고 조니워커를 받아 온다. 버드는 그것을 어디서 마실까 고심하다 친구 히미코를 찾아간다. 히미코는 결혼 후 남편이 자살하는 바람에 혼자 살고 있다. 히미코는 다원적 우주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즐기는 여자였다.



... 버드는 생각한다. 그의 안쪽 깊은 곳의 욕망의 둥지에서 날개 치며 날아오르는 음성, 살육하고 시간(屍姦)하라!


일종의 불안기제가 작용한 것인지 버드는 쾌락을 추구하고 있었다. 버드는 자신의 몸 깊은 곳에서 위기가 시작되는 것을 느꼈다. 전날의 숙취로 강의 도중 토악질을 해댔다. 병원에서 연락이 왔고 예상과는 다르게 아기는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나는, 버드는 점점 더 수치의 감각으로 얼굴을 붉히고 눈물을 글썽대며 아프리카 여행의 꿈을 지키기 위해 식물적 존재의 중하, 아기 괴물의 중하를 벗어나고 싶다고 기원했다....

버드는 비열함이라는 눈덩이가 최초의 일회전을 행했다는 사실을 느꼈다.....

... “직접 손을 써서 아기를 죽여 버리는 건 못해요.”..... 하지만 의사는 그의 수치스러운 소망에 가담해 줄 작정인 것이다.



그리고 버드의 머릿속 흑암에 성욕의 싹이 나타나더니 젊은 고무나무처럼 쑥쑥 자랐다..... 끔찍하고 비열하며 갈망하는 기분으로 더없이 반사회적인 성교가 하고 싶었다. 그가 지금 파 먹히고 있는 수치심이라는 감각이 빛 속에서 벌거벗겨질 듯한 성교..... 만일 히미코가 거부한다면,... 나는 그 여자 친구를 때려 기절시키고 성교를 할 거야.


... 버드는 난생처음으로 마조히스틱한 자신을 발견했다. 그는 수치심이라는 감각의 바닥 깊은 늪 속에 빠졌던 참인지라 그 따위 자잘한 치욕에는 자학적인 유혹조차 느끼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인간은 마조히즘으로 기울어지는 것이라, 하고 버드는 생각했다.... 그야말로 그는 수치심이라는 감각의 독이 불러온 퇴폐의 극에 있었다.....

나는 처음으로 최대의 수치심이라는 감각의 울타리를 넘은 거야.... 나는 수치 덩어리다.



... 버드는 위험의 감각이 수치의 감각으로 뒤바뀌었다. 하지만 위험의 감각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수치의 감각 안쪽에 들러붙어 있다.


버드가 수치의 감각으로 몸을 맡기고 있는 동안 아무것도 모르는 아내는 버드를 다른 차원으로 질책하고 있었다.


.. 버드, 나에겐 너무나 중요한 때에 당신이 취해 버린다든가, 이상한 꿈에 빠져 있다든가 해서 정말 새처럼 훨훨 날아가 버릴 것같이 느껴질 때가 있거든..... 당신은 자주 아프리카로 출발하는 꿈을 꾸면서 스와힐리어로 고함을 질러. 당신은 자기 아내나 아이들과 함께 평범한 생활을 하는 것을 실은 바라지 않고 있어. 버드....

당신은 누군가 약한 자를 그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때에 내팽개쳐 버리는 타입 아냐? 당신은 기쿠히코라는 친구를 버렸지?..


아내는 아들이면 아이의 이름을 기쿠히코라고 지을 거라고 엄포했다. 그리고 버드가 아기를 죽게 내버려 둔다면 그와 이혼할 거라고 했다. 그럼에도 버드는 히미코의 집에서 아들이 쇠약사로 죽었다는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히미코는 자신의 남편처럼, 그리고 버드의 아버지가 그런 것처럼 버드가 절망하여 자살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확실히 버드는 아기의 쇠약사를 기다리며 지속적인 퇴행 현상 속에 있었다.


“정말로 나에게 최악인 것은 아기가 쇠약사를 하고 난 후일지도 몰라.”...

... “분명히 이건 나 개인에게 한정된, 완전히 개인적인 체험이야.”.. “지금 내가 개인적으로 체험하고 있는 고역이란 놈은 다른 어떤 익간 세계로부터도 고립되어 있는 자기 혼자만의 수혈을 절망적으로 깊숙이 파 들어가는 것에 불과해..... 불모의, 수치스러울 따름인 지긋지긋한 웅덩이 파기야....


좀처럼 죽지 않는, 심지어 자라고 있기까지 한 아기를 퇴원시키고 좋지 않은 방법으로 아기를 죽일 방법을 찾아 나서는 버드. 히미코와 불순한 의사를 찾아가면서 몇 번이나 주위를 배회하며 겨우 병원에 도착한다. 아기를 맡기고 나오며 히미코가 안내한 ‘기쿠히코’라고 써놓은 술집을 발견하고 들어가자 버드가 알던 기쿠히코였다. 그들과 과거를 회상하며 버드는 돌연 생각을 바꾸어 아기를 대학병원으로 데려가 수술을 받게 할 것이라고 한다. 마침내 자신이 기만의 마지막 올무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느꼈고 자기 스스로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을을 끝자락에 아기는 수술하고 대략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내용이다. 이런 표현이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속도 조절 부분에서 미흡해 보이는 결말이었다. 하지만 오에겐자부로 개인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니 모든 것이 이해가 가긴 했다.